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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43화
PAYLUA ORIGINAL · 제143화

143화. 받지 않은 사람의 추적 번호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64자

오프라인 책장
추적 번호는 있었다. 그런데 주소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주소를 표시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번호의 앞자리 여덟 글자는 온새문서지원이 쓰는 구형 형식과 같았다. 마지막 두 자리는 사진을 확대하면 픽셀이 뭉개졌다. 고의로 가렸는지, 저장 과정에서 손상됐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2027년 3월 19일 금요일 오전, 나는 한유리에게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갖고 있는 파일에서 어느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지만 알려줬다. 자료가 여기저기 복사될수록 최초 생성본과 편집본을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어제의 게시물이 그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지금은 파일을 믿지 못합니다. 우리 둘 다 여기에 뭘 덧붙이거나 바꿨다는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한유리는 자신의 보관본과 내가 받은 파일의 해시값을 기록했다. 우리는 파일이 같은 것인지부터 확인했다. 같지 않았다. 그림의 해상도가 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용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진을 메신저로 전송하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선영은 온새문서지원에서 확보된 추적 번호 생성 규칙과 표본을 대조하고 있었다. 실제 사용자 기록에 접근하는 일은 수사기관이 해야 했다. 내가 사적으로 접속해 확인할 권한은 없었고, 그런 일을 하면 오히려 중요한 증거를 오염시킬 수 있었다. 오후에 그녀가 연락했다. “이 번호의 처음 여덟 자리는 프로그램 형식과 일치해. 그런데 뒤쪽이 핵심이야. 발송 건별로 달라지는 숫자라서 그게 없으면 원본을 특정할 수 없어.” “그걸 지운 사람은 알고 있었겠군요.” “그렇게 단정하지 마. 스캔할 때 가장자리가 잘릴 수도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다만 업체 쪽에서 확인한 내용이 하나 더 있어. 02-A라는 코드는 수신자 코드가 아니라 출력 양식의 분기 번호로도 쓸 수 있대.” “같은 문서가 두 번 만들어졌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까?” “가능성은 있지. 그런데 특정 파일에 그 정의를 썼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해.” 전화를 끊은 뒤 한유리와 과거 문서를 펼쳤다. 02-A는 배정우의 수신 여부와 관계없이, 내부 검토용 문서에서 사용한 형식 번호일 수 있었다. 02-B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실제로 받은 첫 이메일의 첨부파일은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 파일이 02-B 생성 목록의 바로 그 객체인지는 별개였다. “그럼 누군가 우리에게 일부러 다른 뜻으로 읽게 했다는 건가요?” “모르죠. 다만 그렇게 읽으면 범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나는 두 개의 표를 작성했다. 하나는 익명 발신자가 주장한 사건의 순서. 다른 하나는 자료로 입증된 사건의 순서. 첫째 표에서는 배정우가 나와 같은 날 살인 예고를 받았다. 둘째 표에서는 단지 비슷한 코드의 파일이 만들어졌고, 내가 실제 메일을 받았으며, 배정우의 열람은 알 수 없었다. 그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었다. 어떤 사람이 미리 죽음을 알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면, 그 사람이 실제로 내용을 알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오후에는 오래된 고객 지원 문서를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자료를 관리하던 시절, 문서의 발송 번호와 회신 번호를 한데 적는 관행 때문에 보험금 지급이 중복 처리된 적이 있었다. 그때 담당자는 모든 기록에 이름이 있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작 해당 고객이 문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은 석 달 뒤에야 확인됐다. 나는 그때 보존해 둔 익명화된 교육용 양식을 찾아냈다. ‘접수 완료’, ‘전달 처리’, ‘수령 확인’ 세 칸이 한 줄에 붙어 있었다. 세 칸 중 첫 번째가 채워지면 일부 조회 화면에서는 행 전체가 녹색으로 표시되는 결함이 있었다. 신입 직원은 녹색을 보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착각했다. 악의를 품은 사람이라면 그 색깔만 보여주고 고객이 보험금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한유리에게 양식을 보여줬다. “이건 배정우 기록과 같은 시스템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왜 상태값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례죠.” “그때는 누가 책임졌어요?” “중복 지급을 승인한 사람도, 색깔 표시를 고치지 않은 조직도 각각 시정을 했습니다. 일부는 뒤늦었지만요.” “그럼 이번에도 누군가 고쳐야겠네요.” “네. 진실을 알아내는 것과 같은 오류가 다시 안 생기게 하는 건 서로 다른 일이니까요.” 한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서 조사관님도 예전엔 저 녹색을 보고 믿은 적이 없나요?” 나는 웃지 못했다. 있었다.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고객에게 실제 확인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피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내 책임을 없애주지는 않았다.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색깔을 보지 않고 원자료를 찾습니다.” 그녀가 그 이야기를 기사에 쓰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옛 실수를 남에게 교훈처럼 팔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은 사람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례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쓰여도 좋다고 했다. 서류철을 덮자 2026년 11월 2일의 첫 메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날 나는 PDF의 사건 발생 시각을 보고 움직였다. 만약 누군가 그 전에 수신 상태를 미리 녹색으로 만들었다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진짜 미래가 아니라 내가 믿을 만한 화면 하나였을 것이다. 그 가능성 역시 아직 증거가 없었다. 나는 새로운 메모의 제목에 굵은 글씨로 ‘가설’이라고 적었다. 저녁 무렵 박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면접을 본 회사에서 추가 자료를 요청받았다고 했다. 과거의 허위 방문 예약 기록을 왜 지우지 못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지울 수가 없어서 보존한 건데요.” “맞습니다. 삭제하면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죠.” “그럼 저는 계속 설명해야 하나요?” 나는 대답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다. 기록을 정확히 보존하는 일이 옳다고 말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정직하게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매번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옳지 않았다. “증빙을 갖춰 정정 요청하셨으니, 이제는 회사가 신청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를 또 보내실 때는 범위와 목적을 명확히 해두세요.” “저도 제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기록을 더는 제 책임처럼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나는 그날 밤 보고서 초안에서 ‘피해자’라는 단어를 하나 지웠다. 박혜림은 사건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못된 예약을 공식 절차로 막고 면접에 참석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선택을 빼앗으려 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밤 10시가 조금 지났을 때 새로운 메일이 왔다. 제목은 ‘실수의 값’이었다. 첨부된 것은 영수증 이미지였다. 지난해 11월 2일, 서울의 한 무인 출력점에서 결제된 소액 카드 거래. 금액은 1,800원. 하단에는 ‘문서 2부’라는 글씨가 있었다. 메일 본문은 한 문장이었다. ‘서 조사관님은 컴퓨터에서 나온 파일만 찾고 계십니다.’ 나는 영수증의 날짜와 카드번호 일부를 확인했다. 그 정보만으로 결제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상호도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대가 왜 이 사진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전자우편이 전자우편으로만 전달됐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파일을 출력했다면, 02-A와 02-B는 메일이 아니라 종이로 이동했을 수도 있었다.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반박했다. 무인 출력점에서 1,800원을 쓴 사람은 서울에 많다. 문서 두 부를 출력했다고 해서 그 종이가 사건기록이라는 보장은 없다. 악역이 보낸 사진을 내 추론의 증거로 만들지 말 것. 나는 수첩을 다시 폈다. 맨 위에 적었다. ‘종이 전달 가능성. 출력 영수증과 사건기록 연계 미확정.’ 이런 문장들만 늘어간다고 수사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만든 길로 뛰어들지 않게 해주는 작은 표지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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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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