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사람은 익명 발신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2027년 4월 5일 월요일 오전 열한 시, 사무실 아래층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물었다. 한유리가 먼저 연락을 받았다. 여자는 자신이 2026년 11월 2일 외부 문서보관소의 야간 접수 업무를 도왔다고 소개했다.
“이름은요?” 내가 물었다.
“이다원이라고 합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며칠 전 오선영이 공식 조사 중이라고 했던 전직 직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진짜 이다원인지, 자신이 전하는 자료가 원본인지도 확인해야 했다. 나는 사무실 문을 바로 열지 않고 오선영에게 먼저 연락했다.
선영은 곧바로 말했다. “혼자 만나지 마. 공식 확인할 수 있게 해.”
나는 그 말에 따랐다. 이다원이라고 주장한 사람에게 담당 수사관과 연락해달라고 안내했고, 나를 통해 자료를 넘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상대는 오히려 안도하는 듯했다.
“사실 서 조사관님이 먼저 찾아오실 줄 알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거기서 일했으니까요. 제 이름이 인터넷에 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조사할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말했다. “그럼 경찰분에게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저는 그날 아무도 문서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이 귀에 걸렸다. 경찰이 확인한 것은 문서가 대기열로 이동했다는 사실, 출력 준비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였다. 누가 실제로 꺼냈는지는 아직 미확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누군가 가져갔다는 방향의 말을 하고 있었다.
“기억나는 사실이 있습니까?”
“하나 있어요. 인수인계 노트에 적지 못한 일이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정식 진술이 먼저였다. 그 사람이 사실을 말하든 거짓말을 하든 지금 내가 답을 끌어내면 나중에 진술 과정에 불필요한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오후 두 시, 오선영은 이다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연락했다. 실제로 해당 업체에서 일한 전직 직원이었고, 정식 진술 절차에 응했다. 그녀가 말한 사실은 하나의 오래된 실수에서 시작됐다.
2026년 11월 2일 저녁, 공동 수거함을 확인해야 할 직원 둘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다. 교대자가 오기 전까지 대기함의 물건을 옮겨야 했고, 이다원은 그날 전달받은 지시대로 한 사람 몫의 확인 서명을 비워 둔 채 수거표를 작성했다. 그는 그때 일부 봉투의 실물 봉인 상태를 직접 대조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럼 02-A를 누군가 가져갔습니까?” 내가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02-A 표기가 있는 보관 묶음을 임시함으로 옮겼다는 진술이 있어.” 선영이 말했다. “개별 봉투를 열어봤거나 배정우에게 전달했다는 뜻은 아니야.”
“그 묶음은 이후 어디로 갔습니까?”
“다음 날 오전의 재확인 요청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원본 수거표를 대조 중이야.”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화면 속 02-A가 실물 문서와 닿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실물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이다원이 또 하나의 사실을 진술했다고 들었다. 그날 밤 누군가 담당자에게 ‘내일까지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시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당일에 쓰던 업체 업무용 메신저 대화가 일부 보관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는 오선영에게 물었다. “그 대화를 확보할 수 있습니까?”
“가능한 범위에서 정식 요청했어. 누가 말했는지보다 실제로 그런 말이 남았는지부터 확인할 거야.”
그것은 너무 느리게 들렸지만,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우리가 놓친 것은 늘 그 순서였다. 누군가 말했다. 누군가 받았다. 누군가 승인했다. 그 말을 사실로 바꿔버리는 순간 범인이 기회를 얻었다.
오후 다섯 시, 백이준은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31분 설정 변경에 관해 회사의 공식 입장을 보내왔다. 오승재가 임시 옵션을 변경했다는 점은 확인됐지만, 경고 하향의 승인자와 최종 실행자는 여전히 별도 조사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이름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않은 문서를 보며 조금 안도했다.
권다정은 그 정정 내용을 받아 자신의 노동 관련 구제 절차에 첨부했다. 김주하도 출력 실패 경위에 관한 정식 설명서를 제출했다. 각자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남았고,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은 것으로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 사이 임소율은 잘못된 철회 기록 정정을 토대로 비용 귀속 재검토를 계속했다.
그날 밤 배은정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이 죽기 전에 받은 서류가 정말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죠?’
나는 답했다. ‘네. 지금 확인된 것은 공동 보관 묶음의 이동 가능성이지, 배정우 본인의 열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한참 뒤에 답했다. ‘고맙습니다. 모른다고 말해주셔서.’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답이 없는 사람에게도 답이 있다고 말해주는 걸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필요로 했던 것은 모르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밤 9시 14분,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열람자 명단’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으려 했지만 손이 저절로 굳었다. 첨부된 파일은 종이로 된 수거표의 사진이었다. 이번에는 잘린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끝이 보였다. 거기에는 작업의 단계를 구분하는 칸이 세 개 있었다. ‘대기열 등록’, ‘임시함 이동’, ‘개별 봉투 확인’.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는 표시가 있었다. 세 번째 칸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나는 한 번 더 봤다. 배정우가 사건기록을 읽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 점만큼은 오히려 분명해졌다. 그동안 누군가는 세 번째 빈칸에 사람의 이름을 넣으려 했고, 우리는 그 이름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수거표 아래쪽에 작은 메모가 한 줄 있었다.
‘다음 날 담당자 확인 전 외부 문의 시 공용 창구로 회신.’
나는 그 문장이 2026년 11월 3일의 사망 사건과 직접 연결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묶음이 밖으로 이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가 생겼다. 그때 오선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혁아. 이다원 진술과 별개로 확인된 게 있어. 수거표에 있던 작업번호가 다음 날 오전 업체의 반환 요청 기록과 일부 일치해.”
“그럼 봉투를 돌려보내려 했군요.”
“반환 요청은 확인 중이야. 실제 반환이나 누가 요청했는지는 아직 몰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돌려보내’라는 음성, 배정우의 2025년 반송 의견, 수거표의 다음 날 반환 요청. 세 개는 아직 서로 다른 시간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행정 기록 하나가 그 중간에 나타났다.
메일 끝에 문장 하나가 더 떠 있었다.
‘수거표를 가진 사람이 곧 죽인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처음부터 의심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이 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누군가를 돕는 것일까, 아니면 책임을 계속 옮기며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일까. 둘 다 가능했다. 배정우가 왜 죽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사팀이 익명 메일 없이도 수거표와 반환 요청을 확보하고 있었다. 발신자는 더 이상 사건의 유일한 출입구가 아니었다.
나는 첫날의 수첩을 펼쳤다. 거기에는 ‘내일의 살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새로운 문장을 썼다.
‘미래를 보았다는 사람은 계속 문서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가 보내지 않은 기록도 찾을 수 있다.’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어 선영에게서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반환 요청에 찍힌 연락처의 명의가 확인됐어. 아직 실제 발신자 여부 확인 중. 내일 정식 조회 후 이야기하자.’
나는 묻지 않았다. 이름을 먼저 알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또 누군가의 인생을 추측으로 훔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에 확인할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음 회차에서 할 일도 분명해졌다. 누가 문서를 읽었는지가 아니라, 왜 다음 날 돌려보내라고 했는지. 그 말은 배정우가 살아 있던 시간에 나왔을까, 아니면 이미 누군가가 죽음을 알고 난 뒤였을까.
이제 시간은 예언이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제16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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