이다원이 내 사무실을 찾은 다음 날, 나는 '반환'이라는 단어를 세 번 지웠다.
2027년 4월 6일 화요일 오전 아홉 시. 수첩에 적힌 문장은 이랬다. '배정우가 받지 않은 문서를 누군가 반환했다.' 내가 알고 있는 증거로는 문장의 앞부분도 뒷부분도 확정할 수 없었다. 02-A가 공동 대기열에 도착한 건 맞아도 배정우가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업체에 남은 것은 실제 반환 완료 기록이 아니라 반환을 문의한 접수 항목이었다.
나는 문장을 고쳤다. '업체 작업번호 일부와 일치하는 반환 문의 기록이 존재한다.' 그 문장이 덜 멋지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 사건은 대부분 멋지지 않은 문장으로 진행됐다.
오선영은 오후에 경찰서에서 보자고 했다. 공식 조회한 자료의 범위 안에서, 내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한 확인 질문만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손으로 기록한 노트와 내게 도착한 원본 메일의 수신 시간을 정리했다. 제3자가 만들어준 요약본은 가져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3일 오전 8시 12분.” 선영은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온새문서지원 공용 고객센터에 접수된 반환 문의 생성 시각이야. 하지만 문의한 사람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는 증거는 없어.”
“접수 경로가 전화가 아닙니까?”
“시스템에는 전화라고 표시돼. 그런데 그 칸은 기본값이었어. 상담원이 바꾸지 않으면 전화로 남는 구조였지.”
나는 첫날 임소율이 내게 전화했을 때의 호흡을 기억했다. 기록은 사실을 담지만, 기록을 만든 프로그램의 편의까지 사실로 만드는 건 아니다.
“연락처 명의는요?”
“당시 회사 공용 회선 명의야. 실제 발신 장치는 확인되지 않았어. 고객센터 직원은 외부인의 말만 듣고 입력한 게 아니라, 사내 접수함의 미처리 항목을 아침에 정리하기도 했다고 해.”
나는 수첩의 '전화를 건 사람'에 줄을 그었다. 공용 전화 명의가 밝혀졌다는 말은 사람이 밝혀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작업번호가 전날 02-A 묶음과 맞는다는 건요?”
“앞자리 여섯 개가 같아. 그런데 그 여섯 개는 한 묶음의 접수일과 창구를 표시하는 번호야. 뒤에 붙은 개별 분류 번호가 중요해.”
“익명 사진에는 뒤가 잘려 있었죠.”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본 양면과 장부를 확보하려고 한 거야. 현재까지는 같은 묶음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어.”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잘린 여섯 자리를 붙잡고, 누군가 배정우에게 문서를 돌려보내려 했다고 추론했다. 그 추론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맞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때 정민규가 들어왔다. 예전의 그는 확인됐다는 말부터 했을 것이다. 오늘은 달랐다. 종이 위에 두 개의 구분선을 그었다.
“반환 요청이라는 전산 제목 아래 실제 업무는 세 종류입니다. 발송 취소, 공용함 재분류, 실물 반출. 이 기록에는 세부 처리 결과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요?” 내가 물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공란이라는 사실만 확실합니다.”
정민규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는 이런 공란을 보고 자동으로 완료된 줄 알았습니다. 이번엔 관련 창구에 직접 확인했습니다.”
“확인 결과는요?”
“당일 일찍 출근한 직원이 정리하던 보류 건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무슨 물건을 반출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답니다.”
선영이 덧붙였다. “그 직원의 기억을 증거라고 쓰지 않았어. 원본 자료와 대조할 거야.”
오후 두 시, 한유리가 회사 건물 앞에서 연락했다. 이다원이 인터넷에 다시 이름이 올라와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다원이 '배정우에게 살인 예고 문서를 전달한 사람'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 기록은 없었다. 한유리는 기사에 이름을 넣지 않기로 했다. 대신 업체가 공용함 인수 절차를 어떻게 고쳤는지 질문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쓰면 독자들이 재미없어할 텐데요.” 내가 말했다.
“그래도 없는 사람을 살인 공범으로 만들 수는 없죠.”
그 말이 끝나자 이다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당시 대기 묶음을 임시함으로 옮긴 이유를 설명한 진술서 사본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날 교대자가 도착하지 않았고, 관리자는 마감 시간이 지나면 다음 업무에 장애가 생긴다고 재촉했다고 했다.
“그 관리자가 누구인지 기억합니까?” 내가 물었다.
“음성은 기억나요. 이름은 확신 못 하겠어요.”
“그럼 이름은 말하지 마세요. 업무 메신저가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하면 됩니다.”
그녀는 안도하는 듯했다. 나는 그 안도가 불편했다. 실수를 한 사람이 제 행동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범인 취급받는 세상이었다.
저녁에는 배은정이 동생의 유품 중 상자 사진을 다시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수사팀에 이미 제출한 것과 동일한 사진인지 확인하고, 따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곳에 복사본이 생길수록 누군가 한 장만 잘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쉬워진다고 했다.
배은정은 물었다. “서 조사관님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세요.”
“저도 확신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럼 왜 안 하세요?”
“제가 확신한다고 동생분이 무엇을 했는지가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전화가 끊긴 후 나는 빈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유족에게는 속 시원한 대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근거 없는 대답은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밤 9시 14분. 익명 메일이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시간이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새로고침을 누르다가 손을 멈췄다. 누군가가 만드는 시간표에 내 밤을 계속 맞출 필요는 없었다.
9시 23분, 선영의 메시지가 왔다. '반환 문의 원본 작업표의 뒷장을 찾았어. 내일 확인하자. 표의 마지막 열을 보고 결론 내리지 마.'
나는 그 말을 수첩 첫 장에 옮겼다. 결론 내리지 마.
그 뒤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앞자리 여섯 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제야 오늘 한 일을 이해했다. 우리는 범인을 한 명도 잡지 못했다. 대신 익명의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잘못된 연결 하나를 끊었다. 그 사람은 내가 당황해서 배정우의 유족이나 이다원을 의심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누구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상대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자료를 받는 데 필요한 절차를 적다가 나는 수사팀이 왜 모든 사본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지도 생각했다. 지난해 보험 조사를 하던 시절, 나는 자료를 빨리 확보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조사관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자료를 서로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수록 발신자가 판본 차이를 이용하기 쉽다는 사실을 안다.
한유리는 기사 초고의 첫 문장을 고쳤다. '배정우에게 돌아간 의문의 봉투'라는 제목을 '반환 문의가 남은 공동 수거함'으로 바꿨다. 조회수가 줄어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숫자로 비교하면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책임을 씌운 제목을 나중에 고치는 비용은 조회수로 셀 수 없었다.
잠시 후 김주하가 회사에서 받았다는 공문 사진을 보여줬다. 내용은 간단했다. '확인 예정.' 그 공문을 받은 담당자는 모든 일이 확인됐다고 동료에게 전달했다. 나는 같은 단어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며 놀라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게으름이 아니라,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의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됐다.
“확인 예정은 확인 완료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김주하는 그 문장을 그대로 회신에 넣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았다. 하지만 우리가 1년 넘게 뒤쫓는 사건도 처음에는 그 정도의 문장 하나에서 틀어졌을지 몰랐다.
제16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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