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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17화
PAYLUA ORIGINAL · 제117화

117화. 죽은 사람의 반송 의견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39자

오프라인 책장
배정우에게서 전송되지 않은 음성 초안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이틀 동안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2월 18일 목요일 아침 인터넷 게시판에는 ‘배정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경고’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올라왔다. 글에는 실제 음성이 없었다. 대신 누군가 문장 세 개를 적어놓았다. ‘내가 동의한 건 아니다. 나를 확인자로 쓰지 마라. 그날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이미 수사팀에서 들은 일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게시물의 세 문장이 실제 녹음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문장으로 뭉친 대상이 너무 많았다. 누구에게 동의하지 않았는지, 어떤 확인을 거부했는지, ‘그날’이 언제인지조차 없었다. “맞는 말 같지?” 한유리가 전화로 물었다. “그렇게 보이게 쓰인 말입니다.” “그래서 확인해봤어. 게시물을 처음 올린 계정은 한 달 전에도 배정우 명의 차량이 원효로에 들어왔다는 단정을 퍼뜨렸더라고.” “그럼 같은 범인입니까?” “아니. 같은 계정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 계정을 실제 누가 썼는지는 몰라.” 나는 유리의 정확한 선 긋기가 반가웠다. 정오 무렵 임소율이 옛 사무실에서 찾은 메모 사본을 경찰에 제출했다. 2025년 8월 25일, 배정우 명의로 되돌려보낸 문서 목록에 ‘근거 미교부’라고 적혀 있었다. 결재 거부라기보다 확인 자료가 부족해 접수를 반려한 절차였다. “그럼 배정우는 끝까지 반대했던 겁니까?”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선영이 말했다. “그 문서를 반려한 뒤 어떤 자료를 받았는지 아직 확인해야 해.” 임소율은 내게 다른 말을 했다. “배 과장님이 저한테 전화했을 때, 제가 회사의 돈을 훔쳤느냐고 묻지 않았어요. 왜 제 이름이 검토 완료자에 있는지만 물었죠.” “그 사람은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도 같은 질문을 한다고 했어요.” 나는 오래전에 배정우를 의심하던 내 마음을 떠올렸다. 최초 예고문은 그를 살인범으로 적어놓았다. 그 때문에 나도 그를 범인으로 놓고 증거를 찾기 쉬웠다. 이제는 그가 스스로의 이름이 왜 쓰였는지 질문했던 사람일 가능성을 검토해야 했다. 오후 한 시, 고태원은 직접 경찰을 찾아가 잃어버린 뒷장에 대해 다시 진술했다. 그는 9시 41분 출력 요청이 두 장이었다는 기계 기록을 본 뒤 처음으로 자신의 기억과 일치하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기계 앞에서 빨간 불이 깜빡였고, 누군가 뒤에서 서류를 빨리 넘기라고 재촉했다는 것이다. “누군지 기억합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을 꾸며내지 않았다. 오선영은 뒷장을 찾는 수색이 사람의 기억에만 기대지 않도록 보관함과 폐기 기록을 확인하기로 했다. 적법한 보존 경로에서 찾는 것 외에 직원의 개인 물품을 뒤질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고태원에게도 설명했다. 오후 세 시, 권다정이 제출한 신청번호 일지 원본에선 또 다른 차이가 확인됐다. ‘보류(확인 대기)’라는 기재 아래 작은 화살표가 하나 더 있었다. 화살표 끝에는 ‘실무 검토로 넘김’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요청이 즉시 취소됐다는 뜻과 달랐다. 접수한 문서가 다음 부서로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그럼 익명 파일의 취소 문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겠군요.” “기록상 신청 취소로 볼 근거는 부족해졌지.” 선영은 말을 고쳤다. “하지만 신청을 되돌리려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의도는 별도로 확인해야 해.” 저녁 여섯 시, 박혜림이 변호인과 함께 손해 자료를 정리했다. 취소된 채용 일정, 왕복 교통비, 상담비, 이전 직장에서 받은 확인서의 오류. 그녀는 그것들을 사건 피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상담받았다. 나는 승패를 예측하지 않았다. 민사적 손해와 형사 사건의 가담 여부는 서로 다른 문제다. “누가 저한테 이런 일을 했는지 꼭 알아야 해요?” 혜림이 물었다. “당사자를 특정해야 하는 절차도 있을 겁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지목하지 않아도 보존할 수 있는 자료부터 챙기시면 됩니다.” 혜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도 이름 안 대고도 제가 억울한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후 네 시 반, 정민규는 인터넷 게시물에 사용된 사진의 잘린 가장자리를 대조했다. 배정우의 얼굴이나 자택을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었다. 과거 화진모빌리티에서 배포한 업무 안내문의 표지를 배경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미지가 널리 퍼지자 사람들은 배정우의 마지막 사무실에서 촬영한 것처럼 설명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배경을 골랐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사와 관련 있어 보이니까요.” 민규가 말했다. “그렇다고 작성자가 회사 내부 사람이라고 결론 낼 수는 없습니다. 이 자료는 외부 행사에도 배포됐거든요.” 나는 민규를 보며 예전과 달라진 점을 느꼈다. 그는 무엇을 찾았는지보다 그 자료로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 먼저 설명했다. 그 변화는 몇 번의 잘못된 회신과 질책을 통과해야 생긴 것이었다. 저녁 무렵 임소율은 자신이 배정우에게 했던 마지막 전화의 대략적인 시각을 찾았다. 예전 휴대전화의 통화기록은 지워졌지만, 당시 작성한 업무 일지에 ‘정산 질문—배 과장 회신 대기’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그 일지가 언제 작성된 것인지와 이후 수정된 흔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권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건 경찰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제가 진실을 다 알 수도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소율 씨가 알고 있는 게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직접 들은 말은 증언할 수 있지만, 배정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그 구분을 지키면 오히려 신뢰성이 높아진다. 한유리는 기사 초안의 마지막 문장을 내게 읽어주었다. ‘죽은 사람은 반박할 수 없으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손쉽게 죄를 붙인다.’ 나는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지만, 과한 일반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우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아직 모르니까. 유리는 문장을 고쳤다. ‘배정우가 범죄에 관여했는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남겼다는 말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유포되고 있다.’ 그 문장은 덜 아름다웠다. 대신 정확했다. 나는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담는 문장이라면 그 정도의 투박함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배은정이 경찰을 통해 배정우의 오래된 달력 사본을 추가로 보냈다. 달력의 빈칸에는 ‘정산 확인 서류를 그대로 내놓을 것’이라는 메모가 있었지만, 언제 누가 썼는지 감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그 문구가 임소율의 신고와 관계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결론이 아닌 질문으로 옮겼다. 그녀의 동생이 실제로 문제 삼은 것이 돈의 액수인지, 누군가의 이름을 ‘확인 완료’라고 적어버린 절차인지. 그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인의 마지막 기록마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바꾸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최초 사건기록과 배정우 명의 반송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사람의 미래를 정했고, 하나는 과거의 확인을 거부했다. 둘 중 어느 것이 사실을 말했는지보다 중요한 건 왜 그런 문서가 상대에게 필요한지였다. 메일이 한 통 왔다. 익명 발신자였다. ‘배정우가 그날 만나지 않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나는 2026년 11월 3일 배정우와 최명환의 취소된 약속을 떠올렸다. 취소된 일정표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상대의 질문에 정반대의 질문을 적었다. ‘누구와 만나기로 했는지보다, 누가 만났다고 기록할 수 있는가.’ 보내지는 않았다. 질문은 내가 해야 했고, 대답은 증거에서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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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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