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규의 이름이 적힌 서명란을 세 번 확대했다.
처음에는 합성 사진 같았다. 자간이 균일하고 이름 옆에 찍힌 도장의 외곽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하지만 화면의 인상이 곧 위조의 증거는 아니다. 나는 원본이 아닌 이미지로 문서의 진위를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익명 발신자가 보내온 문서에는 제목이 있었다.
'증거물 확인 인계서.'
맨 아래에는 '정민규 확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비원 김동식이 맡겨 놓았다는 봉투를 확인했고, 그 안에 있던 현금과 기록물을 인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는 원효로 창고. 시각은 11월 3일 오후 9시 3분.
그 시간 정민규는 현장 사진을 팀 메신저에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현장에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문서에 적힌 일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오선영에게 사진을 그대로 전달했다. 단 한 줄만 붙였다.
'진위 미확인. 민규 순경에게 직접 보여주기 전, 해당 인계서의 존재 여부와 작성 경로를 먼저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선영은 십 분 뒤 답했다.
'알고 있어. 본인에게도 확인할 거야. 네가 따로 묻지는 마.'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사람에게 의혹을 먼저 알려주면 기억이 바뀔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실수 때문에 징계를 예상하는 사람이라면, 불리한 문서 하나를 보는 순간 과거의 모든 순간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
그날 저녁, 한유리가 전화를 걸었다.
"최명환 측에서 반론 자료를 보내왔어요. 서진혁 씨가 지난해 조사보고서를 정정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고요."
"정정했다는 사실은 맞습니다."
"그걸 어제 회사에 통보했어요?"
"원래 의뢰인에게 보냈습니다. 화진모빌리티에도 전달됐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근데 백이준 실장은 오늘 기자들에게 '서 조사관의 확인 방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말하네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수정한 부분은 야근수당 기록의 해석입니다. 돈이 실제로 송금됐는지를 판단한 자료와는 다릅니다. 오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기사 제목이 재미없어져요."
"그럼 제목 때문에 사실을 바꾸실 겁니까?"
"아뇨. 그래서 전화했어요."
한유리는 속도를 늦춰 질문을 이어갔다.
"정민규 순경에 대한 소문도 들어보셨죠?"
"무슨 소문입니까?"
"현장에서 경비원에게 돈을 받은 경찰이 있었다는 얘기요. 아직 확인 안 됐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등을 뗐다.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됐습니까?"
"아니요. 제보자는 경찰이라고만 했어요. 서 조사관님, 이 이름을 거론하게 만들려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끼신 이유는요?"
"익명 제보가 정민규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쓰거든요. 그런데 정작 돈을 줬는지 받았는지, 날짜가 언제인지 물으면 답을 안 해요."
누군가 혐의를 입증하려는 게 아니라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나는 한유리에게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이름을 기사에 올리지 마세요."
"원래 그러려고 했습니다. 다만 그 이름이 어떤 일을 했는지 본인이 알아야 할 수도 있겠어요."
"그건 수사기관이 확인할 일입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초조해졌다. 상대는 내 옛 보고서의 오류를 언론에 알리고, 정민규에게 서류상 혐의를 씌우려는 듯했다. 수사팀의 두 연결고리를 동시에 공격하는 셈이었다. 내가 정정한 사실까지도 미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오선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문서 양식 확인했어. 경찰 공식 인계서가 아니야."
"그럼 위조입니까?"
"그 단계로 말하지 마. 회사 쪽에서 만든 내부 참고 양식일 수도 있어. 다만 민규가 거기에 서명했다는 공식 기록은 없어."
"민규 순경은 뭐랍니까?"
"그런 문서를 본 적도 없대. 처음 들었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려다가 멈췄다. 본인이 모른다고 해서 위조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부 문서가 공식 증거물 관리 절차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은 중요했다.
"경위님. 상대는 왜 이걸 저한테 보냈을까요?"
"네가 민규를 의심하도록 하려는 걸 수도 있고, 우리가 그 문서의 출처를 조사하도록 하려는 걸 수도 있어. 둘 다 가능해."
"그럼 무시할 수는 없군요."
"응. 하지만 문서가 정한 순서대로 조사할 필요도 없지."
그녀는 새 소식을 전했다. 배정우 자택에서 발견된 메모 가운데 날짜가 적힌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 오래된 은행 문의번호가 적혀 있었다. 번호의 정확한 소유자와 사용 이력은 확인 중이었다.
"배정우가 직접 남긴 건지부터 봐야겠네요."
"그렇지. 유족에게도 확인할 거야."
"가족분들은 어떻습니까?"
"많이 힘들어해. 배정우 씨가 경찰에 쫓기다 죽었다는 얘기가 돌아서.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지난해 배정우가 대답하기 전에 두 번 누르던 버릇이 떠올랐다. 그가 정말 무슨 일을 숨겼다면 그 내용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이름을 먼저 얻었다는 이유로 죽음의 책임까지 떠안겨서는 안 됐다.
그날 밤 열한 시, 사건 관련 자료를 정리하던 정민규가 직접 전화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
'수사 관련 내용이면 오 경위님을 통해 연락해 주세요. 제게 개인적으로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알겠습니다. 다만 저 아직 돈 받은 적 없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누군가 그에게 돈을 받았다고 정식으로 묻기 전에, 그는 이미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실체 없는 의혹으로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날 밤 나는 한 번 더 사진을 분석했다. 도장 가장자리의 선명도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받은 첫 번째 인계서와 두 번째 사진에 같은 얼룩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두 장에 찍힌 회색 점의 위치가 같았다. 같은 파일을 잘라 재배치했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사실을 메모했지만 '위조 확인'이라고 쓰지 않았다. 두 장 모두 같은 종이 문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었어도 얼룩은 남을 수 있었다. 원본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결론을 낼 수 없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됐다고 말하는 한순간에 상대는 우리보다 유리해진다. 처음 수사에 제공된 자료도 누군가의 편집이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다시 잘라 설명하는 순간 진실은 점점 더 작은 사진 조각이 될 것이다.
자정 무렵 오선영이 다시 연락했다.
"원효로 출입구 영상의 화면 시간 오차, 보정 결과 나왔어. 민규가 올린 사진의 시각과 실제 촬영된 시각이 다르다는 게 확인됐어."
"그 사실은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어. 인계서의 9시 3분이라는 시각은 민규가 사진을 올린 시각이야. 사진이 처음 내부에 올라오기 전에는 외부인이 알 수 없었던 시간이거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문서는 적어도 사진 공유 이후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그럴 수 있지. 다만 시각을 다른 경로로 알 수도 있었으니 단정하진 마."
나는 종이에 두 문장을 적었다. '정민규가 찍은 사진'이라는 오해. '정민규가 서명한 인계서'라는 주장. 둘 사이에는 닮은 점이 있었다. 그가 실제로 한 행동에 하지 않은 행동을 이어 붙였다.
그때 익명 이메일이 다시 왔다.
'서 조사관님은 아직 두 번째 피해자가 누구인지 모르시는군요.'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대신 시각과 첨부 여부를 기록했다. 이번 메시지에는 첨부파일이 없었다.
그런데 메일 제목 끝에 괄호 하나가 붙어 있었다.
'(수신 확인 불필요)'
이상하게 익숙한 표현이었다. 지난해 화진모빌리티 내부 문서의 결재 요청 메일에 쓰이던 문구였다.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원본 메일 파일을 열고 검색했다. 같은 문구가 여섯 번 나왔다. 모두 서로 다른 담당자가 발송한 안내였다.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본문이 아니라 회사 문서관리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붙여 주는 제목 규칙이었다.
누군가의 말투가 아니라, 시스템에 남아 있던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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