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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42화
PAYLUA ORIGINAL · 제142화

142화. 대리 처리자는 사람이 아니다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73자

오프라인 책장
‘대리 처리자’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 말을 처음 확인한 날, 나는 서류 한 장 때문에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다시 전화할 뻔했다. 하지만 오선영이 먼저 제지했다. “가족에게 무언가 물으려면, 그게 왜 필요한지부터 정리해. 누군가 배정우 이름을 넣은 표를 보냈다고 해서 유족에게 설명할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 2027년 3월 18일 목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통화기록을 닫았다. 맞는 말이었다. 배은정은 이미 배정우의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추측을 들었다. 확인되지 않은 파일 때문에 또다시 ‘고인이 무엇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그 질문 자체가 그녀에게는 새로운 혐의처럼 들릴 수 있었다. “그럼 ‘대리 처리자’의 시스템 정의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걸 지금 하고 있어. 업체 기술 담당자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나는 현장 수사에 참여할 권한이 없었다. 대신 과거 보험사기 조사 때 확보했던 회신 양식과 민원 처리 문서를 비교할 수는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 두꺼운 파일철을 꺼냈다. 같은 단어가 문서마다 달리 쓰였다. 어떤 회사에서 대리 처리자는 실제 위임받은 사람이었지만, 어떤 기관에서는 미배달 문서를 처리하는 자동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다. 단어 하나를 사람으로 해석하면 모든 행위에 얼굴이 붙는다. 그 얼굴을 찾아가는 동안 진짜 시스템은 손도 대지 않고 남아 있다. 오후 한 시, 온새문서지원의 기술담당 백소정이 회사의 공식 설명 자료를 통해 답변했다. 오선영은 수사상 공개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내게 설명했다. 구형 프로그램의 ‘대리 처리자’는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예컨대 주소 오류 때문에 반송된 자료를 다시 전달 대기열에 넣는 자동 계정을 그렇게 불렀다. 전달 완료라는 표시 역시 상대방의 열람을 뜻하지 않았다. 전송 수단의 첫 단계가 끝났다는 상태값이었다. “그럼 배정우가 받았다는 말은 무너지는군요.” “아직 그 말을 세운 적도 없지.” 오선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분명 단 몇 초 동안 배정우가 자기 이름으로 된 사건기록을 받는 장면을 떠올렸다. 상대는 그런 장면을 내 머릿속에 넣는 데 성공했다. 백소정은 교육 영상에 없는 추가 사정을 설명했다고 했다. 2026년 11월에는 구형 용어를 새 화면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일부 조회 창에는 예전 표현이 남아 있었다. ‘전달 완료’와 ‘처리 대기’가 같은 항목의 다른 화면에서 함께 보일 수도 있었다. 이것만으로 오류인지 조작인지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나는 새로운 표를 만들었다. 왼쪽에는 발신자의 주장, 오른쪽에는 독립적으로 확인된 사실. ‘배정우는 22시 21분 전달 완료’ 옆에는 ‘시스템 처리 완료 가능, 본인 열람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한유리가 그 표를 읽더니 말했다. “이런 표는 독자가 싫어하겠네요.” “보지 않는다고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제가 독자라면 범인이 누구냐고 소리 지를 것 같아요.” “저도요.”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곧 휴대전화가 울리자 얼굴이 굳었다. 온라인에 새 글이 올라왔다. ‘배정우, 죽기 전 살인 예고 열람 확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첨부 이미지에는 어제 익명 메일의 표가 쓰였다. 오른쪽 끝에 ‘전달 완료’만 남기고, 아래의 대리 처리자 문구는 잘려 있었다. “누가 올렸습니까?” “익명 계정이에요. 아직 확인 안 돼요.” “우리 자료가 아닙니다. 공통 발신자가 여러 사람에게 뿌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퍼지면 유족이 또 당하겠죠.” 한유리는 바로 기사를 쓰지 않았다. 먼저 오선영에게 해당 게시물의 원본 보존 방법을 문의했다. 경찰의 공개 가능한 공식 설명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온라인 게시판에 사실 확인 요청을 남겼다. 제목에는 ‘열람 확인’이라는 단정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썼다. 책임 있는 반박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이제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늦은 오후 한유리는 게시물의 댓글을 읽다가 갑자기 노트북을 닫았다. “사람들이 유족 주소를 찾고 있어요.” “주소가 실제로 올라왔습니까?” “아니요. 이름이 같은 사람들의 주소를 추측해서 붙이고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댓글 하나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고, 엉뚱한 주소라는 설명을 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잘못된 주소를 굳이 다시 반복하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결과가 생긴다. “주소를 인용하지 말고, 게시물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을 신고하세요.” “그럼 사람들이 제가 사실을 감춘다고 할 텐데요.” “그런 말이 나오더라도 실제 사람의 거주지를 시험하는 일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플랫폼의 신고 기능과 공식 연락 창구를 이용했다. 곧이어 게시물 일부가 가려졌지만 다른 계정으로 비슷한 글이 다시 올라왔다. 악의가 하나의 서버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계속 복사되는 이미지의 최초 유통 시각을 기록했다. 그때 오선영에게서 짧은 질문이 왔다. 익명 메일의 표에서 사용된 용어가 구형 프로그램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설명을 어디까지 공개해도 되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답했다. 프로그램에 같은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진의 진본을 증명하지 않는다. 공식 설명을 낼 때에도 그 구분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유리가 내 대답을 읽었다. “이렇게 쓰면 사람들한테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로 들리겠죠.” “지금 모르는 게 있습니다. 모르는 걸 감추는 문장이 나중에 더 큰 일을 만듭니다.” 그녀는 침묵하다가 자기 취재 파일 이름을 바꿨다. ‘배정우 수신 확인’에서 ‘배정우 수신 주장 검증 중’으로. 파일 이름 하나였지만, 그 차이를 읽는 사람이 나중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에 맺힌 물방울을 보며 처음으로 이 사건의 시간을 거꾸로 세어봤다. 사람이 죽은 뒤에 만들어진 오해를 지우느라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 그걸 알고 있다면, 진짜 범행을 숨기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서는 안 됐다. 저녁, 내 사무실로 배은정의 메시지가 왔다. ‘또 동생이 누구를 죽이려 했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사실입니까?’ 나는 내용을 세 번 고쳤다.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쓰려다가 지웠다. 그 역시 확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현재 확인된 기록으로는 배정우 씨가 해당 예고문을 직접 받아 읽었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게시물의 표현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담당 수사관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손끝의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한참 뒤 답했다. ‘알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네요.’ 그날 밤 한유리는 또 다른 사실을 찾아냈다. 논란의 이미지를 최초로 올린 계정이 이전에도 박혜림의 허위 방문 예약 문서를 인용한 적이 있었다. 같은 계정이라고 같은 제작자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계정을 이용해 두 피해자의 이름을 연결하려 한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오선영은 게시물 보존을 요청했다고 했다. 경찰이 실제로 누구에게 접근할지는 수사 절차에 달려 있었다. 나는 02-A 표를 다시 열었다. 마지막 줄에는 작게 적힌 식별 번호가 있었다. 발신자 주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일이 배달 대기열에 들어갔을 때 생성되는 추적 식별 번호와 형식이 닮아 있었다. 이 번호가 진본이라면 출처가 있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추적 번호는 배달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달 실패를 기록하기 위해서도 생성된다. 나는 메모했다. ‘누군가 받았다는 표는, 받지 못했다는 증거의 첫 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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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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