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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31화
PAYLUA ORIGINAL · 제131화

131화. 확인되지 않은 이름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27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그날 밤 ‘09:38’이라는 숫자를 수첩에서 지웠다. 정확히는 그 숫자 옆에 그려둔 화살표를 지웠다. 재분류 요청에서 경고 하향으로 이어지는 굵은 선이었다.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38분에 누군가 요청했고, 5분 뒤 누군가 실행했다는 추론을 뜻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아직 건너뛰어서는 안 될 질문이 있었다. 그 요청이 실제로 있었는가. 3월 7일 일요일 오전, 나는 130화 마지막에 받은 사진을 종이에 출력했다. 날짜와 번호 외에 신뢰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화면 상단에 보이는 업체 로고는 실제 로고와 같았지만 인터넷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별도 검토’라는 표현은 내부 문서에 쓰이던 말이었지만 그것 또한 유출된 매뉴얼에 있었다. 사진만으로 누군가의 의도를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또 다른 권다정을 만들어낼 것이다. 오선영은 점심 무렵 전화를 받았다. “사진의 9시 38분이 진짜인지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래. 업체에 요청해뒀어. 그런데 일요일이잖아. 원본 자료에 접근 가능한 담당자가 제한돼 있어.” “답을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네가 제일 못 지키는 말인데.” 나는 웃지 못했다. 실제로 나는 서둘렀고, 서두른 나머지 어떤 기록에는 ‘누군가가 고의로’라는 말을 쓰려 했다. 아직 실수와 고의의 경계를 넘을 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나는 오후 내내 세 가지 기록을 분리했다. 9시 29분에 권다정이 적어둔 보류 요청번호. 9시 36분 윤세한 명의 계정의 조건 검토. 9시 43분 공용 계정의 경고 표시 하향. 새로 등장한 9시 38분은 중간 어디에나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사람은 이야기의 빈칸을 메우는 정보를 좋아한다. 범인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오후 세 시쯤 박혜림에게 메시지가 왔다. 채용 담당자에게 지난번 서류가 왜 정정됐는지를 다시 묻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회사가 왜 물었는지 추측하지 않고, 사실확인서에서 확인된 부분만 전달하라고 했다. 그녀는 잠시 후 전화를 걸었다. “서 조사관님. 그런데 제가 매번 증명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요구받는 건 부당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누가 했는지 모르는데, 왜 제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계속 증명해야 하죠?” 대답하기 어려웠다. 원본을 찾는 일이 언젠가는 그녀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본의 위치를 한 칸씩 좁히는 동안 그녀는 계속 면접 날짜를 놓치고 있었다. “정정 자료가 전달됐다는 수신 확인도 확인해 보시죠. 제가 당장 범인을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가 어떤 설명을 받았는지는 남길 수 있습니다.” “이번엔 제가 직접 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저녁 무렵 한유리가 전화를 했다. 익명 발신자가 보낸 9시 38분 화면이 기자 두 명에게도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기자가 받은 사진의 하단에는 내 사진에는 없는 한 줄이 있었다. ‘요청자: 권다정.’ 나는 속이 서늘해졌다. “그 사진 보도했습니까?” “안 했어요. 제가 확인해 달라고 부탁받았고요. 그런데 진혁 씨, 이름이 없던 사진에 갑자기 이름이 붙으면 보통 뭘 먼저 의심해야 하죠?” “누가 보태 썼는지요.” “맞아요. 그렇다고 처음 사진이 원본이라는 보장도 없고요.” 우리는 이미지에 찍힌 픽셀 배열과 압축 흔적을 비교하기로 했다. 내가 임의로 수사 증거를 감정할 수는 없으니 한유리는 공식 검증 방법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나는 두 파일이 다른 수신자에게 다른 책임자를 보여준다는 사실만 오선영에게 전했다. 밤 8시가 넘어 정민규에게서 뜻밖의 문자가 왔다. 그는 직접 누군가를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회신문에서 발견한 형식상의 차이를 알렸다. ‘처리 예정 시각과 요청 생성 시각이 같은 줄에 표시되는 구형 양식이 있었습니다. 요청자 칸은 별도 페이지입니다. 지난번처럼 개인 이름을 먼저 추측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수사 내부 자료를 보내지 말라고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필요한 부분만 보내고 절차를 지킨 그의 행동을 내가 또 의심만으로 평가하려던 순간이었다. 대신 오선영에게 정민규가 전한 공개 가능한 설명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나는 권다정에게 다시 연락할지 망설였다. 사람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대가 이미 면접을 앞둔 사람에게 잘못된 이름표를 붙여놓았다면, 내 확인 전화도 새로운 압박이 될 수 있다. 그녀의 동의를 받고서야 파견업체의 공식 정정 창구에 대한 안내를 전달했다. 권다정은 그날 오전 받은 문자도 보여주었다. ‘지난해 승인 내역에 관한 사실 확인, 미회신 시 협조 거부로 기록.’ 보낸 번호는 회사 대표번호와 비슷했지만 한 자리가 달랐다. 그녀는 이미 공식 담당자에게 문의해 그 문자가 회사에서 발송한 것이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그럼 신고하세요.” 내가 말했다. “무슨 신고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진도 있고 문자도 있고, 인터넷엔 제 얼굴이 있어요.” 나는 방금 한 말을 후회했다. 신고는 해결책의 이름이지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안내가 아니다. 그녀가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회사에 설명을 요구할 때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정리였다. 나는 동의를 받은 자료에 한해서 접수 시각과 내용, 확인 상태를 세 칸으로 나누는 방식을 설명했다. 무엇을 신고할지는 본인과 담당 기관이 판단하도록 남겨두었다. 권다정은 마지막에 물었다. “서 조사관님도 제가 실수했다고 생각해요?” “보류라고 적고 다음 사람에게 다시 강조하지 않은 점은 당시 절차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경고를 낮췄다는 주장에는 아직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제 잘못이라고 인정하면 그 사람들이 이길까요?” “정확히 한 일만 인정하는 건 패배가 아닙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내 수첩에서도 같은 선을 그었다. 한 사람의 태만은 책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태만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까지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과거의 내 조사보고서에도 그런 구분이 제대로 되어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내가 살인을 막으려다 처음으로 임소율에게 전화를 걸었던 밤을 떠올렸다. 그 연락이 회사 안으로 새어 나간 뒤 정민규를 탓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내가 그날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임소율의 안전을 누가 확인했을까. 필요한 연락과 불필요한 유출을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그날부터 우리에게 필요했던 기술이었다. 밤 9시 14분, 또 다른 익명 메일이 왔다. ‘서 조사관님, 이번에도 사람 이름을 지우셨군요.’ 메일 본문에는 권다정이 근무했던 파견업체 계약 담당자의 사무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새 채용 면접을 앞둔 권다정에게 그 번호로 연락하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다시 묻는 장면일 것이다. 전화를 걸면 내 음성도 남고, 그 내용이 또 다른 ‘확인 완료’로 변할 수 있었다. 대신 해당 번호가 실제 공식 연락처인지 확인 가능한 범위를 찾아보고, 개인정보 노출 부분을 가려 오선영에게 보냈다. 그리고 권다정에게는 익명 메시지에 적힌 연락 지시에 응하지 말고 공식 창구로 먼저 확인하라는 짧은 안내만 전했다. 그녀는 한참 만에 답장했다. ‘이미 회사에서 연락 왔어요. 제게 또 사직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못된 사진 한 장은 아직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사진 때문에 한 사람의 현재가 또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수첩에 적은 문장은 숫자가 아니었다. ‘확인되지 않은 이름이 가장 빨리 실제 피해를 만든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 ‘9시 38분은 아직 사람의 행동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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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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