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 기록이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2027년 3월 28일 일요일 아침, 오선영은 내게 전화 대신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보관함 이력 일부 확보. 인출과 열람을 구분하는 중.’ 나는 답장을 쓰지 않고 회색 노트를 펼쳤다. 사람들은 문서가 누군가에게 전달됐다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제 확인한 프로그램에서 대리 인수는 내부 담당함으로 옮기는 상태일 수 있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려다 멈췄다. 밤새 잠을 설쳤다. 머리가 흐려질 때는 스스로를 믿는 대신 적은 것을 한 줄씩 읽는 편이 낫다. 2026년 11월 2일 저녁의 시간표에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21:49의 화면. 22:16의 내 메일. 22:21의 다른 판본 전달 완료. 세 숫자 사이에 있는 손을 아직 하나도 보지 못했다.
오후 한 시에 한유리가 찾아왔다. 기사 초안 제목이 ‘죽은 남자가 읽은 문서’에서 ‘읽은 사람 없는 문서’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두 제목 모두 틀렸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써야 합니까?”
“실제 열람자 확인 안 된 문서.”
“너무 길고 재미없어요.”
“사실도 가끔 재미없어요.”
그녀는 한참 나를 보더니 제목을 바꿨다. 그 작은 변화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후 세 시, 선영이 사무실로 왔다.
“외부 공동 접수 대기열에서 02-A 작업 객체를 특정하는 데 진전이 있어.”
그녀는 공식 수사자료 전체를 내밀지 않았다. 내가 이미 제출한 익명 이미지와 대조해 말할 수 있는 사실만 설명했다. 먼저 02-A라는 표시가 붙은 작업 객체가 분명히 존재했고, 실제 공동 접수 대기열로 들어왔다는 점. 다음으로 그 객체가 다시 자동 분류됐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은 식별표지를 가진 출력 준비 요청이 하나 생성됐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누군가 종이를 뽑았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 출력 준비 요청이야. 프린터가 종이를 뱉었는지, 사람이 가져갔는지는 다른 기록을 봐야 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구분하자고 누누이 말해놓고도 내 입에서는 먼저 결론이 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의 오류를 네가 보고서에 적어.” 선영이 말했다.
“제 실수까지요?”
“응.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으니까. 대신 문장 끝에 물음표를 붙이지 말고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적어.”
나는 그대로 적었다. ‘출력 준비 이벤트 확인. 실제 종이 배출·수거 미확인.’
선영은 이어 말했다. “보관업체 직원이 작년에 장비 고장이 잦아 인쇄 후 확인을 일괄 처리했다고 진술했어. 어떤 날에는 작업을 실제로 꺼내지 않아도 전산상 완료로 넘긴 경우가 있대.”
“게을러서요?”
“급한 마감 때문이라고 말했어. 관리자가 알고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서류를 다루는 직원의 얼굴을 상상했다. 업무량에 떠밀려 완료 버튼을 눌렀던 사람. 그가 악인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의 습관을 알았다면 무엇을 시킬 수 있을까. 실제 인수자가 없는 일을 ‘끝났다’고 표시하면 그 뒤에 누군가는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보관함이 비었습니까?”
“그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재대기열로 옮겨지면서 원본함에 남은 표시가 사라질 수 있거든.”
선영은 나보다 더 답답할 것이다. 증거를 확보하면서도 한 문장을 두 가지로 읽어야 하는 일을 몇 달이나 반복했다.
그날 저녁 배은정이 02-A와 관련해 익명으로 발송된 문의서를 받았다. ‘유품 중 관련 문서 보관 여부에 답하지 않으면 수사 협조를 거부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녀는 겁이 나서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선영은 그런 협조 거부 판정을 안내하는 공식 문서가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그런 걸 보내서 뭘 얻으려는 걸까요?” 배은정이 내게 물었다.
“유족의 손에 원본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신자의 목적은 아직 모릅니다. 대응은 수사기관과 상의한 범위에서만 하세요.”
“원본이 없다고 답하면 안전해질까요?”
“그 답조차 상대에게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그냥 아무것도 안 보내겠습니다.”
나는 그 결정을 존중했다. 며칠 전 누군가가 요구한 봉투 사진을 바로 보냈다면 지금보다 수사가 더 빨라졌을까. 알 수 없다. 다만 개인이 위험한 제보자에게 증거를 직접 내놓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쯤 백이준은 회사와 외부 보관업체 사이의 계약서 일부를 설명해줬다. 회사가 문서 전달 완료 상태를 받을 때에는 자동 처리 완료와 실물 확인을 구분해 점검하도록 약정돼 있었다. 그런데 실제 월말 점검표에는 그 구분이 한 칸으로 합쳐진 날이 있었다. 금액이 큰 계약도 결국 사람 한 명이 체크해야 할 칸 앞에서는 약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서 위반입니까?” 내가 물었다.
“조사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특정 직원의 고의라고 하기에는 확인이 부족합니다.”
백이준은 책임 소재를 일부러 흐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회사가 예전에 협력업체에 점검을 맡기고 결과만 받았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는 관리 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늦어질수록 현장 직원에게 책임이 쏠리는 이유를 조금 이해했다. 한 사람의 실수를 비난하는 일은 쉽다. 계약서의 감독 의무를 따지는 일은 어렵고 오래 걸린다.
나는 그날 익명 서랍 사진을 다시 보며 결정했다. 앞으로 익명 자료에 찍힌 얼굴이나 사원번호를 확대해 누구인지 추측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사진에 낯선 얼굴이 보이면 경찰이 공식적으로 원본을 확보한 뒤 확인하면 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먼저 불러다놓고 나중에 증거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때 한유리가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게 그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겠네요.” 나는 대답했다. “그 사람이 정말 범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린 이름으로 붙잡는다면 진짜 이름은 더 멀어지니까요.”
밤 아홉 시쯤 정민규가 메시지를 보냈다. 공동 접수 프로그램의 ‘대리 보관’이라는 말은 두 종류의 문서에서 쓰였다고 했다. 전산 대기열의 자동 상태와 실물 접수대의 임시 보관함. 둘을 같은 문서에서 혼용하면 실제 인수자가 있었던 것처럼 읽히기 쉬웠다. 익명 자료에는 두 항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작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발신자가 두 제도를 모두 알고 있었다면 일부러 결합했을 수 있다. 반대로 두 시스템의 뜻을 모르면서 화면을 베껴 붙인 사람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완벽한 악인이 아니라 서툰 조작자일 가능성이 생겼다.
다음 순간 휴대전화에 익명 메일 알림이 떴다.
‘보관함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종이 묶음이 놓인 금속 서랍이었다. 가장 위쪽 봉투에는 02-A와 비슷한 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날짜와 서랍 위치는 잘려 있었다. 나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만 적었다. 봉투가 있다. 그 봉투가 사건의 것인지는 모른다. 지금 그 자리에 있다는 근거도 없다.
선영은 메시지를 읽고 짧게 답했다.
‘사진이 아니라 현물을 확인한다.’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컴퓨터를 조금 일찍 껐다. 확인해야 할 것은 모니터 안에 없었다. 종이를 인쇄할 수 있는 곳과 그 종이를 보관했던 사람의 기억 속에 있었다. 다만 그 기억을 직접 캐러 나갈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경찰이 정식 절차로 확보해야만 다음 사람이 그 자료를 믿을 수 있었다.
빈 보관함인지, 비어 있지 않은 보관함인지. 나는 둘 중 어느 쪽도 고르지 않았다. 선택을 미룬 것이 아니라, 틀린 쪽으로 뛰어갈 기회를 상대에게 주지 않은 것이었다.
제15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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