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은 장소에는 이야기가 남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목격자의 기억보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27년 4월 1일 목요일, 오선영은 인천 배정우 사망 사건의 현장 재검토 결과 일부를 내게 설명했다. 미전송 음성 초안 속 ‘돌려보내’라는 말과 세 번의 전자음이 연결된다는 온라인 추측은 확인되지 않았다.
“초안 파일의 마지막 저장 시각은 그날 밤 9시 이전일 가능성이 있어.” 선영이 말했다. “그런데 녹음된 시각 자체는 다를 수 있어. 서버에 다시 올라가면서 기록이 바뀌었거든.”
“그럼 배정우 씨가 죽기 직전에 남겼다는 말도 틀릴 수 있겠네요.”
“그 말부터 틀렸지. 우리는 죽기 직전이라고 발표한 적 없어.”
나는 얼굴을 문질렀다. 내가 한 문장을 덧붙이는 순간 기록은 누군가의 마지막 유언이 된다. 배은정은 그 유언 때문에 동생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내려 할지도 모른다. 그 부담을 만드는 사람이 내가 되어서는 안 됐다.
선영은 하나의 소식도 전했다. 최초 현장 사진에서 낮은 가구 옆에 있던 작은 종이상자가 별도 포장된 물품으로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상자 표면에는 물건을 반송할 때 흔히 쓰는 사각형 스티커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서가 들어 있었다는 증거는 없고, 빈 상자가 원래 집에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돌려보내’가 상자 얘기일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어. 가능성에 의미를 붙이기 전에 물건의 유래를 확인해야 해.”
그녀는 원본 사진을 내게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는 누군가 자료를 더 주면 수사가 쉬워질 거라 믿었다. 이제는 필요한 자료만 받고 남은 경로를 기록하는 편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후에 배은정이 전화했다. 누군가 커뮤니티에 배정우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글을 올렸다고 했다. 그 근거는 미전송 음성 파일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공개 가능한 감정 진행 상황을 문의했고, 아직 죽음의 방식을 그 파일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아 전달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 아무나 말을 만들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문장을 노트에 옮기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그녀의 말을 제멋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대신 확인된 사실만 말했다. 현장 감정은 계속되고 있고, 출입문 고장과 실제 접근 경로도 아직 분리해서 확인 중이라고.
저녁 무렵 정민규에게서 두 번째 신고와 관련된 진전이 전해졌다. 2026년 11월 3일 오후 7시 18분에 남은 개인 메모의 전화기록이 확인됐다. 실제 통화 종료 시각과 메모 작성 시각은 같지 않았다. 당직자가 전화를 받은 뒤 다른 일을 처리하고 나중에 기록을 남긴 탓이었다.
“그럼 고장 신고를 받은 시각은 더 이르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확한 통화 시각은 정식 보고서에 따로 적었습니다.”
“신고한 사람은요?”
“관계인에게 공식 확인 중입니다. 이름을 먼저 추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를 칭찬하려다 멈췄다. 그는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할 일을 제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졌다.
밤에는 한유리가 또 다른 제보를 보여줬다. 배정우가 숨진 집 앞 복도에 누군가 서 있는 듯한 흐릿한 사진이었다. 이전에 유통된 차량 사진과 마찬가지로 촬영 시각과 장소가 잘려 있었다. 한유리는 사진을 기사로 쓰지 않았다. 출처를 묻는 과정에서 제보자가 인터넷에서 받은 이미지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엔 그걸 사람의 그림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실제 그림자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걸 배정우를 죽인 사람이라고 적으면 안 되겠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사진을 사건 메모에 넣되 증거로 분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악역은 계속 움직이는데 우리는 서류의 표현만 다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문으로 만들어진 용의자 한 명이 더 생길 때마다 실제 범인은 더 숨기 쉬웠다.
다음 날 아침으로 예정된 경찰의 현장 재확인에는 관리업체의 잠금장치 담당자도 정식으로 참석한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고장 신고를 누락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려 했던 분위기가 있었다. 이번엔 당일의 업무 지시와 실제 장비 상태를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 결정이 배정우 사건을 조금 앞으로 밀었다.
저녁 식탁에서 나는 혼자 묻고 답했다. 죽은 남자의 마지막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돌려보내’가 정말 그의 목소리였다면 누구에게 말한 걸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생전에 그가 ‘확인 근거 부족’이라는 반송 의견을 남겼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의견을 누가 받아 무시했는지부터 알아보는 편이 더 정확했다.
그날 오후 선영은 사망 현장의 시간표를 다시 읽으면서 하나를 짚었다. 누군가 시신을 발견한 밤 9시 15분은 발견 시각이지 사망 시각이 아니라고. 시신의 상태에 대한 전문 감정은 계속되고 있고, 적어도 이메일에 적힌 숫자만으로 사망이 일어난 분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 이메일의 ‘9시 14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사건이 그때 일어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배정우가 9시 15분 발견됐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예언이 맞았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우리가 발견 시각과 사망 시각을 같은 숫자로 읽는 순간을 이용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익명 발신자가 시신 발견을 알고 있었던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것도 아직 몰라. 수정 메일이 나온 경로에는 단말 표시 시각 차이와 사설 연락망에 먼저 알려졌을 가능성이 모두 남아 있어. 바로 그 이유로 실제 발송 서버 기록을 확인하고 있잖아.”
그 답을 듣고 나는 그날 밤의 공포를 조금 다른 모양으로 기억했다. 누군가 미래를 읽었다는 공포보다, 내가 숫자 두 개를 아무 의심 없이 붙였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한유리는 기사 초안에서 ‘사망 예고 적중’이라는 표현을 지웠다. 대신 시신 발견 시각과 실제 사망 시각이 같다는 근거가 없다고 적었다. 그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올린 잘못된 제목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진실로 남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밤 9시 14분, 익명 발신자에게서 이번엔 녹음 파형처럼 생긴 이미지가 왔다. 붉은 표시가 세 곳에 그어져 있었다. ‘여기를 보세요. 세 번째 소리 뒤에 방문자가 있습니다.’
나는 당장 파일을 재생하려다 멈췄다. 이미지 한 장으로 소리를 확인할 수는 없다. 발신자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집중하면 다른 소리를 놓칠 수 있다. 나는 원본 자료가 있는지 확인 요청만 선영에게 보냈다.
선영은 잠시 뒤 답했다. ‘표시된 구간은 원본 파일에서 정식으로 대조 중. 아직 사람의 발소리라고 확인되지 않아.’
그녀는 더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현장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소리와 별개로 도착·출입·접촉 기록이 필요해.’
나는 그 답을 읽으며 처음으로 사망 사건이 현실적인 수사의 언어로 돌아오는 기분을 느꼈다. 미래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문과 물건과 시간을 확인하는 수사. 적이 만들어놓은 문장 대신 실제 흔적을 읽는 수사였다.
그날 밤 익명 파일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방문자가 있습니다.’ 그 문장은 절대적인 선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우리에게 있었던 것은 방문자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방문자라는 말 한마디였다. 나는 그 둘을 구분해 적었다.
누군가 거짓말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거짓말을 많이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남김없이 확인하는 끈기일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기도 했다.
제15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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