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이메일의 괄호요?"
오선영은 내가 보낸 비교표를 한참 들여다봤다고 했다. 원본 메일 여섯 건의 제목에는 모두 '(수신 확인 불필요)'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화진모빌리티 직원이 발신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회사 밖으로 나온 안내문을 본 사람도 그대로 따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달할 가치는 있겠지만, 특정인을 지목하진 못하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 판단이 맞아. 그런데 너는 저 표현을 왜 기억해?"
"그 회사에 서류를 요청할 때마다 제목에 붙어 있었거든요. 답장을 하려다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사건 단서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의미 있어 보이겠지."
그녀는 내 편견을 정확히 찔렀다. 나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원자료를 남겼다. 제목 규칙이 사용된 시기, 자동 생성 여부, 외부인이 볼 수 있었는지를 따로 정리했다.
11월 6일 오전, 한유리에게서 원효로 목격자 관련 추가 자료가 들어왔다. 그녀는 취재 동의를 받은 진술을 경찰에도 전달했다고 했다. 직원은 우산 아래의 여성을 임소율이라고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 건물 관리자가 '임 대리가 올 거다'라고 한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 사람이 누구 이름을 들었다는 건 분명한가요?"
"녹음에는 그렇게 말합니다. 다만 관리자 이름은 밝히지 않았어요."
"그러면 임소율이 왔다는 사실보다, 누가 임소율이 올 거라고 말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그 생각이에요."
한유리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저도 회사로부터 경고장을 받았거든요. 익명 제보를 기사화하면 형사 고소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에요."
"사실 검증을 포기하라는 뜻입니까?"
"그렇게 적혀 있진 않죠. 다만 취재원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나는 함부로 조언하지 않았다. 기자에게 출처는 생명과 같다. 내게 취재원 보호를 설명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법률 검토는 받아보세요. 저도 제 자료에 대해서는 정식 경로로만 확인하겠습니다."
"걱정해서 전화한 건 아니에요. 상대가 지금 어디에 힘을 쓰는지 알려 드리려고요."
그녀는 끊기 직전 덧붙였다.
"그런데 백이준 실장은 정중해요. 아주 정중하게 사람을 지치게 하죠."
나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백이준은 단 한 번도 거친 협박을 하지 않았다. 대신 누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구분했다. 그 논리를 깨뜨리려면 분노가 아니라 더 나은 증거가 필요했다.
점심 무렵 나는 오선영에게서 서면 한 장을 받았다.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과거 내가 작성한 조사 메모의 원본성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확한 질문은 '2025년 8월 배정우의 진술 당시 다른 사람이 동석했는가'였다.
나는 기록을 확인했다. 동석자는 없었다. 대신 통화 동의 여부와 메모 작성 시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사실만 적었다. 지난해 면담에서 배정우가 서류 작성 사실을 인정했다는 문장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 말을 과장할 수는 없었다.
오선영은 "좋아"라고 답했다.
"한 가지 더." 그녀가 말했다. "배정우의 집에서 나온 메모는 자필일 가능성이 높대. 하지만 최종 판단은 감정이 필요해. 유족이 '은행 연락처를 알려줬다'고 확인해 줬어."
"누가 알려줬답니까?"
"배정우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연락했던 전직 동료. 이름이 남궁태식이야."
나는 수첩에서 이름을 찾았다. 서류를 원효로 창고에 두고 나왔다던 남자.
"남궁태식 씨가 위험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보호 필요성부터 확인 중이야."
"그 사람은 연락을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그랬지. 지금은 대면 대신 서면으로 답하겠다고 해. 자신의 직장을 잃을까 두렵대."
나는 그 이유를 이해했다. 수사 과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경찰을 가장 두려워하게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조사실의 질문 자체가 그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
그날 오후, 임소율에게서 긴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 지급 승인에 관해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이름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요구했다.
나는 문자로 답했다.
'저는 공개 여부를 마음대로 약속할 수 없습니다. 경찰에 이미 신고된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수사기관에 직접 말씀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원하시면 진술 전에 법률 조력을 받도록 연결할 방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저녁에야 두 줄이 도착했다.
'모두 나를 의심하네요. 그래서 그때도 아무 말 못 했어요.'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의심받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이 책임을 떠안았을 수도 있다.
그녀에게서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날 서류를 옮긴 건 나예요. 그런데 서명은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나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봤다. 무언가를 옮겼다는 사실과 서명이 다르다는 주장. 둘은 양립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임소율은 정산팀 사무실에서 야근수당을 받았고, 원효로 창고에 서류를 가져갔을 가능성이 생겼다. 내가 정정한 보고서는 이제 그녀의 행동을 다시 살필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정보는 동시에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했고, 임소율에게 더 이상 직접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네가 문서 정정한 덕분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어." 오선영이 말했다.
"저 때문에 잘못됐던 범위를 바로잡은 거죠. 공로라고 부를 일은 아닙니다."
"그런 태도도 좋아. 하지만 늘 자책할 필요는 없어. 수사가 앞으로 갔다는 건 인정해."
그녀는 임소율에게 법률 지원과 안전 확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때 정민규가 보고했다는 메시지가 또 왔다. 2025년 서류에는 임소율의 실제 필적과 다른 서명이 있다는 예비 비교 결과였다. 물론 종이 원본과 필기 시기의 감정이 필요했다.
밤 9시, 백이준에게서 정식 이메일이 왔다.
'귀하가 정정한 지난해 보고서는 당사 업무와 관련한 다수의 사실관계를 불명확하게 합니다. 추가 접촉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답장을 작성했다. '확인했습니다. 제 요청은 공식 경로로 전달하겠습니다.' 그 이상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한유리가 전화를 걸었다.
"서 조사관님, 남궁태식 씨가 제보를 취소했어요."
"이유가 뭡니까?"
"자기 목소리를 누군가 이미 알고 있대요. 회사에 연락도 왔고요."
"본인이 취소했다면 존중해야겠네요."
"그런데 더 이상한 게 있어요. 그분이 제보를 취소한 시각이 오늘 오후 세 시인데, 그의 회사에는 오후 두 시 사십 분에 연락이 왔답니다."
나는 시간을 적었다. 취소를 결정하기 전부터 누군가 압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분이 어떤 말을 할지도 상대가 알고 있었을 수 있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그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경찰도, 기자도, 나도 정보가 흘러가는 경로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한다. 적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의심이야말로 가장 값싼 무기일지도 몰랐다.
밤 11시 18분, 오선영이 다시 전화했다.
"진혁아. 남궁태식 씨가 결국 경찰하고 이야기하겠대.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요?"
"자기가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먼저 보여 주고 싶대."
"누구에게요?"
"배정우의 가족에게. 죽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그 사람들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고."
나는 그제야 남궁태식이 배정우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들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명은 살인범으로 불렸고, 다른 한 명은 직장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들은 같은 사건을 겪고도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개인의 위로를 위해 먼저 건네지는 순간, 원본성과 보존 경위가 흔들릴 수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오선영에게 전했다.
그녀는 짧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 누구의 마음이 급해도 절차는 지킬 거야."
나는 그녀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증거를 지키려다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사람을 위로하려다 증거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기록의 빈칸이 아니라, 그 빈칸 때문에 침묵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제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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