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우가 남긴 음성에는 범인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다.
2027년 3월 22일 월요일 오전, 오선영은 배정우의 미전송 음성 초안에 대한 중간 감정 결과를 설명했다. 원본 파일의 생성 시간과 마지막 동기화 시간은 달랐다. 그래서 화면에 적힌 날짜만으로 그날 밤 녹음됐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연속 녹음이 끊긴 지점도 있었다.
“첫 부분에 ‘돌려보내’라는 말이 들려.” 그녀가 말했다.
“서류를 돌려보내라는 겁니까?”
“그렇게 들을 수도 있어. 그런데 바로 다음 소리가 선명하지 않아.”
“누가 말했는지는요?”
“화자 비교가 진행 중이야. 배정우 본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정하지 않았어.”
나는 손끝으로 수첩을 두드렸다. 배정우는 2025년에 ‘확인 근거 부족’이라는 취지의 반송 의견을 남겼다. 살아 있을 때도 어떤 문서를 돌려보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죽기 직전의 음성과 같은 사건이라고 연결해서는 안 된다.
“배정우가 자살했다는 추측이 또 돌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사인과 사망 경위는 최종 감정과 현장 증거로 판단할 문제야. 인터넷 글로 결론 낼 수 없어.”
“가족에게는 설명하셨습니까?”
“알릴 수 있는 범위에서 진행 상황을 전달했어.”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자료를 요구하는 건 내 권한을 넘는 일이었다.
오후에 인천 건물의 관리업체 직원이 공식 수사 절차에 따라 추가 진술했다고 들었다. 2026년 11월 3일 오후 7시 18분 신고 당시, 당직자는 잠금장치 고장 상담 기록에 ‘방문 확인’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출입문을 실제 방문해 점검했다는 뜻이 아니라, 방문이 필요한지 전화로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그럼 사람이 온 건 아닙니까?”
“그 문장만으로는 알 수 없어. 실제 출장 지시 기록에는 빈칸이 있거든.”
나는 다시 같은 구분을 적었다. 상담, 지시, 도착, 출입. 각각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문제는 빈칸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당직자가 급한 일이 아니라며 출장을 다음 날로 미뤘다고 했다. 그날 출입문은 간헐적으로 잠기지 않았다. 누군가 고장 상태를 알고 접근했다면 들어갈 기회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다는 뜻도, 실제 범인이 그 문을 사용했다는 뜻도 아니었다.
한유리는 그날 저녁 관리업체 앞에서 기다리던 취재진 사진을 보여줬다. 서로 다른 매체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경비가 살인을 방조했느냐’, ‘관리업체가 범인에게 문을 열어줬느냐’. 사진만 보면 관리업체 직원 전부가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답을 빨리 원하네요.” 한유리가 말했다.
“대답하기 쉬운 사람에게 먼저 묻는 거죠.”
“그럼 실제로 문을 열어준 사람이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야 합니까?”
“아니요. 열어줬는지부터 확인해야죠. 그다음 왜 그랬는지 물어야 합니다.”
나는 첫 사건의 경비원 김동식을 떠올렸다. 그는 15만 원을 받고 출입 기록을 생략하기로 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실제로 받았던 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를 살해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누군가는 그 돈을 이용해 경찰의 관심을 경비원에게 집중시켰고, 누구도 쉽게 그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오후 네 시쯤 나는 오선영에게 인천 사건의 원래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2026년 11월 3일 오후 4시 6분 첫 고장 신고, 7시 18분 두 번째 신고에 관한 개인 메모, 밤 9시 15분 시신 발견, 9시 17분 첫 공식 보고. 각 시각의 성격이 달랐다. 일어난 시각과 누군가 기록한 시각을 혼동하는 순간 상대가 만들어놓은 예언이 된다.
“그날 7시 18분에 신고한 사람이 직접 누구인지 확인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업체에서 인증된 전화기록과 메모 작성자를 대조하고 있어. 당사자의 이름은 아직 공개할 수 없어.”
“두 번째 신고가 남지 않은 이유는요?”
“근무 교대 과정에서 메모를 정식 접수로 옮기지 않았어. 관리자도 다음 날로 미뤘고.”
“업무상 책임은 분명하겠네요.”
“그 부분은 조사 중이야. 하지만 그게 배정우 사망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별개야.”
나는 동의했다. 누군가 출입문을 고치지 않은 일을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고장이 살인의 도구가 됐다는 증거는 따로 필요했다. 고장이 없었어도 누군가 정식 열쇠로 들어왔을 수 있고, 아예 다른 통로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오후 늦게는 인천 건물의 오래된 공용 안내문 사진이 다시 퍼졌다. ‘문을 당기지 마세요’라는 글씨를 익명 게시자가 ‘문을 밀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로 바꾸어 해석한 것이었다. 한유리는 그 게시물의 시각과 원본 사진의 촬영 시점을 비교했다. 사진은 사건보다 오래전에 찍힌 것일 수 있었다.
“틀린 글은 아니에요. 그 문이 자주 고장 났다는 건 사실이니까.”
“맞아요. 하지만 자주 고장 났다는 사실과 사건 당일 특정 사람이 들어갔다는 건 다르죠.”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기사 제목을 몇 줄이나 써야 해요.”
“그럼 짧게 쓰세요. ‘출입문 고장 확인, 용의자 출입은 미확인.’”
그녀는 그대로 제목을 적지 않았다. 취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판단에 안도했다.
잠시 뒤 오선영이 마지막 소식을 전했다. 음성 초안의 배경에 세 번 울리는 전자음이 잡혔지만, 그것이 문 잠금장치인지 휴대전화 알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배정우가 살던 집의 출입문 알림음과 비슷하다는 온라인 주장은 이미 퍼졌지만, 동일한 기기는 여러 장소에 있었다.
나는 그 전자음을 단서 목록에 넣되 굵게 표시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그 소리를 열쇠처럼 믿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다. 반대로 사소한 소리를 무시하면 진짜 단서를 놓칠 수도 있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서두르지 않았다.
밤에 배은정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확인되지 않은 음성 파일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동생이 죽기 전 며칠 동안 손대지 못했던 서류가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제게 그 서류를 달라는 연락이 와요.’
나는 몸을 굳혔다. 누구에게서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건네는 일을 겪었을 수도 있었다.
‘연락한 사람의 소속과 요청 목적을 확인하시고, 담당 수사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출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원본은 바로 보내지 마세요.’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잠시 뒤 오선영에게도 같은 내용을 알렸다. 그녀는 관련 연락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누군가 배정우의 죽음을 알린 것은 단순히 문서 조작 문제에 관심을 돌리려는 행동만이 아닐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이 남긴 무엇인가를 먼저 가져가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실제 살인과 관련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수첩에 적었다.
‘반송 음성 — 화자 미확정. ‘돌려보내’ 대상 미확정. 출입문 고장 — 범행 경로 미확정. 유족 서류 요구 — 실제 발신자 확인 필요.’
작은 빈칸들이 늘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달랐다. 이번에는 그 빈칸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선영은 공식 수사로, 정민규는 누락된 신고를 바로잡는 일로, 배은정은 섣부른 서류 제출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상대가 모든 사람의 실수를 예상했다면, 이들의 수정과 거절까지 모두 예상했을까.
그날 내가 다시 확인한 것은 2026년 11월 3일의 통화 내역이 아니라, 그 뒤에 붙은 사람들의 해석이었다. 잠금장치가 고장 났으므로 살인이 가능했다는 말과, 고장을 아는 사람이 범행했다는 말은 서로 달랐다. 가능성은 원인을 입증하지 않는다.
오선영은 마지막 통화에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가 빠뜨린 두 번째 신고를 찾아냈다고 해서 첫 번째 수사가 완벽해진 건 아니야.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게 많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지워지지 않을 기록이 됐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누군가의 게으름 때문에 사라질 뻔했던 신고가 이제는 정상적인 수사 기록이 됐다. 그것만으로 범인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다음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과거를 마음대로 고치는 일은 조금 더 어려워졌다.
제14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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