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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34화
PAYLUA ORIGINAL · 제134화

134화. 사람 없는 요청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98자

오프라인 책장
오전 9시 38분은 사람이 버튼을 누른 시각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확보한 자료에서 그랬다. 2027년 3월 10일, 오선영이 온새문서지원의 감사 보관 자료 일부를 확인했다. 2025년 8월 25일 같은 시각에 만들어진 항목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름은 익명 사진과 달랐다. ‘예외 경고 재분류 요청’이 아니라 ‘예외 경고 분류 질의 접수’였다. “무슨 차이입니까?” 내가 물었다. “하나는 바꿔달라는 지시처럼 들리고, 하나는 어떻게 분류되는지 묻는 기록이잖아.” “사진에선 첫 번째였죠.” “그래. 그런데 업체가 보관한 원문에는 두 번째야. 둘 중 어느 쪽이 나중에 바뀌었는지도 아직 확인 중이고.” 나는 화면을 다시 펼쳤다. 익명 사진의 ‘요청’이라는 단어는 눈에 잘 띄었다. 업체 원문에는 ‘질의 접수’가 적혀 있었다. 정확히 두 글자 차이가 아니라 행위의 방향이 달랐다. 남에게 지시한 사람과 시스템에 문의한 사람을 혼동하면 책임자의 위치도 바뀐다. 업체는 질의의 생성 경로를 설명했다. 전날 예약된 배치 작업이 오전 9시 31분 실행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조건이 맞지 않을 때 분류 규칙을 자동 조회하는 기능이 있었고, 오전 9시 38분에 그 조회가 일어났다. 따라서 그 시각의 항목이 곧바로 사람이 작성한 변경 요청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럼 익명 사진은 조작이군요.” 오선영이 내 말을 자르듯 답했다. “단정하지 마. 업체가 나중에 화면 문구를 바꿨을 수도 있어. 같은 이벤트가 운영 화면에서는 요청으로 표시됐을 수도 있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옳은 말을 듣고도 기분이 나빴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수사가 쉬워지는 게 아니라 내가 쓰려던 문장이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중요한 건 예약 작업이군요.” “그건 맞아. 누군가 처음부터 마감 전에 한 번 더 진행하도록 설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나는 전날부터 고태원에게 연락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출력 한 장을 놓친 일을 인정했고, 그 후에도 왜 그랬는지 끊임없이 자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았는지’ 물어야 했다. 그 질문은 그를 또 범인처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직접 연락하지 않았다. 수사팀이 당시 업무 배정과 예약 작업 설정 이력을 별도로 확인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고태원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오후에 윤세한이 보낸 회신문이 도착했다. 그는 2025년 당시 배치 예약을 직접 작성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계정으로 작성된 운영 매뉴얼의 표준 설정값은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교부 확인이 남아 있으면 진행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원래 기본값이었다. “그럼 어느 순간 바뀐 거네요.” 백이준은 전화기에서 잠시 말을 골랐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로그가 나왔습니다. 다만 적용 시각과 설정 변경 시각은 다릅니다.” “무슨 뜻이죠?” “어떤 정책을 미리 만들어두고 특정 날짜에 켜지게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수첩에 두 칸을 만들었다. 정책을 만든 날과 실제로 적용된 날. 예약 작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9시 43분의 버튼보다 이 두 칸이 중요해졌다. 한유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익명 사진의 9시 38분에 권다정의 이름을 붙인 변형본이 다시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기자가 원본의 진위를 확인하려다가 관련 당사자를 먼저 찾았고, 그 과정에서 권다정의 신규 고용처까지 소문이 번졌다고 했다. “제가 그 기자한테 연락하면 나아질까요?” “제가 할게요. 기자끼리 취재 윤리를 따지는 쪽이 빠를 수도 있어요.”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권다정의 현재 고용처를 묻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또 한 번 그녀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오후 네 시, 회사가 낸 자료에 새 표가 있었다. 2025년 8월 21일 밤, ‘검토자 미지정’ 경고가 예약 작업을 차단하는 조건으로 등록돼 있었다. 25일 오전 9시 40분에도 실제로 경고가 발생했다. 즉 9시 38분에 이 기능이 이미 꺼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 예약만으로는 안 되는군요.” 내가 말했다. “그렇지.” 선영이 답했다. “일정만 잡았다고 중지 표시가 저절로 없어지는 건 아니야. 9시 43분에는 누군가의 실행이 남아 있어.” 이것은 작은 진전이면서 큰 후퇴였다. 나는 드디어 사건을 오래전부터 계획한 사람이 있다는 증거를 찾은 줄 알았는데, 이제 다시 9시 43분의 공용 계정으로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무턱대고 모든 것을 그 손에 뒤집어씌울 수 없었다. 누군가 기다리던 작업을 실행한 것인지, 정상 업무인 줄 알고 누른 것인지, 별도 권한으로 지시를 받은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저녁 6시, 임소율이 찾아왔다. 그녀는 회사에서 받은 비용 귀속 정정 안내문을 보여줬다. 잘못 표기된 ‘철회’는 일부 바로잡혔지만, 그와 연결된 비용 검토 대기열은 아직 예전 상태였다. 문서 하나를 고쳐도 다른 시스템에 남은 판단은 따라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럼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도, 돈은 제 몫으로 남는 겁니까?” “그렇게 남아 있다고 해도 실제 채무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별도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녀가 책상을 짚었다. “언제까지요?” “정확한 기한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서 조사관님은 늘 정확하게 말하시네요.” 칭찬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진실만 말하겠다는 태도 때문에 오늘 바로 필요한 위로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짓 약속은 더 위험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담당 창구에 어떤 상태값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죠.” 그녀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의 적용 시점을 확인하는 동안 또 다른 실수가 생길 뻔했다. 내가 만든 시간표에는 8월 21일의 ‘예약 등록’과 25일의 ‘자동 질의’를 같은 줄에 표시해뒀다. 오선영은 그 표를 보자마자 펜으로 선을 그었다. “이렇게 붙여놓으면 누가 봐도 한 사람이 계획한 것 같잖아.” “실제로 이어진 작업 아닙니까?” “작업의 흐름은 이어져. 사람의 의도까지 이어지는지는 별개야.” 나는 표를 고쳤다. 시스템의 작업 순서를 나타내는 실선은 남겼지만, 인간의 의도를 표시하던 붉은 화살표는 지웠다. 두 색을 나누자 내가 어떤 부분을 추측으로 채웠는지 한눈에 보였다. 오후 늦게 권다정이 자신의 기록을 한 번 더 확인해달라는 연락을 보내왔다. 9시 29분의 메모를 그녀가 썼다는 건 분명했고, ‘보류’라고 적은 것도 확인됐다. 그런데 그 메모를 읽을 권한이 있던 사람의 목록은 당시 근무표와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기 휴가 중인 사람의 이름이 접근 권한표에 남아 있었다. “이것도 그 사람이 접속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알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런데 제가 썼다는 것만 정확하고, 읽은 사람은 모르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 대신 목록과 실제 접속 이력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사람이 열어놓은 문을 다른 사람이 이용한 것인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날 밤, 익명 발신자는 단 한 줄만 보냈다. ‘9시 38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겠죠.’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발신자는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특정할 수 없다고 비웃는 걸까. 나는 추측 대신 원본 접수번호를 기록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9시 38분 앞에 작은 표시를 붙였다. ‘자동 질의 가능성 확인. 사람의 요청 아님.’ 그 아래에는 더 두꺼운 글씨로 적었다. ‘그렇다고 9시 43분의 실행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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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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