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이 보낸 메일은 두 통이었다.
한 통에는 ‘이번 주 마감 일정 준수’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한 통에는 ‘검토자가 없는 건은 승인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 다 2025년 8월에 발송됐다. 그런데 인터넷에 퍼진 것은 앞의 것뿐이었다.
2027년 3월 13일 토요일, 백이준은 회사 내부에서 확보한 원본 회신 범위를 설명했다. 그는 최명환을 변호하려고 나를 부른 게 아니라고 말했다. 두 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한 통만 보는 것은 조사하는 사람의 실수라고 했다.
“그러면 최명환 실장이 경고 하향에 반대했다는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메일은 일반적인 업무 지침이니까요.”
“첫 번째도 일반적인 지침입니다.”
“맞습니다.”
나는 그제야 백이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빨리 하라는 지시와 확인되지 않은 건을 멈추라는 지시는 모순되지 않는다. 둘을 동시에 내리고도 이후 현장에서는 어느 한쪽만 강조됐을 수 있다. 그때 마지막 결정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최명환의 이름만 외치는 건 쉽고 위험한 일이었다.
백이준은 서버에서 보존된 발송 정보와 실제 수신자의 확인 여부를 분리해 보여줬다. 마감 독촉은 여러 부서에 보내졌고 열람 흔적도 많았다. 검토자 공석 경고 메일은 수신 범위가 더 좁았다. 일부 사람은 발송만 확인됐고 열람 여부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 메일을 못 본 사람도 있겠군요.”
“있을 수 있습니다.”
“읽지 않았다는 사실과 못 받았다는 사실도 구분해야겠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지난 여섯 달 동안 끝없이 되풀이해온 구분이었다.
오후에 최명환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달랐다.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서진혁 씨. 당신은 내가 무엇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록이 중요합니다.”
“또 그 말이군요.”
“예.”
그가 짧게 웃었다.
“나를 계속 의심하는 건 자유지만, 적어도 그날 인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는 마시오.”
나는 수첩에서 손을 멈췄다.
“그 말씀은 누가 했습니까?”
“무슨 말이오?”
“저는 최 실장님이 인쇄 실패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누가 했습니까?”
상대가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승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무심코 튀어나온 정보가 그의 사전 지식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뉴스에 나왔소. 두 번째 장이 출력되지 않았다는 기사. 내가 그걸 못 볼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즉시 한유리에게 문의했다. 실제로 그 기사는 며칠 전 공개돼 있었다. 나는 수첩의 ‘사전 인지’라는 두 글자를 지웠다.
“최 실장님. 제가 그 질문을 한 건 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오해하도록 말한 건 제 잘못입니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당신은 적어도 사과는 할 줄 아는군.”
“그렇다고 제 질문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소.”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 창밖을 봤다. 순간적인 말실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최명환을 범인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를 악인이 나에게 적용할 수도 있었다.
오후 네 시, 백이준이 회신 자료 하나를 추가로 보냈다. 2025년 8월 21일에 회사가 사용하던 업무 자동화 정책 목록이었다. ‘마감 임박 시 대기열 재확인’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기본 설정은 ‘검토 공백 경고 유지’였다. 그런데 25일 오전 기록에는 실제로 경고를 참고로 낮추는 실행이 있었다.
“정책이 바뀌었습니까?”
“아니요. 기본 정책 자체의 변경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5일 현장 실행에서 예외 경로가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누가 열었는지를 찾아야죠.”
“그렇습니다. 다만 운영 권한과 실제 업무 승인 권한은 나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황이 있었다. 2025년 지침은 멈추라고 했고, 실제 시스템은 지나갔다. 누군가는 둘 사이의 틈을 이용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버튼 외에 이 예외 경로를 쓸 수 있던 사람들의 승인 이력을 봐야 한다.
저녁에 정민규가 간단한 표를 만들었다는 연락을 들었다. 기존에는 ‘실행 계정’ 하나만 적혀 있던 수사 표를 ‘실행 권한을 받은 사람’, ‘실제 사용한 사람’, ‘실행 결과를 승인한 사람’ 세 열로 나누었다. 각각 비어 있는 칸이 많았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함부로 선을 긋지 않게 됐다.
“그 아이가 나보다 잘할 때도 있어.” 오선영이 말했다.
“그럼 칭찬해 주세요.”
“했어. 그리고 보안교육 다시 받으라고도 했지.”
나는 웃었다. 실수를 바로잡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정민규가 그걸 배워가고 있었다.
밤에는 임소율이 회사의 수정된 서류를 받았다. 예전의 ‘철회’ 표기는 정정됐지만 비용 귀속 항목은 아직 별도 심사 중이었다. 그녀는 서류를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다.
“적어도 제가 신고를 취소한 사람은 아니게 됐네요.”
“처음부터 아니었습니다.”
“그걸 남들도 알게 된 거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래전 화진모빌리티 지급 승인서를 다시 펼쳤다. 거기에도 마감 일정과 검토 중지 조건이 함께 있었다. 그때 회사는 일정을 먼저 지키는 부서를 능력 있는 부서로 평가했고, 오류를 보고한 직원에게는 왜 제때 끝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는 진술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규칙을 깨라고 명령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규칙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구조를 이유로 최명환이 살인까지 지시했다고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조직의 잘못과 개인의 범죄를 구분했다. 회사의 문화가 문제를 만든다고 해도 그 문화를 악용한 구체적인 사람과 행위를 확인해야 한다.
그날 밤 백이준에게 마지막 질문을 보냈다. “두 번째 메일의 수신자 중 누가 발송 사실만 확인됐고 실제 수령은 불명인지 목록으로 구분해줄 수 있습니까?” 그는 개인 이름을 무조건 알려줄 수는 없지만 상태별 집계를 공식 회신하겠다고 답했다.
숫자만으로는 범인을 잡을 수 없다. 그래도 누군가가 ‘모두에게 알렸다’고 주장할 때 반박할 수는 있다. 모두에게 보냈다는 말은 모두가 읽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처음 받은 살인 예고의 수신자 목록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는 누가 보냈느냐에 집착했지만, 누가 받아 실제로 읽었느냐는 질문을 훨씬 늦게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누군가의 계획이 시작됐을지도 몰랐다.
나는 최명환이 내게 화를 냈던 전화를 다시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모든 실무를 알 수는 없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변명으로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검토 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과 실제 지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리해야 했다. 그가 관리 책임을 질 문제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름이 곧 배정우를 죽인 사람의 이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이 둘을 일부러 붙여놓았다면 나는 그 사람의 가장 쉬운 도구가 될 뻔했다. 내 기분을 자극한 말보다 공식 회신의 빈칸을 먼저 봐야 했다.
그날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익명 발신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최명환의 두 메일 중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그런데 흰색으로 지워진 수신자 부분에 이상한 흔적이 있었다. 회사 밖 업체 주소 하나가 일부 남아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상대가 왜 그 주소를 남겼는지 궁금했다. 바로 업체 이름을 검색하려다가 멈췄다. 먼저 원본의 실제 수신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두 개의 지시가 있었다. 빨리 끝내라. 확인하지 않았다면 멈춰라.
그리고 누군가는 첫 번째만 들었다.
누가 그랬는지보다, 두 번째를 듣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 있었는지 처음으로 묻게 됐다.
제13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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