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 오십육 분. 우리에게 그 시각은 단순한 분 단위가 아니었다. 최초 대피 사고의 바로 전이었다. 그런데 B-0 안쪽 사람이 식사를 했다는 기억은 맞지만, 왜 도시락이 두 개였는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못했다.
황규태가 건넨 영수증을 인쇄소의 보존용 확대 장치에 넣었다. 감식 담당은 종이 자체를 훼손하지 않고 양면을 비추었다. 앞면에는 두 개의 주문 번호가 있었다. 하나는 직접 수령, 다른 하나는 전달 대기. 뒷면에는 접수자가 적은 짧은 문구가 희미하게 남았다. [먼저 문 안에 있는 분 확인. 다른 분은 문 밖에서 기다림.]
"두 번째 도시락은 문밖 사람 것이라는 뜻인가요?" 민재가 물었다.
"가능성이야 있어. 하지만 실제 전달됐는지는 다르지." 내가 답했다.
그때 분식집 옛 주인을 찾아낸 정라희에게서 영상 전화가 왔다. 가게는 작년에 폐업했고 주인은 지금 다른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도원 지하에서 간식과 도시락을 여러 번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정 사람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은 이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두 사람 몫을 시켜 놓고 한 사람은 밖에 있다며 끝까지 받지 않았어요. 그 뒤에 동네 전기가 한 번 툭 나갔죠."
"전기 나간 시각을 기억하시나요?"
"분까지는 모르겠는데, 장부에 계산 못 받은 주문이 남아 있어요. 저는 음식 장사를 했지, 사람 행방을 조사하진 않았으니까요."
그 말이 정확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신원 확인을 강요하지 않고, 당시 장부의 공개 가능한 부분만 받아 두었다. 장부에는 두 번째 도시락 옆에 조그만 별표가 있었다. '밖에서 먹음'도 '반납'도 아니라 [기다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별표가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의 현실적인 낙서 같았다.
두 도시락에 관한 작은 실수도 발견됐다. 처음 전산 장부에는 두 개 모두 '인도 완료'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분식집 기록은 한 개만 수령된 상태였다. 불출석 처리를 막아 주던 기다림 표시가 물품 인도로 번역됐던 것이다. 나는 음식을 받아야 출입할 자격이 생기는 규칙 같은 것이 존재했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인사 장부 어디에도 그런 정식 규칙은 없었다. 시스템이 서로 다른 업무의 '완료'라는 글자를 합쳐 버린 결과였다. 도시락은 여전히 도시락이었고, 사람의 퇴근은 식사 영수증으로 정산할 수 없었다.
김하린은 1758 경고 회선의 녹음 파형을 다시 보았다. 최초 12초 음성의 앞부분이 마치 잘린 것처럼 들리는 이유가 있었다. 17시 56분부터 장치에 열리던 대기 통화가 17시 58분에야 외부 수신함에 연결된 것이었다. 17시 57분 사고가 발생했으니, 전화는 사고 전에 이미 시도되고 있었다.
"누가 사고가 날 줄 알았다는 얘깁니까?" 서윤이 물었다.
"아닐 수도 있어요." 김하린이 말했다. "전부터 위험한 징후가 있었고 그걸 신고하려고 대기 중이었다면, 사고 전 통화 기록은 자연스럽죠."
우리 모두 녹음을 들었다. 17시 58분에 접수된 목소리는 여전히 왜곡돼 있었다. 그러나 17시 56분 대기 회선에는 짧은 금속음과 한 문장이 더 있었다.
"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도시락은 갔나요?"
나는 종이컵을 움켜쥐었다. 우선 누군가 밥을 먹었는지를 물었다. 출근 도장이나 소유권이 아니었다. 장치 관리자는 발신 기록에서 사람이 직접 말한 부분과 시스템이 나중에 덧붙인 '차도윤 접수' 표시를 분리했다. 나는 아직 그 목소리의 주인을 몰랐다.
"우리가 이 음성 주인을 찾으면 모든 일이 끝날까요?" 민재가 물었다.
"글쎄. 찾더라도 본인이 사고를 낸 건 아닐 수 있어.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있는 길부터 지켜야지."
B-0 안쪽 사람에게 우리가 새로 확인한 시각을 알려 주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무전기에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걸 왜 이제야 들려줘요? 제가 도시락을 받았거든요. 근데 두 번째는 못 받았어요. 누군가 제 몫이 두 개라고 했지만 저는 하나밖에 안 먹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 도시락은 누굴 위한 것이었나요?"
"문 밖 사람요. 그분이 절 기다렸어요. 저보다 먼저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안전하게 나올 때까지요."
첫 번째 퇴사자라는 이름이 가리키던 두 사람의 역할이 조금씩 분리되고 있었다. 문 안에 남은 사람, 문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그런데 사고 기록에는 둘 다 '대피 종료'로 합쳐져 있었다.
서윤은 영수증의 두 번째 주문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카드 소유자를 조회하려다가 멈췄다. 결제자는 여러 사람의 식사를 한꺼번에 주문한 관리자일 수도 있었다. 카드번호로 타인의 사생활을 뒤지는 것은 사고 원인을 찾는 방법이 아니었다. 대신 정식 감사 담당에게 필요한 범위를 요청하고, 우리가 확실히 아는 수량과 시간만 기록했다. 서윤이 내게 물었다. "이러다 진실을 영영 못 찾으면요?" 나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틀린 사람을 범인으로 만든 뒤 복구했다고 발표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 말에 우리 둘 다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한편 설비팀은 코일의 기계식 고리에 붙은 미세한 흠집을 확인했다. 고리는 누군가 억지로 당겼던 게 아니라, 한 번 빼냈다가 다른 위치에 다시 끼운 흔적이었다. 10월 30일 변경 요청 이후 출입 원본 보존 절차가 전자 서명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물리적 접점의 의미가 기록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배 소장님은 고리를 만지지 않고 옆의 수동 설명판을 읽었다. [문 안쪽 시험자 확인 / 문밖 안전 연락 담당자 확인 / 두 회선 동시 연결 시 원본 경로 저장.] 안전을 위해 만든 두 사람의 확인 절차가 나중에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두 회선을 승인'하도록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한 명이 두 명처럼 보인 걸 수도 있겠네요." 서윤이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그렇죠. 다만 지금 안쪽에서 말하는 사람과 밖에서 기다렸던 사람이 누구인지까지는 설명 못 해요." 나는 답했다.
이때 보존 코일의 경로 지도에서 흰 점 하나가 천천히 움직였다. B-0 안쪽의 점이 아니었다. 외부 도로 위에 그려진 오래된 버스 정류소의 위치에서 점이 켜졌다. 1758 외부 신고함이 있던 자리와 가까웠다.
정라희가 외부 CCTV 화면을 보내 왔다. 그곳에는 아무 사람도 서 있지 않았다. 대신 인도 가장자리에 오래된 도시락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구나 버리고 갈 만한 낡은 보온 가방이었다. 그런데 가방 손잡이에 태그가 붙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우리는 그 가방을 곧장 열지 않았다. 현장 안전 담당자가 위험물이 아닌지 확인하고, 실제 소유자를 찾을 수 있도록 주변에 안내문을 붙였다. 구형 시스템은 그 가방을 '첫 번째 퇴사자 귀환 물품'으로 자동 분류하려 했다. 나는 그 명칭을 거부했다. 가방은 아직 누구의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자 도원 B-0에서 오래된 경보가 켜졌다.
[대기 중인 두 번째 경로 접수]
[원본 대피실 출구 상태: 열림 직전]
[문밖 사람의 응답 대기]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이 메시지는 자동일 수 있습니다. 안쪽 분, 당신이 문을 열고 싶다면 직접 말씀해 주세요."
그는 대답했다. "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밖에 기다리던 사람이 아직 거기 있나요?"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나올 수 있도록, 안전한 길을 먼저 마련하겠습니다."
제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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