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사건 기록을 처음 받은 날로 돌아갔다.
2026년 11월 2일 밤 10시 16분. 그때 나는 메일을 열고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오후 9시 14분 원효로의 폐업한 건물 지하에서 임소율이 죽는다는 보고서. 용의자 배정우. 참고인 서진혁. 실제로 임소율은 경찰의 보호 아래 살아남았고, 배정우는 다른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2027년 1월 30일 토요일 아침, 나는 그 최초 원본을 오선영과 함께 다시 검토했다. 장소는 경찰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 사무실에서 파일의 저장 이력과 내가 당시에 작성한 메모를 대조했고, 선영은 수사팀이 확보한 통신·현장 자료의 시각을 재검증했다. 서로의 화면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진혁아. 네가 그때 왜 바로 임소율에게 전화했는지 기억해?”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지난해 조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왜 나한테 전화했어?”
“그녀가 실제로 그 장소에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단순 장난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요.”
“잘했어. 그 판단은 맞았어.”
나는 처음 듣는 칭찬처럼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뒤엔요?”
“문제였지. 용의자로 적힌 배정우의 이름을 중심으로 우리가 움직였으니까.”
오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 그 이름이 왜 적혔는지 확인해야 해.”
나는 2025년 정산 사건의 도표를 옆에 놓았다. 배정우는 당시 비용 귀속 검토 자료의 1차 검토자로 표시된 사람이었다. 서진혁은 2차 확인 요청 대상이었다. 박혜림은 다른 문서의 열한 번째 수신 예정자였고, 또 다른 보류 처리표의 열한 번째 칸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미교부 책임 이관 금지’라는 경고였다. 수많은 숫자와 명칭이 사람들을 서로 묶었다가 떼어놓았다.
오전 열한 시 오선영에게 새 확인 결과가 들어왔다.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43분 경고 수준 변경. 실제 요청 건과 실행 기록이 연결됐어.”
“드디어 누가 했는지 확인됐습니까?”
“전부는 아니야. 요청이 들어온 단말의 업무 구역은 확인됐고, 처리 요청서가 그 단말에서 접수된 건 맞아. 하지만 이용 가능한 계정이 여럿이었어.”
“정산관리실입니까?”
“그 근처의 공용 업무 구역이야. 특정인 이름을 확정할 수 없지.”
나는 오래전부터 묻던 질문을 바꿨다.
“그 요청이 실제 경고를 해제했습니까?”
“그렇다는 자료가 나왔어. 그리고 다음 단계가 더 중요해. 경고가 낮아진 뒤에는 원래 보류됐어야 할 비용 귀속 검토 항목이 후속 승인 대기열로 넘어갔어.”
나는 종이에 시간을 적었다. 9시 21분 공용 접수함에 보류 파일 도착. 9시 32분 참고 폴더 이동. 9시 43분 경고 수준 변경. 그 뒤 비용 귀속 항목 이동.
“그러면 누군가 경고를 낮췄기 때문에 사람에게 책임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겁니까?”
“가능한 경로가 생겼다는 건 확인됐어. 실제로 어느 항목이 누구에게 귀속됐는지는 따로 따져야 해.”
그녀는 문장을 고쳤다. “중요한 건 이것만으로 3억 8천 전부가 누군가에게 넘어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드디어 찾은 건 돈을 훔친 범인이 아니라, 책임을 옮길 수 있게 만든 문이었다.
정오에는 이경섭의 종이봉투와 회사 인쇄 기록에 대한 1차 비교 결과가 나왔다. 봉투 안 사본의 일부 인쇄 특징이 2025년 당시 사용했던 장비의 흔적과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본 전체의 진본성을 보증하는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고문이 나중에 완전히 창작됐다는 주장에는 반대되는 자료가 하나 늘었다.
“경섭 씨는 뭐라고 합니까?”
“확인된 범위는 설명했어. 아직 원본을 만든 사람이나 문구 작성자를 지목하지 않았지.”
그는 제출 후 불안해했지만 자료를 되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받은 익명 비난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했다. 그 바람과 증거는 구분해야 했지만, 바람이 있는 것까지 잘못은 아니었다.
오후 두 시, 한유리가 내게 연락했다. 자신이 낸 정정 기사에서 특정 인물의 실명을 뺐다는 이유로 제보자 하나가 항의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제가 진실을 숨긴다고 해요.”
“확인하지 못한 이름을 쓰지 않는 게 진실을 숨기는 겁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클릭 수가 적으니까 회사에서도 말이 나와요.”
그녀는 잠시 웃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안 바꿀 겁니다. 나중에 틀렸다고 고치는 것보다 지금 확인하는 게 낫잖아요.”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비싼 것은 돈도 자료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잘못된 문서에 한 번 들어간 뒤,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오후 네 시, 임소율이 보내온 소식은 단순했다.
‘철회 오표기 정정 완료 확인서를 받았습니다. 비용 귀속 건은 계속 진행할 겁니다.’
박혜림도 메시지를 보냈다. ‘최종 결과는 아직이지만, 이번 경력 확인에서는 잘못된 명단이 아니라 정정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정민규는 오선영의 지시에 따라 누락됐던 정정 공문의 수신처 일부를 재확인했고, 받았다는 답변이 실제로 기록되도록 양식을 고쳤다. 실수는 한순간이었지만 고치는 데는 시간이 들었다. 그렇다고 고치는 일을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저녁 여덟 시 무렵, 선영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배정우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도 시간표 하나를 바로잡았어. 현장 사설 연락망의 화면 표시 시각과 서버 수신 시각이 섞여 있었어.”
“그럼 9시 16분 수정 메일이 경찰의 9시 17분 보고보다 먼저 온 이유가 설명됩니까?”
“일부. 공식 보고보다 먼저 현장 정보가 주변으로 퍼질 가능성은 확인했어. 하지만 누가 익명 발신자에게 전달했는지는 아직 몰라. 죽음의 원인도 여전히 수사 중이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정도면 첫 번째 벽은 넘은 셈이었다. 미래를 아는 것처럼 보이던 시간차의 일부에 현실적인 설명이 생겼다. 나머지 시간차를 설명할 증거는 더 찾아야 했다.
밤 아홉 시, 익명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없었다. 본문은 짧았다.
‘수신 확인을 의심하는 법을 배우셨군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그 말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수신 확인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언제 범인이 되는지도 아십니까?’
아래에 첨부파일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PDF가 아니었다. 텍스트로 작성된 수신 예정 명단이었다. 첫 줄에는 사건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7년 2월 3일.
두 번째 줄에는 수신 예정자가 적혀 있었다.
오선영.
그 아래에는 ‘미확인 시 책임 이관 대상’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자세히 읽었다. 이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선영이 어떤 사건의 용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익명 발신자가 또다시 우리의 반응을 유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대상이 선영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첨부를 열지 않은 채 원본 보존 절차를 따랐고, 선영에게 화면에 표시된 내용과 수신 시간을 전달했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를 골랐네.”
“그렇게 보입니다.”
“너 오늘 배운 거 잊지 마. 이름이 적혔다고 범인은 아니야.”
나는 대답했다.
“압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름이 왜 거기에 들어갔는지부터 찾으려고요.”
통화를 끊자마자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음에는 경고가 참고로 내려가는 걸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나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대신 오늘 확인된 세 가지를 수첩에 적었다. 보류 경고는 실제 승인 진행을 막는 규칙이었다. 누군가 또는 어떤 절차가 그것을 참고로 낮췄다. 그 결과 후속 검토 항목을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 가지는 이제 증거로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세 가지였다. 그 선택을 누가 왜 했는가. 배정우는 왜 죽었는가. 익명 발신자는 누구인가.
나는 마지막 빈칸 아래에 한 문장을 더 적었다.
‘다음 사람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는 이름부터 믿지 말 것.’
제10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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