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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11화
PAYLUA ORIGINAL · 제111화

111화. 취소됐다는 도장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656자

오프라인 책장
2027년 2월 11일 목요일. 나는 새벽에 한 번 깼다. 잠결에도 파일 이름이 떠올랐다. 보류_수정_최종_재정정. 그 이름은 문서를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정해놓은 것 같았다. ‘수정’이라고 하면 오류가 있었으리라 믿고, ‘최종’이라고 하면 이제 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재정정’까지 붙으면 앞서 확인한 것이 전부 낡았다고 느낀다. 어젯밤 받은 첨부파일은 별도의 복사본에서만 열었다. 프로그램이 외부로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한 환경이었다. 파일을 여는 행위도 확인 과정의 일부지만,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내용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 장에는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29분에 작성된 요청의 취소 확인표가 있었다. ‘요청번호 G-31-0825.’ 가운데엔 큼지막하게 취소 완료라고 적혔다. 마지막에는 업무지원 공동 접수 구역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파일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따로 확인했다. ‘취소 완료’는 스캔된 이미지였다. 나머지 글씨는 편집 가능한 텍스트였다. 원본 종이가 그런 상태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으므로 곧바로 조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서로 다른 요소의 출처를 검증해야 했다. 오선영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결론 대신 세 가지 질문을 적었다. 취소 표시가 신청 자체를 뜻하는가. 취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가. 같은 번호가 9시 43분 실행에 사용됐는가. 아침 아홉 시, 선영이 전화를 걸었다. “세 가지 다 지금은 확답할 수 없어. 그런데 숫자에 재미있는 문제가 있어.” “번호가 없습니까?” “있어. 하지만 당시 프로그램은 업무 요청번호와 출력 작업번호가 겉보기에 거의 같았대.” 나는 메모지에 두 칸을 그렸다. 업무 요청과 출력 작업. 같은 화면을 인쇄하는 순간 숫자가 비슷해졌다는 건 누군가 악용하기 좋은 구조였다. 그렇다고 시스템 설계자가 범죄를 의도했다는 뜻도 아니었다. “원본 시스템에서 확인한 값은요?” “공식 보존 자료에서는 요청 상태가 ‘연계 처리’야. 취소 이력은 아직 못 찾았어.” “그럼 익명 파일이 거짓말입니까?” “연계 처리가 취소를 뜻하지 않는다는 건 맞아. 하지만 취소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기록일 수도 있잖아.” 나는 통화를 끊은 뒤 어젯밤의 첫 감정을 지웠다. 안도감이었다. 요청이 취소됐다면 2025년 8월의 책임도 누군가의 착각에서 시작된 것으로 끝날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박혜림과 임소율의 삶이 망가진 이유를 빨리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빨리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늘 가장 위험한 증거였다. 점심 무렵 김주하가 직접 연락해왔다. 그녀는 새 파일의 캡처를 이미 본 상태였다. 이름을 가린 게시물이지만 출력실 업무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제가 취소한 걸로 나오나요?” “아직 누가 취소했는지도, 취소가 실제로 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해명할 때마다 말을 바꾼대요. 처음에는 작성자가 아니라더니, 이제 취소한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고요.” 나는 그녀에게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조사받는 사람이 익명의 요구에 맞춰 자기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서류를 찾아야 하는 구조 자체가 부당했다. “제가 할 수 있는 확인은 경찰을 통해 하겠습니다. 주하 씨가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답을 안 하면 제가 숨긴다고 하잖아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대답하는 사람도, 침묵하는 사람도 똑같이 의심하도록 판을 짜고 있었다. 오후 세 시, 한유리는 ‘취소 완료’ 도장이 붙은 캡처를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시절 업무 요청과 출력 기록의 번호 체계를 비교한 기사 초안을 만들었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사람들이 이런 구분을 읽을까?” “안 읽는 사람도 있겠죠.” “그럼 이게 무슨 소용이야?” “어떤 사람을 범인이라고 단정하는 문장이 덜 퍼지는 것만으로도 소용은 있습니다.” 유리는 웃지 않았다. 대신 기자로서 필요한 건 독자의 흥분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제목이라는 말을 했다. 그녀도 이번 사건에서 돈이 되는 기사를 포기하고 있었다. 저녁에 선영에게서 새 소식이 왔다. 회사가 보관한 원본 화면에는 취소 표시가 아니라 ‘출력 취소’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것이 익명 파일의 커다란 취소 완료 도장과 같은 사건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적었다. 문서의 취소, 요청의 취소, 출력을 취소하는 행위. 셋은 다르다. 오후 네 시가 지나자 권다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이름을 올렸다. 당시 업무지원 구역에서 번호를 입력하는 일을 가르쳤던 교육담당자는 ‘취소’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문서가 잘못 출력됐을 때도, 신청서를 철회했을 때도, 화면을 잠깐 닫았다 다시 열 때도 직원들은 취소했다고 말했다. “같은 단어를 세 가지 뜻으로 썼다고요?” 내가 물었다. “일상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로그는 별개야.” 오선영은 단호했다. 교육담당자가 제출한 오래된 매뉴얼에는 출력 중단을 뜻하는 표기가 작게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익명 파일의 도장은 그 매뉴얼의 도장과 정확하게 같지는 않았다. 글자 주변에 남은 흐릿한 사각 테두리의 너비가 달랐다. 선영은 그 차이만으로 합성을 판단하지 않았다. 스캔 과정에서 축척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미지를 만들어낸 원본 업무 화면이 있는지 회사에 요구했다. 나는 자료를 더 빨리 확인해달라는 말을 삼켰다. 회사가 낸 원본이 수사팀에 도착하기까지는 절차가 필요했다. 그 시간을 못 견뎌 익명 발신자의 파일에 기대면, 상대가 보내준 지도만 따라 걷게 된다. 한유리에게서는 전혀 다른 소식이 왔다. ‘요청 취소가 확정됐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하루 만에 세 가지 다른 문장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김주하가 취소했다고 했다. 두 번째에는 권다정이 취소했다고 했다. 세 번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공용 계정이 취소했다고 했다. 게시물 수정 시각은 기록돼 있었다. “작성자가 누군지 찾아봐야 하지 않나요?” 유리가 물었다. “그것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확정되지 않은 범인을 계속 바꿔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유리는 그 세 화면을 나란히 비교하겠다고 했다. 자기 기사에 누군가의 실명을 싣지 않고도 허위 결론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방식에 동의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가 다른 이름을 넣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독자가 직접 볼 수 있을 테니까. 늦은 오후, 임소율에게도 그 캡처가 전달됐다. 그녀는 내게 ‘취소됐으면 제가 신고한 것도 취소된 건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요청번호와 신고 접수번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내뱉은 단어 하나 때문에 피해자가 이미 확인된 사실까지 다시 의심해야 했다. 소문은 만들어낸 사람에게 돈이 들지 않지만, 그것을 지우는 비용은 늘 다른 사람에게 청구됐다. 밤 열 시, 익명 발신자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취소됐다는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짧은 문장이 한 줄 더 붙었다. ‘그럼 취소하려던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십시오.’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는 파일이 진본임을 주장하는 대신, 또 다른 이름을 찾아가도록 나를 떠밀었다. 그 이름을 내 손으로 찾아낸다면 상대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내일 확인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취소 버튼이 무엇을 취소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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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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