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내 뒤를 따라오는 데 익숙해질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거울이 예의 없이 직장을 따라 나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경로 보조는 거울과 달랐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잔소리를 하는 편인데, 그는 눈을 뜨면 주변의 바람 소리부터 들었다. 내가 일곱 해 동안 겨우 배운 휴식의 기술을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익히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그 금속판을 찾으러 갈 때 저도 가면 안 되나요?” “그쪽이 직접 원하면요. 다만 위험한 구역으로 데려가려면 같은 안전 조건을 적용해야 합니다.” “제가 원본이 아니라고 다른 조건을 달지 않는다는 거죠?” “당신이 사람인지, 기록인지, 뭐가 됐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위험을 느끼는 건 지금 당장 보이니까.”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웃을 때의 주름이 내가 거울에서 보는 것과 조금 달랐다.
우리는 그가 스스로 고른 임시 호칭을 기록했다. '경로 보조'. 실명 확인을 강요하지 않았고, 내 주민등록이나 출입증으로 의료·시설 지원을 받게 하지도 않았다.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한 담당자는 외형이 같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를 내 기록에 합치지 않았다. 이 소설 같은 상황에서 가장 기뻤던 것은 보험 담당자가 엉뚱하게 그를 내 부양가족으로 넣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외부 보관실 019의 점검 계획은 간단하지 않았다. 공공 시설 담당 선경과 김하린이 독립 경고 회선의 안전을 확인했고, 배 소장님은 도원 코일 쪽 금속 덮개를 열지 말라고 경고했다. 019-S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몰랐지만, 대기 경로가 불안정한 지금 무리해서 장치를 끄면 다른 건물의 바닥이 흔들릴 수 있었다. 경로 보조는 그 설명을 듣고 의외의 질문을 했다. “기계 말고 사람이 먼저 출구에 있을 수 있나요?”
그는 자신에게 낯선 기억이 있다고 했다. 도원에서 일한 적은 없는데, 새벽마다 복도를 점검하다가 길을 잃는 꿈을 꾼다고. 꿈에서는 내가 비상구 앞에 서 있고, 그가 반대편에서 같은 문을 붙잡고 있었다. 그 기억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며 나를 보고 웃었다. “이게 당신 기억이라면 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억은 택배가 아닙니다. 제 것이란 증거도 없고요.” “택배가 아니라서 환불도 안 되겠네요.” “아니, 제발 소설 제목 같은 말은 하지 마세요.”
도원 0층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경로 보조가 장치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내 얼굴이 모니터 두 군데에 나타났다. 하나는 실제 현장 카메라의 그였고, 다른 하나는 과거 대피 도면의 빈 인원 칸에 자동으로 들어간 내 사진이었다. 그는 그 화면을 보자 잠시 멈췄다. “제가 움직일 때마다 당신이 출근하는 걸로 처리되네요.” “그거 참 제일 싫은 마법이군요.” 나는 화면 캡처와 시각을 기록했다.
시스템은 그를 '차도윤 경로 2'로 분류해 코일의 새 유지 담당자로 지정하려 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호칭과 위치를 설명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인사 장부의 사진 동기화를 끊고, 대역 승인 버튼을 차단했다. 그러나 현장 카메라의 안전 영상까지 끄지 않았다. 실제 위험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로 보조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쪽 사진, 제 오른쪽 어깨가 이상해요.”
영상 속 그의 어깨에는 파란 점이 찍혀 있었다. 실물 옷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다. 점은 그가 움직여도 같은 화면 좌표에 남았다. 우리가 거울처럼 보던 것은 사실 과거 경로 위에 겹친 표식이었다. 표시를 분리해 보니 점은 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019-S 금속판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얼굴을 닮은 사람이 있어야만 보이는 이유는 아직 몰랐다. 다만 경로 보조의 몸 자체가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모니터의 좌표와 그가 서 있는 위치가 우연히 겹쳐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제가 여기 서 있어야만 사람들이 안전해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태를 알아본 덕분에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계속 서 있으라고 요구하면 그건 또 다른 강제 출근이에요.” “조금은 남아도 됩니다.” “직접 원하면 교대 시간을 정해요.” “나도 퇴근할 수 있겠군요.” 그는 내 말에 작은 안도감을 보였다.
민재가 019-S 좌표를 재계산했다. 숫자는 도원 0층의 코일 바로 위가 아니라 강변 현장과 맞닿는 가상 접점으로 향했다. “서로 다른 위치를 같은 장비 슬롯에 덮어쓰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화면은 가능하지. 실제 벽이 바뀌는 건 아직 모르겠어.” 내가 답했다. “근데 한 가지 알아냈어. 우리가 덮개를 열어서 찾으려던 판이 저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날 오후, 경로 보조는 스스로 쉬는 장소를 골랐다. 한서림이 돌보는 아이와 같은 대기실이 아니라, 바람이 잘 통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는 아이의 보호자나 내 대체 근무자가 되겠다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자기 선택을 적는 종이를 처음 받아 본 사람처럼 한참 들여다보다가 연필로 한 줄을 썼다. '내가 기다릴 때는 내가 기다리기로 해서 기다린다.'
그 문장을 보고 나는 뜻밖에 울컥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누가 진짜 차도윤인가를 따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급한 질문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눈앞의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꼭 복잡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 뒤 019에서 선경이 연락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안전 점검을 위한 지하 마개 외부 검사는 끝났는데, 장치가 스스로 예전 보관실 내부 사진을 재생하고 있어요. 여기서 누가 버튼을 누른 적은 없습니다.” “사람이 들어간 겁니까?” “아닙니다. 실물 공간에는 접근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진 속 첫 번째 탁자에 물건이 하나 늘었습니다.”
사진을 받은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낡은 탁자 위에 도시락 두 개가 있었다. 파란 고무줄로 묶인 것과 아무 표시 없는 것. 하림이 기억하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하지만 화면을 확대하자 두 도시락 뒤에 작은 손글씨 메모가 보였다. `나 먼저 퇴근할게.`
그 말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7시 56분의 문밖 대기자가 실제로 귀가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고, 장치가 이미 종료된 안내 문구를 되풀이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기다리는 사람이 영원히 남았다'고 믿은 전제 자체가 흔들렸다.
나는 하림에게 이 사진을 즉시 보여 주지 않았다. 그가 쉬는 중이었고, 지금 원하지 않는 기억을 끌어낼 이유도 없었다. 대신 당사자가 준비됐을 때 확인할 수 있도록 안전한 자료로 보존했다. 서윤이 옆에서 말했다. “그 메모가 진짜라면 누군가 이미 떠난 거네요.”
“그럴 수도 있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떠났다면 누구도 그 사람을 다시 출근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날 밤 도원 모니터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019-S 외부 귀환 신호: 응답 확인]` 이어서 작은 문장 하나가 추가됐다. `[응답을 들은 사람과 응답을 남긴 사람은 동일하지 않음.]`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내 얼굴로 움직이던 경로 보조가 아니라, 오래전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과 안쪽에 갇힌 사람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졌다.
모니터는 다음 순간 두 개의 도시락이 놓인 탁자를 비췄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탁자 아래에서 의자 하나가 천천히 뒤로 밀렸다. 거기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대신 파란 고무줄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누군가가 기다림을 끝낸 흔적이었다.
제9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