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간판은 원효로에 없었다.
한유리가 내게 처음 보여준 것은 검은 차가 아니었다. 차 뒤편의 좁은 골목, 녹슨 셔터 위로 올라온 파란 글씨였다. ‘동해정밀’. 2026년 11월 3일 원효로 인근 주차장에서 찍혔다며 익명 발신자가 보내온 사진에 있었다.
3월 8일 월요일 아침, 우리는 옛 지도 사진과 공개된 사업장 이전 공고를 나란히 놓았다. 동해정밀이라는 이름은 여러 지역에 있었다. 그러므로 같은 간판을 찾았다고 사진의 장소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한유리는 먼저 그 한계를 말했다.
“이름이 같다고 같은 가게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사진의 셔터 손잡이, 전봇대 그림자도 봐야 합니다.”
“번호판은요?”
“지금 상태로는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괜히 추측이 퍼지면 소유주만 피해를 보겠죠.”
그녀는 골목 사진을 확대하고, 그 주변으로 열려 있는 공공 도로 사진 기록을 살펴봤다. 나는 내가 조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건물의 외벽 줄눈을 비교했다. 오후가 되자 한 장소가 후보로 떠올랐다.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외곽의 오래된 공업단지였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었다. 사진 속 간판 아래의 노란 줄은 후보 건물에 없었다. 그 줄은 차선을 표시한 페인트일 수도 있고, 사진의 색 보정으로 생긴 경계일 수도 있었다.
“장소는 못 찾은 거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요. 원효로라고 믿을 이유 하나는 줄였죠.”
한유리는 기자였다. 클릭할 수 있는 제목을 만들어야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후에 ‘원효로 차량 목격’이라는 기획안을 취소했다. 동료가 왜 취소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증명할 수 없어서요.”
그 말이 기사 한 건을 없앴다. 그 기사로 피해를 입을 수 있었던 누군가의 이름도 따라 사라졌다.
나는 오선영에게 사진의 장소 후보와 검증 한계를 전달했다. 선영은 내가 보낸 좌표 비슷한 메모를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진혁아. 네가 찾은 장소에 가서 차를 찾으려고 하진 마.”
“안 갑니다.”
“이번엔 믿어도 되나?”
“제가 찾아간다고 수사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오선영은 그제야 짧게 웃었다. 그리고 현장 탐문이 필요한지는 경찰이 기존 확보 기록과 비교하겠다고 했다.
배은정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오후 네 시였다. 그녀는 배정우 명의 차량의 사진이 계속 퍼지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죽은 동생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고 싶기도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하다고 했다.
“정우가 범인인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우가 아예 회사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라고 해요. 둘 다 정말인가요?”
“둘 다 확인된 결론이 아닙니다.”
“그럼 저는 뭘 믿어야 하죠?”
나는 답을 고르는 데 오래 걸렸다.
“서류를 처음 만들었던 일, 완료를 유보하자고 했던 일, 그리고 사망한 일은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가 나머지를 지우지는 못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제 동생이 마지막 날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는 알 수 있나요?”
“수사팀이 확인 중입니다. 저도 확정된 자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해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상실까지 이해한다고 말할 자격은 없었다.
저녁 무렵 새로운 자료가 들어왔다. 원효로 인근 월 이용권 재인증 서비스의 운영 안내문이었다. 2026년 11월 3일 오후 6시 41분 기록은 차량이 출입구를 통과할 때가 아니라 시스템이 월 이용권을 다시 확인할 때도 생길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이미 알았다. 새 자료는 그 시각에 일괄 재인증 작업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 기록의 존재를 알려줬다.
“그럼 진짜 그날 일괄 작업이 있었는지 확인하면 되겠네요.” 나는 말했다.
“그렇지.” 선영이 답했다. “그리고 실제 차가 움직였는지는 별도로 봐야 해.”
그날 밤 열 시, 한유리는 후보 공업단지의 공개된 옛 전경 사진을 찾아냈다. 작은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있었고, 하나의 셔터에 사진과 비슷한 흠집이 보였다. 하지만 간판 글씨는 다른 회사 이름이었다. 그 회사는 2024년에 폐업했다고 한다.
나는 날짜를 적었다. 2024년의 골목, 2026년이라고 주장하는 사진.
“옛 사진을 가져다 썼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2026년에도 그 간판이 남아 있었는지 확인해야죠.”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방금 반박받은 내 추측을 수첩에서 지웠다.
그날 저녁 나는 사진 속 차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비교했다. 오선영은 등록번호와 실제 이동 자료를 요구했고, 한유리는 촬영 장소를 먼저 찾았다. 배은정은 차에 누가 탔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같은 사진 하나가 세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질문을 만들었다.
작년 보험사기 사건에서도 그랬다. 나는 수리 견적서의 숫자를 봤지만 임소율은 승인자가 누구인지 봤고, 배정우는 그 서류가 어느 계정에서 넘어왔는지를 보려 했을지 모른다. 다만 지금 내가 아는 배정우의 생각은 기록으로 확인된 몇 문장뿐이다. 그것을 한 사람의 일생으로 만들 수 없다.
밤에 후보 장소의 이전 임차인이 남긴 공개 연락처를 찾았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열두 시 가까운 시간에 사설 조사원이 낯선 번호로 오래전 가게를 물으면 그 역시 의심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대신 공개 자료의 발행 날짜와 사진의 사용 허락 범위를 표에 적었다. 한유리는 다음 날 보도 가능한 부분을 별도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자꾸 새 소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건 수사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 아니라, 수사의 기초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밤 11시 4분, 익명 발신자로부터 또 메시지가 왔다.
‘장소를 찾으셨군요. 이제 차량 안에 누가 탔는지만 보시면 됩니다.’
나는 문장을 읽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나를 그 차량으로 몰고 가려는지 먼저 생각했다. 상대가 사진을 보낸 시점과 우리가 사진이 원효로인지 의심하기 시작한 시점은 다르다. 상대는 처음부터 특정 골목이 눈에 띄기를 원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 보는 첨부가 있었다. 차 문 유리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였다. 누군가 그 부분만 크게 잘라서 보낸 이미지였다.
그림자에는 얼굴도 옷도 없었다. 두 개의 명암만 겹쳐 있었다. 나는 그걸 사람 둘의 흔적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원본 사진 전체를 요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익명 발신자에게 요구하면 어떤 응답도 상대의 시간표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답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확보된 사진과 공개 가능한 장소 기록을 비교하는 것부터 계속했다.
한유리가 말했다.
“진혁 씨. 이번엔 저 사람이 원하는 걸 안 보려고 너무 애쓰는 건 아니에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걸 피하는 것도 상대에게 끌려가는 일이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뿐 아니라 실제 사진이 무엇을 보여주는지에도 시간을 쓰기로 했다.
차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는 보였다. 사진의 유리에는 달리는 차의 흔들림도, 정차한 차의 확실한 표식도 없었다. 그저 유리였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그 반사된 그림자에 넣을 수 없었다.
새벽에 오선영이 문자를 보냈다.
‘사진의 후보 장소에 대한 공식 대조 요청 진행. 유족에게는 아직 추정이라고 안내했어.’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상대가 던진 사진 한 장이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사진을 장소로 돌려놓고 있었다. 그게 오늘의 유일한 진전이었다.
제1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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