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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27화
PAYLUA ORIGINAL · 제127화

127화. 여섯 시 사십일 분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660자

오프라인 책장
한 남자가 검은 차에서 내리는 영상은 없었다. 대신 월 이용권 재인증 기록이 있었다. 2026년 11월 3일 오후 6시 41분. 배정우 명의 차량이 원효로 인근 주차장에 있었다고 오랫동안 알려졌던 시각이었다. 지금까지의 자료로는 실제 입차를 증명하지 못했다. 3월 3일 아침, 오선영은 그 기록을 공개적으로 정정하기 위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했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배정우가 범행 현장을 찾았다’는 문장이 떠돌고 있었지만, 수사상 확인된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차량이 있었다는 기록도 아닌데 왜 다들 그 시간만 기억할까요?” “시간이 정확하니까.” 선영이 답했다. “정확한 숫자는 사람을 안심시키거든.” 나는 낡은 정산기 화면을 촬영한 사진을 보았다. ‘18:41’이 선명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는 흐렸다. 확대하자 ‘정기권 동기화’라는 설명이 보였다.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화면을 잘라낸 사람이 있겠네요.” “그럴 수는 있지만 처음 올린 사진이 우연히 그렇게 잘렸을 수도 있어.” 그녀는 원본을 확보하기 전에는 조작이라고 쓰지 말라고 했다. 점심 무렵 고태원이 나를 찾았다. 그는 2025년 8월 25일 마감표에 적힌 ‘검토자 확인 필요’ 문구를 처음으로 뚜렷이 기억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그때 왜 그런 기억을 꺼내는지 의심하려다가 멈췄다. 실제 자료를 다시 본 뒤 떠오른 기억일 수도 있었다. “뭐가 달랐습니까?” “당시 첫 장만 들고 회의실에 들어갔어요. 누군가가 ‘두 번째 장도 있냐’고 물었는데 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누가 물었습니까?” “그게 기억 안 납니다. 얼굴이 안 떠올라요.” 나는 그의 진술에서 ‘두 번째 장도 있냐’는 문장과 인물을 분리해 기록하라고 했다. 그는 대답하면서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럼 아무 소용 없겠네요.” “아닙니다. 당시 두 번째 장이 존재한다는 걸 누군가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말이 실제로 나왔는지 확인이 필요하죠.” 고태원은 고개를 숙였다. “제가 왜 그때 그냥 넘어갔을까요.” “지금 후회하는 것과 당시 의도를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가 떠난 뒤 나는 기록을 다시 대조했다. 오전 9시 41분 출력, 9시 42분 취소, 9시 43분 경고 하향. 누군가 두 번째 장을 찾았고, 없다고 들었다면 그 뒤의 처리가 더 이상 단순한 무지였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물었는지는 없다. 오후 한 시, 나는 한유리와 옛 주차장 근처를 함께 걸었다. 수사 대상 시설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거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표지판과 교차로만 확인했다. 그녀가 사진 속 간판을 비교해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효로의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벽면 색과 비슷한 건물이 두 곳 있었다. 그러나 가게 간판의 글씨체는 달랐다. 새로 바뀐 간판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사진이 거짓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아무것도 안 나오네요.” 한유리가 말했다. “현장에 와서 당장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면 안 되죠.” “기자가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길 건너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장에게 오래전 간판이 어땠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주변 상인들은 여러 차례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이 추측으로 던진 답이 또 다른 소문이 될 수 있었다. 한유리는 종이 냅킨에 작은 지도를 그렸다. 사진의 좌우가 뒤집혔다면 간판의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메모하고 실제 거리 사진과 비교하자고 했다. 적어도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예전엔 저는 좋은 제목이 먼저 보였어요. ‘범인이 타고 온 검은 차’. 그런데 이제는 제목을 빼면 사진에 뭐가 남는지 보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오래 걸리죠.” “대신 틀린 사람한테 전화해서 사과하는 일은 줄겠죠.” 나는 그녀와 헤어진 뒤 곧장 사진의 원본 보존 여부를 물어볼 수 있는 공식 경로를 선영에게 전달했다. 한유리는 사진 한 장이 퍼진 최초 계정을 찾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일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편했다. 나는 더는 모든 실마리를 혼자 쥐고 싶지 않았다. 오후 늦게 정민규가 주차장 운영사의 공개 안내를 찾아보냈다. 월 이용권 재인증은 원격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 글만으로 배정우 차량이 현장에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시각 입차했다'는 문장을 확신할 이유는 더 줄어들었다. 오후 네 시, 선영은 배정우 관련 일정표를 대조한 결과를 알려줬다. 11월 3일 오후 5시 56분에 최명환과의 만남이 취소된 것으로 입력된 기록은 있었다. 그런데 배정우 휴대전화에 남은 별도 일정 알림은 취소 전 상태였다. “그럼 만난 겁니까?” “아니. 일정표 두 개가 동기화되지 않았다는 뜻이야.” “누가 취소했는지는요?” “확인해야 해.” 나는 두 기록을 서로 반대되는 증거처럼 세우지 않기로 했다. 하나가 바뀌었다고 다른 하나도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시스템에 다른 일정이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행동을 재구성할 여지가 생겼다. 저녁에 배은정이 경찰에 제출한 메모를 보았다. 동생이 죽기 이틀 전, 누군가에게서 '이번에는 확인을 대신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녹음은 없고 기억에 의존한 진술이었다. 나는 그 말을 임소율이 보여준 '완료라고 답하지 마세요'와 나란히 적었다. 비슷하다고 같은 대화는 아니다. 밤 8시 무렵 한유리가 연락했다. 배정우 차량의 6시 41분을 실제 입차라고 보도했던 게시물이 일부 수정됐다고 했다. 정정은 작게 붙어 있었지만 적어도 새로운 기사에서는 그 기록을 차량의 이동 증거로 쓰지 않게 됐다. “이런 걸 수사 진전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틀린 길 하나를 지웠으니까요.” “범인을 잡진 못했는데.” “틀린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가능성은 줄였죠.” 그녀는 짧게 웃었다. “그건 기사 제목으로는 안 팔리겠네요.” “그래서 더 필요한 기사일지도 모르죠.” 그날 밤 나는 두 시간표를 새 종이에 그렸다. 2025년의 9시 43분과 2026년의 6시 41분. 날짜가 다른 숫자들을 무리하게 연결하지 않았다. 다만 두 사건에 공통된 습관이 있었다. 원래의 기록보다 보기 쉬운 결론이 먼저 퍼졌다. 마지막으로 받은 익명 메일에는 차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검은 차의 번호판 일부가 흐리게 보였다. 본문은 짧았다. ‘이번에는 진짜 들어왔습니다.’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번호판이 배정우 명의 차량과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더구나 사진의 장소도 원효로인지 알 수 없었다. 상대는 우리가 6시 41분에 관해 정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정정을 예상해 미리 사진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사진에 적힌 말 대신 배경에 비친 오래된 상점 간판을 보았다. 간판의 글씨는 당시 원효로 건물 주변에 있던 가게와 달랐다. 한유리에게 사진의 오래된 간판을 먼저 설명했다. 그녀는 차종이나 번호판을 맞혀보자는 기사 제안을 거절하고, 사진이 촬영된 장소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쓰겠다고 했다. 그 선택 덕분에 누군가의 차량 번호가 근거 없는 게시물에 더 퍼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날은 그랬다. 처음으로 상대가 내민 증거를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지 않았다. 사진 속 차량보다 사진이 찍힌 장소가 먼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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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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