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은 출력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왜 출력되지 않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기계가 종이를 먹었는지, 사람이 인쇄를 취소했는지, 파일 두 번째 쪽이 애초에 잘못 만들어졌는지. 기록에는 서로 다른 표현이 남아 있었다.
2027년 3월 20일 토요일, 오선영은 온새문서지원이 추가로 제출한 기술 설명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자료였다. 그녀가 대화 중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내용만 공유했다.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40분 52초. 그 시각에 두 번째 장이 화면에서 호출된 기록이 있어.”
“그걸 누가 읽었습니까?”
“바로 그 질문이 문제야. 호출 로그에는 사용자 화면에 데이터를 넘겼다는 사실만 남아. 눈으로 보고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지.”
나는 종이에 두 칸을 그렸다. 화면으로 전송, 실제 열람.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기계가 두 번째 장을 인쇄하지 못한 원인은요?”
“출력 장치가 용지 걸림을 기록했어. 그런데 그 직후 운영자가 다시 인쇄를 누르려다 9시 42분에 취소했지.”
“왜 취소했습니까?”
“그것도 아직 조사 중.”
전화를 끊자 김주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당시 출력실의 업무 지원을 맡았다. 자신이 받은 건 앞장뿐이고 뒷장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여러 번 진술한 사람이었다.
‘제가 그날 인쇄기를 그냥 두고 나온 게 잘못인가요?’
나는 즉시 답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그 행동이 낳은 결과까지 모두 책임져야 할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책임은 그보다 복잡하다.
‘당시 기계 오류를 확인할 업무가 있었는지,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출력되지 않은 걸 알고도 완료라고 알렸다면 그 부분은 정정해야겠지만, 누군가 별도의 권한으로 경고를 하향한 행위까지 김주하 씨 책임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잠시 뒤 그녀가 답했다.
‘저는 종이 한 장을 받았을 때 두 장이 나와야 하는 걸 몰랐어요.’
나는 그녀의 진술을 기록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동시에 그녀가 모른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피해야 했다.
오후에 한유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당시 장치의 일반적인 사용 설명서를 읽고 있었다. 두 장 출력 명령을 내렸을 때 실제 배출이 한 장이면, 화면에는 성공 1, 실패 1이라는 상태가 표시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록 화면을 누구나 보고 있었는지는 업무 환경에 따라 달랐다.
“이걸 보면 누구든 알았겠네요.”
“그걸 모든 사람이 봤다는 증거는 없죠.”
“그럼 누가 봤는지를 찾는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그 사람이 무슨 결정을 할 권한이 있었는지도요.”
우리는 인쇄실 사진을 다시 살폈다. 책상 옆에는 작은 게시판이 있었다. ‘오류 발생 시 완료 처리 금지’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던 것 같지만, 촬영 시점과 정확한 문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종이 쪽수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출력물과 그렇지 않은 출력물이 함께 쓰였던 기록도 있었다.
한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아주 쉬운 실수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된 거네요.”
“그 실수는 실제로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경고를 낮추는 버튼을 눌렀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요.”
실수와 이용은 다르다. 한 사람의 실수를 확인하면 뒤의 악의를 덮기 쉬워진다. 악의를 찾는다고 앞의 실수가 없던 일도 되지 않는다. 둘을 하나로 묶는 순간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빠져나간다.
오후 세 시에는 출력실 업무를 맡았던 두 사람의 진술을 다시 대조했다. 나는 경찰이 아니라 공식 진술 원본을 볼 수 없었기에, 김주하가 자신의 동의를 받아 제공한 당시 개인 메모와 이미 공개된 설명만 비교했다. 그 메모에는 ‘노랑 불, 한 장, 마감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감 요청이라는 말은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복도에서 누가 빨리 보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 이름을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말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혼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김주하는 눈을 감았다. 오래된 하루를 재현하라는 요구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기억이 흐릿한 사람에게 확실하다고 말하라고 압박하면, 빈칸은 근거 없는 확신으로 메워진다.
“그날 기억하는 게 모호하면 모호하다고 적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기억나는 척하는 게 문제죠.”
그녀는 메모 위에 스스로 정정 표시를 했다. ‘누군가 지시함’이라는 표현을 ‘복도에서 마감 요청을 들었다고 기억함, 화자 불명’으로 바꿨다. 그런 정정이 회사의 불편을 불러오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수사관에게 원본 메모와 수정 전후 기록을 함께 제출하라고 말했다. 내용 자체를 바꾸지 않고 사실을 구별하기 위한 정정이라는 점을 남겨야 했다.
한유리는 김주하가 나간 뒤 조용히 물었다.
“왜 다들 사실대로 말하면 손해를 보는 걸까요?”
“사실은 보통 늦게 도착합니다. 잘못된 기록은 먼저 퍼지고요.”
“그럼 나중에라도 돌아옵니까?”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김주하의 계약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회사가 정정한 문서를 받아도 누군가의 기억에는 이미 그녀가 고장을 방치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기록을 바로잡으면 적어도 다시 같은 거짓말을 증명할 필요는 줄어들겠죠. 그 다음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는 일입니다.”
그날 오후 말미에는 출력기 유지보수 업체의 오래된 안내 페이지도 확인했다. 노란 불은 재시도를 뜻했지만, 특정 오류 코드와 함께 뜰 경우 재인쇄를 중지하도록 돼 있었다. 김주하는 단순 색깔만 기억했다. 실제 오류 코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작은 진실 하나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결론을 서두르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다.
저녁, 오선영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기계는 그날 오전 9시 41분 전에도 여러 번 용지 걸림을 일으켰다. 보수 요청이 접수돼 있었는데 당일 마감 업무가 밀린다는 이유로 수리가 다음 날로 미뤄졌다. 당시 관리자는 출력이 계속된다는 사유로 급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우연한 고장이 아니라 예견 가능한 문제였네요.”
“기계 고장은 예견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고장을 이용할 사람의 행동까지 안다는 건 다른 얘기야.”
나는 다시 한 줄을 썼다. 예방하지 않은 업무상 문제와 경고 하향을 실행한 행위를 따로 표시했다.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오전 9시 43분이었다.
밤 8시, 김주하가 내게 짧은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고장표는 빨간색이 아니었어요. 노란색이었어요. 빨간색은 출력 중단이고 노란색은 출력 재시도였거든요.’
사소한 색깔 차이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날 경고가 떴는데도 왜 멈추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 김주하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유일한 구분일 수 있었다.
나는 녹음의 원본 보존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내용이라도 사실이라면 빼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날 밤 익명 발신자가 사진을 하나 보냈다. 두 번째 장이 끼지 않은 출력물 위에 누군가 손으로 쓴 메모였다.
‘누락은 알고 있었다.’
서명은 없었다. 시각도 없었다.
나는 사진을 저장하고 종이 한 장 위에 적었다.
‘누가 알았는지 모르는 문장으로, 모든 사람이 알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음 순간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왜 그 빈 종이를 보관하고 있었을까. 나중에 누군가에게 잘못을 돌리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정말 멈춰야 했던 일을 기록하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두 가능성을 모두 남겼다. 어느 한쪽을 지우는 것은 아직 이르다.
제14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