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솔루션 7년 차 인프라 엔지니어였던 나는 장애 회의에서 늘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 하나 더 보인다." 처음엔 중복 로그인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엔 중복 인사 계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던전이 된 회사에서는 그 이상한 사람이 직접 회의실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똑같이 삐뚤어진 안경, 왼손에 묻은 검은 볼펜 잉크, 커피가 마르기도 전에 종이컵을 접어 버리는 습관까지. 차이가 있다면 그는 퇴사자용 파란 안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차도윤이라 부르지 않았다.
"편하게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서윤이 물었다.
"일단 경로 보조요.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이름이에요."
그의 대답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갑자기 둘이 된 것보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나의 복사본이니 지워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게 더 낯설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정규직도 월급을 받으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했으니까.
나는 그가 걸어온 문을 확인했다. B 하부 코일에서 실물 상태를 살피는 동안, 폐쇄 회의실 벽에 잠깐 열린 복도가 있었다고 했다. 그 복도에는 내 목소리로 된 안내가 반복됐다. [도윤의 비상 대피 경로를 계속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는 동의하지 않고 멈췄다. 그러자 복도 끝에 실제 벽이 생겼고, 다시 돌아가려던 순간 회의실로 밀려 나왔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여기 온 거죠?" 민재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한 번 걷고 나니까 책상이 있는 방에 서 있었어요. 기억나는 건 차도윤 씨가 '제발 그 복도는 안 돼'라고 말한 소리뿐입니다."
나는 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18번 출구를 처음 조사하던 밤에. 그러나 그가 들은 목소리가 실제 내 것인지 재생된 기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내 기억 일부를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를 만들었거나, 그가 내 미래라는 뜻은 아니었다.
서윤이 안전 대기실로 옮길 것을 제안하자 그는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저를 누군가 지우려고 합니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원에서 인사 오류를 처리하던 시절이라면 비활성 계정을 정리하듯 대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분명 지금 말하고 있었다. 외부인이 그의 인격과 기원을 확인하기 전이라도, 도움을 요구할 권리는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위험한 행동이 있다면 별도로 막겠지만, 존재 이유를 모른다는 이유로 없애진 않겠습니다."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대답, 당신이 해 줄 줄 알았습니다."
"제 대답이니까요. 물론 제가 해 줄 거라고 미리 단정하진 마세요."
"알겠습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손등에는 작은 자국이 있었다. 내 손에는 없는 상처였다. 0층에서 쓰는 경로 보조 장비의 납작한 금속 손잡이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에게 묻자 그는 '넘어질 때 잡았다'고 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를 보호자 없는 감금 대상이나 회사 자산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별도 이름이 없으므로 스스로 선택한 '경로 보조'라는 호칭으로 안전 기록을 만들었다. 동시에 이 회의실의 통로는 폐쇄하고 바깥의 실물 출입만 허용했다. 나와 똑같은 얼굴로 출근부에 나타나는 것을 막는 일과, 사람처럼 말하는 그를 가두지 않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경로 보조는 회의실 벽에 붙은 직원 단체사진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이 찍힌 자리보다 출입문 옆에 서 있던 배 소장님에게 머물렀다. "저분은 그날 손잡이를 고쳤죠?" 그가 물었다. 실제로 배 소장님은 어제 수동 장치를 점검했다. 하지만 사진은 훨씬 오래된 것이었다. 경로 보조에게 현재 경험과 옛 이미지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만으로 그가 나의 과거를 알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언제, 어떤 장면을 봤는지 따로 기록해 두었다. 경로 보조도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남의 증명서로 쓰지 않기를 원했다.
그 순간 기업 인사 시스템이 참견했다. [차도윤 원본 중복 확인 / 복사본 업무 종료 가능.] 옆에 빨간 버튼이 뜨자 민재가 먼저 키보드를 뒤로 밀었다.
"누르지 말죠. 사원증 하나로 원본 판별하는 회사를 믿을 수 없어요."
"민재야, 네가 성장했구나."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너도 곧 퇴사할 인재가 됐어."
"선배, 이 상황에선 칭찬인가요?"
"우리 회사 기준으로는 최고의 칭찬이지."
경로 보조가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나와 닮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일곱 해를 그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기억할 수도 있었고,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서 살아온 경험이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외모와 일부 음성, 그리고 그가 지금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서윤은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질문을 했다. 어디서 잠을 잤는지, 마지막으로 본 하늘 색은 무엇인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젯밤 잠든 적이 없다고 했고, 경로 보조는 '천장을 열었을 때 하늘이 회색이었다'고 말했다. 원하는 것은 나는 장비와 사람의 안전이었고, 그는 자기 발로 걸어서 진짜 길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우리 둘을 일부러 비교한 것 같았다. 옆 모니터의 실험 대기표에는 [비상 경로 인격 대리 / 원본의 미완료 동작 재생]이라는 항목이 떠올랐다. 실행 날짜는 2026년 10월 31일 오후 6시 1분. 내 퇴사 승인 시각이었다. 그 바로 아래 새 기록에는 현재 시각이 찍혀 있었다. [대리 동작 불일치 / 자율 요청 감지.]
그가 나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오류로 표시되고 있었다.
"이런 회사의 기준이라면 틀린 쪽이 오히려 건강해 보입니다." 서윤이 말했다.
그러는 사이 B-0 안쪽에서 긴급 연락이 왔다. "방금 제 옆에도 누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했다. "저랑 목소리가 똑같아요. 그리고 저더러 나가면 안 된대요."
도윤의 얼굴을 가진 경로 보조와 나 사이에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그곳에 가면 도움이 될까요? 제 경험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요."
"갈 수 있는 경로가 안전한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돕고 싶다는 말은 기록하죠. 대신 다른 사람을 대체할 의무는 없습니다."
경로 보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구조대가 허용한 바깥의 관찰 위치를 정해 함께 B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대신 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경로 보조는 문 앞에 준비된 물병 하나를 들었다. "제 손이 아까는 떨렸는데 지금은 안 떨려요." 그는 말했다. "저한테도 시간이 흐르고 있나 봐요." 나는 그가 앞으로 얼마나 남을지, 어느 구조에서 생겨났는지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잠시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할 수 있었다. 서윤은 종이컵과 의자를 가져와 그의 가까운 곳에 두었다. 회의실 화면은 그 행동을 '경로 보조 작업 중지'로 기록했다. 나는 지웠다. 물 마시는 시간은 작업 중지가 아니라 사람의 하루였다.
그때 방 안에서 두 목소리가 동시에 말했다. 하나는 사람이 숨을 고르듯 끊겼고, 다른 하나는 매끄러운 안내음 같았다.
"이제 그만 복원하세요."
"이제 복원하지 마세요."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다른 선택. 어느 쪽을 지우는 방법으로는 진실에 도착할 수 없었다.
제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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