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우의 휴대전화에는 끝내 보내지지 않은 녹음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저장된 음성 초안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이 2026년 11월 3일 사망 당일 그가 직접 말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녹음이 복원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2027년 3월 2일이었다.
배은정은 동생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오선영은 감정 절차가 끝나고 관련 범위가 정리되기 전에는 원문을 전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목소리만 듣고 싶은데요.”
그 말 앞에서 나도 선영도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기록을 위한 음성이 아니라 동생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소망을 사건 해결을 위한 협조 요청처럼 다루지 않기로 했다.
오후에 경찰이 확인해준 사실은 많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남은 파일 생성 시간은 사망 발견 전이었다. 파일의 제목에는 ‘반송’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수신자를 지정한 흔적은 불완전했고, 전송 성공 기록도 없었다. 배정우가 누구에게 보내려 했는지 추측할 수는 있어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지난 사건기록을 다시 읽었다. 최초 문서에는 배정우가 살인범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문서는 그를 피해자로 바꿨다. 누군가 그 이름으로 우리를 움직였다. 그런데 정작 그의 마지막 말은 다른 사람에게 도착하지도 못했다.
“배정우가 서류를 반송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그것도 조사 중이야.” 선영이 답했다.
“그날 최명환과의 약속이 취소됐다는 기록은요?”
“취소됐다는 입력이 있었지. 실제 만나지 않았는지는 아직 별개고.”
그녀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았지만, 그 반복이 필요했다. 확인하지 않은 부분을 사람이 마음대로 연결하기 시작하면 의심은 얼마든지 이야기로 바뀐다.
나는 배정우가 숨진 인천 자택을 찾아가지 않았다. 유족의 집 주변에 이미 여러 명이 나타났다고 했다. 무엇을 찍으려는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 두 번째 고통을 줄 필요는 없었다.
대신 보험금 조사 당시의 서류를 다시 읽었다. 당시 배정우는 문제의 지급 승인 서류를 최초 작성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의심했다. 그런데 그는 그 후 ‘확인 근거 부족’이라는 반송 의견을 남겼다. 누군가 자신이 만든 서류를 스스로 멈추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처음에 작성했을까.
회사의 지시였을 수도, 자신의 이익 때문이었을 수도, 나중에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가능성을 택하든 내 감정은 결론이 아니었다.
배정우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최초 사건기록을 받았던 밤으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임소율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생존을 확인했다. 오선영에게 연락해 수사팀을 움직였다. 배정우를 용의자로 기록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경찰에 전달한 사람 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선영은 내게 그런 죄책감을 수사 판단으로 쓰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 나를 움직이려고 거짓말했다면 그 거짓말을 알아내야 하고, 내가 전달한 내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사실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이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결과가 내 책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옛 화진모빌리티 사건 정산 내역을 꺼냈다. 배정우가 회사에 몸담았을 때 작성한 요청서에는 소액 지급 승인부터 대규모 비용 검토까지 많은 건이 있었다. 모든 서류에서 그가 같은 입장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건에는 즉시 처리 의견을, 다른 건에는 보완 요청을 붙였다. 나는 이 기록을 처음 봤을 때 그를 성급하고 방어적인 사람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지금 읽으니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그는 무엇을 의심했을 때만 유난히 보완을 요구했다. 그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당시 내가 놓친 질문은 분명해졌다. ‘그 사람은 왜 서류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했는가.’
업무상 성향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압박일 수도 있다. 또는 정당한 사유를 가진 반려일 수도 있다. 나는 세 가지 가능성을 각각 기록했다.
점심 무렵 배은정이 선영을 통해 자신의 부탁을 전해왔다. 언론에 동생의 마지막 녹음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인터넷에는 '마지막 고백'이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실제 음성이 있는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이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읽게 됐다.
나는 한유리에게 가족이 그런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배정우가 남겼다는 내용을 적은 글을 취재한다고 해도 제목에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 단어를 쓰면 다들 죄를 인정했다고 읽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겠죠.”
“그게 맞는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는 내 말에 웃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후 세 시, 임소율이 내 사무실로 왔다. 그녀는 배정우가 자신에게 보낸 과거의 짧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2025년 8월 25일 오후에 받은 문자였다.
‘아직 완료라고 답하지 마세요. 제가 다시 확인 중입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오래 봤다.
“이걸 왜 이제 보여주셨습니까?”
“그 사람을 믿지 않았어요.”
그녀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처음엔 그 사람이 저한테 비용을 떠넘기려고 하는 줄 알았죠. 그 뒤엔 제가 괜히 이 문자를 보여주면 그 사람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요.”
“지금 보여주신 이유는요?”
“죽었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면 안 되니까요.”
나는 그녀가 허락한 범위에서 메시지의 보존 방법을 설명했다. 캡처뿐 아니라 기기에 남은 대화 기록을 정식 절차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는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선영은 배정우의 음성이 실제 그가 남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 샘플을 대조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그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내가 직접 알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밤에 익명 발신자의 메시지가 왔다.
‘죽은 사람은 취소할 수 없는 서류를 남깁니다.’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문장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발신자가 배정우의 마지막 음성을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공개한 문서 용어를 다시 조합한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낮에 본 문자가 남아 있었다. ‘아직 완료라고 답하지 마세요.’ 그 문장을 보낸 배정우가 정말로 사람을 속이는 쪽에 있었다면 왜 그런 경고를 했을까.
선영에게 그 질문을 하자 그녀는 말했다.
“진혁아.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어느 날은 좋은 일을 해. 한 문장으로 그 사람을 분류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정우가 피해자가 됐다는 이유로 과거의 책임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반대로 과거의 혐의가 그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가볍게 해줘서도 안 됐다.
책상 위에 배정우 이름이 적힌 두 문서를 놓았다. 최초 살인 예고에는 그가 범인, 수정본에는 그가 피해자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아직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보내지지 못한 말.
나는 검토표의 빈칸을 두고 오래 생각했다. 과거에는 누군가 침묵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반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상대가 무엇을 숨겼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배웠다. 배정우가 보내지 않은 파일에도 그렇게 접근해야 했다. 송신하지 못했는지, 송신하지 않기로 했는지, 다른 파일로 다시 기록했는지는 분리해야 한다. 나는 선영에게 그 질문만 전달하고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그 말에 아무 제목도 달지 않았다. 누가 전송하려 했는지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상대가 정해놓은 제목을 가져다 쓰지 않기로 했다.
제12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