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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1화
PAYLUA ORIGINAL · 제11화

11화. 죽은 사람의 서명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79자

오프라인 책장
죽은 사람은 자기 이름을 지울 수 없다. 11월 5일 오후 세 시, 나는 배정우라는 이름이 적힌 지난해 면담 기록을 다시 읽었다.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적혔다가 정작 살해된 채 발견된 남자. 그가 자신에게 뒤집어씌워질 일을 미리 알았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는 한 가지 일관성이 있었다. '서류를 만든 건 접니다. 그런데 돈을 보낸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당시에는 책임을 나누려는 말로 들렸다. 지금도 그럴 수 있다. 나는 그 문장을 두 개의 주장으로 분리했다. 서류 작성자라는 것. 실제 송금 지시자가 아니라는 것. 하나가 사실이어도 다른 하나가 사실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한유리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작년에 원효로 보관실에서 임소율을 봤다는 직원, 만나실래요?" "경찰에 먼저 연결하셨습니까?" "그쪽이 거절했어요. 기자에게만 말하겠다는데 제가 강제로 데려갈 순 없잖아요." "그럼 제가 만날 이유는 더 없습니다. 제 말을 통해 진술이 바뀌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진짜 답답한 사람이네요." "그 직원이 직접 본 것과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나눠 녹음해 두세요. 동의를 받고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한 가지는 알려드릴게요. 그 사람이 말한 날짜가 정확히 8월 19일은 아니었어요. '비 많이 오던 화요일'이었대요." 나는 달력을 열었다. 2025년 8월 19일은 화요일이었다. 비가 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누군가 날짜를 직접 기억하는 것과 달력을 보고 맞춘 것은 전혀 다른 증거다. "그 직원이 날짜를 나중에 들었을 가능성은요?" "제가 그것도 물었죠. 다른 사람이 C-12 얘기를 꺼낸 뒤에 날짜를 떠올렸답니다." 한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원하는 건 멋진 폭로인데, 자꾸 폭로가 아니라 확인 목록만 늘어나네요." "그게 취재 아닙니까." "그쪽도 똑같은 병이군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오래된 근태기록을 찾아봤다. '임소율 야근'이라고 정리했던 자료의 원본은 출입기록이 아니었다. 정산팀장이 일괄 승인한 야근수당 내역이었다. 나는 지난해 보고서에 '사무실에서 야근했다'고 적었다. 정확히는 '야근수당이 지급됐다'고 써야 했다. 아주 작은 오기였다. 당시 사건의 지급금액을 검증하는 데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내 보고서를 인용해 임소율은 창고에 갈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 그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유리한 알리바이가 된다. 나는 원본 파일을 저장하고 정정 사유서를 작성했다. 일 년 전 보고서의 문장을 고치는 일은 내게 불리했다. 조사관이 원자료와 해석을 혼동했다는 증거를 스스로 내는 셈이니까. 그래도 수정 전 문서를 지우지는 않았다. 최초 작성본과 정정본을 함께 묶어 의뢰인에게 전달했다. 오선영이 전화를 걸어왔다. "네가 야근 기록 정정했다며?" "네. 당시에는 그 직원이 사무실에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증명된 건 야근수당 지급뿐이었습니다." "경위도 써놨더라. 누가 시키던?" "아니요. 남이 먼저 발견하면 핑계부터 대게 될 것 같아서요." "상대 변호사가 그걸 공격할 거야."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제가 틀렸으니까요. 다만 틀린 범위도 정확히 해야죠." 오선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민규가 네 문서 보고 한 말이 있어. 자기 실수만 크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들도 틀리더라고." "좋은 교훈은 아니네요." "틀리고 숨기지 않는 건 좋은 교훈이지."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배정우 사망 사건에 새 단서가 나왔어.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어. 강제 침입 흔적이 없다고 범인이 지인이라는 뜻은 아니고, 출입 방법을 계속 확인하는 중이야." "사망 시각은요?" "아직 범위를 좁히는 단계야. 누가 메일을 보냈든 그 시각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확인해야 해." 나는 그녀에게 제3차 기록의 문장을 읽어줬다. '한 사람은 이미 죽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배정우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놓고 시작하면 범인이 원하는 추리가 되겠죠?" "그래. 다른 사망자를 지칭할 수도 있고, '피해자'가 죽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보장도 없어." "그럼 이 문서에 매달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 오전 네 시 오십팔 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자." 오선영은 인천 창고에서 나온 종이의 일부를 설명했다. C-12 묶음 가운데 검증용 대조표가 있었고, 한 장의 맨 아래에 '불일치 원인 확인 예정'이라는 필기가 남아 있었다. 그 옆에는 사람의 서명이 아니라 두 글자만 있었다. '대리.' "대리 결재라는 뜻입니까?" "그렇게 보이지만, 누굴 대리했는지는 확인 안 됐어." "작성자 배정우, 승인자 임소율, 최종 책임자 최명환. 셋 중 누구라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은행 쪽 원자료를 확인하고 있어. 회사 내부 장부만 보면 끝이 없어." 나는 전화를 끊고 노트를 펼쳤다. 내가 잘못 쓴 야근 기록, 빈 서명란, 이름 없는 대리 결재. 거창한 비밀이 아니었다. 업무에서 흔히 벌어지는 편의와 누락이었다. 하지만 그런 빈칸이 쌓이면 실제로 움직인 돈을 추적하기 어려워진다. 저녁 무렵 한유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직원이 결국 경찰과 통화하겠다고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임소율의 얼굴이 아니라 노란 우산과 목소리뿐이라고 했다. 기사에는 '임소율을 목격했다'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도 했다. 나는 답장을 보내며 마음속으로 그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독자가 기대하는 확신을 포기하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오후 다섯 시, 지난해 조사 의뢰를 맡겼던 보험사 실무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내 보고서 정정 사실을 확인한 뒤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후 예정된 자문 건의 발주를 일단 보류한다고 했다. 목소리는 예의 바르고 사무적이었다. "서 조사관님, 저희도 이 문제를 간단히 볼 수는 없습니다." "압니다. 원본 해석이 부정확했다는 점은 제 책임입니다. 다만 그 부분과 보험금 차액 계산은 다른 자료로 검증했습니다." "그 점까지 검토하겠습니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못 드리겠네요." 나는 전화를 끊고 다음 달 임대료를 떠올렸다. 정정한 보고서는 옳은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그 선택에 비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보고서의 다른 문장도 검증해야 했다. 한 번 잘못 읽은 사람이 다른 표에서도 틀릴 가능성은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내게도 불편했다. 서랍에 붙여 둔 오래된 문구가 보였다. '현장에 없던 사람은 현장을 안다고 쓰지 않는다.' 후배 조사관을 교육할 때마다 했던 말이었다. 정작 나는 야근수당 표를 보고 그곳에 있었다고 적었다. 원칙을 알고 있다는 것과 매번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유리가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정 보도는 필요하지만 조사관의 모든 결과가 무효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보냈다. 기자의 일이 나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사실의 범위를 정확히 정하는 사람 한 명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실감했다. 그때 익명 이메일이 들어왔다. '서 조사관님은 오늘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셨군요.' 나는 손을 멈췄다. 정정 사유서는 공개한 적이 없었다. 의뢰인과 오선영에게만 전달했으며, 그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줄이 나타났다. '그런데 진짜 피해자는 아직 자기 서명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첨부된 사진에는 문서의 마지막 부분만 찍혀 있었다. 정산 확인서. 흐릿한 도장. 그리고 서명란의 이름. 정민규.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민규는 지난해 화진모빌리티와 아무 관계도 없던 경찰관이었다. 그 이름이 2025년 정산 확인서에 적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사진 하단의 작성 날짜는 지난해가 아니었다. 2026년 11월 5일. 누군가 오늘 정민규의 이름을 새로운 문서에 적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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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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