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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95화
PAYLUA ORIGINAL · 제95화

정하경의 검수 메모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752자

오프라인 책장
정하경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은 0층 회의실의 낡은 여성 녹음 파일이었다. 1758 신고와 인사 출석이 섞이는 것을 경고한 사람의 이름으로 표시돼 있었지만, 실제 녹음자가 정하경인지 보존 담당자가 정하경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찾는 일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파일명 하나로 인생 전체를 완성해 버리는 방식이다. 우리 회사는 그 방법으로 사직서보다 먼저 사람을 지운 전력이 있었다. 외부 보관실 019의 원본 자료를 찾기 위해 선경은 공공 기록 보관 담당자에게 정식 열람 신청을 넣었다. 나는 옆에서 '긴급'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았다. 지금 안전에 직접 필요한 공개 설계 부분부터 받으면 됐다. 나머지 개인 기록은 권한 있는 당사자가 판단할 문제였다. 지름길을 좋아하는 개발자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마 시스템이 사람을 씹어 먹는 것을 본 뒤부터 나의 효율주의는 조금 고장 난 모양이다. 공개 자료에는 정하경의 직책이 적혀 있었다. '독립 신고선 검수 참여'. 그녀가 처음 설계했는지, 나중에 결함을 찾았는지는 불분명했다. 검수에 참여한 시기는 한 차례가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문서는 옛 환승교 시절에, 마지막 검수 메모는 도원 이전 공사 중에 작성돼 있었다. 그런데 두 문서의 필체가 다른데도 데이터베이스는 같은 서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명이인일까요?” 민재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시간에 따라 필체를 바꿨을 수도 있어. 기록이 잘못 합쳐졌을 수도 있고.” 내가 답했다. “형 답은 늘 선택지가 세 개네요.” “선택지가 하나뿐이면 보통 그게 함정이라서.” 서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이 문서들이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할 원본을 찾죠.” 오후에 공공 시설 기록센터에서 작은 상자를 보내 왔다. 개인 문서를 제외한 설계 사본과 점검일지였다. 상자 안에는 코일의 철거 전 사진이 세 장 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원형 금속 코일과 두 개의 의자가 보였다. 두 번째 사진에는 코일 옆에 앉은 여성의 팔만 찍혀 있었다. 세 번째 사진은 강을 향한 유리창이었다. 유리창에 작은 손바닥 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단서처럼 보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무슨 자국인지 단정할 수 없으니까. 사진 뒷면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복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외부 경고는 종료하지 말 것.' 같은 문구가 도원 B의 원본에도 있었다. 서윤은 그 문장과 인사 시스템에 추가된 문장을 나란히 세웠다. 회사 버전에는 '복귀 미확인 시 대체 인원을 자동 지정'이 붙어 있었다. 누가 이 문장을 붙였는지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 속 여성의 정체를 캐는 대신 변경 이력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변경 이력은 의외로 명확했다. 최초 추가 제안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설 연동 정책 자동 추천기’. 하지만 이를 실제 운영 환경에 적용한 작업 승인에는 실물 담당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서명란의 이름은 도원솔루션 운영팀이 아니라 ‘미래기록관리협의회 통합관리 사무국’이었다. 승인번호 뒤에는 서명 검증 오류가 표시돼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조직명이 처음부터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그 협의회 실체를 찾을 수 있겠어요?” 내가 물었다. 서윤이 검색 결과를 넘겼다. 공동 운영 건물의 출입 기록 표준화를 맡았던 계약 단체였다. 법인 등록이나 실제 결재자 정보는 원본 계약서 대조가 필요했다. “그쪽이 범인이라고 바로 적지 마세요.”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건 가능하죠.” 서윤이 간단하게 답했다. 정하경의 이름을 더 찾아보던 중 뜻밖의 연락이 왔다. 구청 기록센터의 현직 검수원 백영재가 과거에 같은 이름의 점검자를 만난 적 있다고 했다. 개인 연락처를 주지는 않았다. 대신 공개적인 기술 검토회에서 설비 안전만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원하면 당사자가 직접 참여 여부를 결정하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람의 연락처를 회사 서버의 열쇠처럼 취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날 저녁 검토회에는 정하경이라는 이름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상 회의 참여 대신 서면 답변이었다. '과거 기록과 현재를 구분해 주신다면 설비의 공개 가능한 사항에 한해 답하겠습니다.' 서명 아래에는 단서가 붙었다. '저는 아이의 보호자 확인이나 최초 신고자의 신원 확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질문하기도 전에 그 문장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이미 사람들이 무엇을 추측하는지 알고 있었다. 첫 질문은 간단했다. 왜 019의 보존 코일을 옮겨야 했는가. 답은 예상과 달랐다. '코일은 단독 장비가 아니라 대기 중인 비상 동선의 상태를 두 위치에 동시에 보여 주는 장치였습니다. 철거 공사 때 공공 경보선을 먼저 분리했고, 코일의 시험 기능은 중단돼야 했습니다. 전원을 끄는 것만으로 당시 미완료 대피 기록이 삭제돼서는 안 됐으므로, 원본 장치의 공개 점검면만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즉, 원래 설계는 사람을 미래로 보내거나 복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위험한 길이 사라지기 전에 다른 길의 안전을 확인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도원으로 옮겨진 것은 '공개 점검면'이라는 말과 달리 코일 본체 전체였다. 누군가 설계의 조건을 바꾼 것이다. 정하경은 이 부분의 실제 반출 현장에 자신이 있었는지 답하지 않았다. 기억이 아니라 서류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질문은 17시 56분의 도시락 기록이었다. 정하경은 잠시 답변을 멈췄다. 그리고 한 문장만 남겼다. '그날 누군가 기다린 것은 식사가 아니라 상대가 나왔다고 직접 말해 주는 신호였습니다.' 정확히 누구를 뜻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림의 기억과 오랜 기록이 같은 장면의 주변을 맴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경 씨가 아이 엄마일 가능성은요?” 민재가 낮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건 조사 목적이 아니야. 아이가 직접 원하지 않는 한 관계를 추적하거나 공개할 이유가 없어.” 민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너무 많은 단서가 같은 데로 가는 것 같아서.” “나도 그래.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거지.” 검토회의 마지막 질문은 도원의 물리적 공간 중첩이었다. 정하경의 답변은 뜻밖에도 차가웠다. '설계대로라면 그 현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경로를 겹쳐 표시할 수는 있지만 실물 길이를 늘릴 수는 없습니다. 실제 벽이 바뀌었다면 누군가 시험 기능을 다른 장치와 결합했거나, 원래 없던 변화를 추가한 것입니다.' 그녀는 끝에 작은 도면 한 장을 첨부했다. 019의 제일 바깥면에 있어야 할 금속판이었다. 도원에서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장치였다. 번호는 `019-S`. S가 안전의 S인지, 분리의 S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림에는 오래된 창문과 도시락 탁자 사이를 잇는 얇은 고리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잠시 뒤 도원의 보존 코일이 경고를 띄웠다. `[원본 외부 점검면 019-S 위치 확인 실패 / 과거 출구 좌표 복귀 시도.]` 나는 화면을 꺼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이번에는 복귀 시도와 실제 현장 안전을 분리해서 기록해야 했다. 서윤이 말했다. “찾아야 할 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사라진 금속판이네요.” “그렇죠.” 나는 도면 아래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019-S: 마지막 사람이 떠날 때까지 외부 안전 신호를 보존하는 판.]`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우리 도시를 붙잡고 있는 것은 마지막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을 지우지 않으려고 만들어 둔 안전판을 누군가 잘못 설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 가능성을 수첩에 물음표로 남겼다. 그리고 도원의 실물 보존 코일 옆, 한 번도 열지 않은 금속 덮개의 위치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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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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