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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83화
PAYLUA ORIGINAL · 제83화

전원을 끄면 바닥도 사라진다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607자

오프라인 책장
"코일 전원을 내려 보죠." 민재가 말했다. 그건 아마도 상식적인 제안이었다. 과열된 기계가 있으면 전원을 끈다. 다만 그 기계가 서울 열일곱 건물의 복도를 붙들고 있고, 어떤 복도 안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나는 배 소장님에게 절연 장갑을 건넸다가 그분의 표정을 보고 즉시 다시 받았다. "차도윤. 내가 장갑 끼면 네가 대신 결재할 거냐?" "퇴사해서 결재 권한이 없습니다." "잘됐네. 그럼 누구도 함부로 끄지 마." 우리는 주전원 차단기 앞에 빨간 표식을 붙였다. '무전원 시험 승인 전 조작 금지.' 나는 그 문장 하나가 무수한 회사 게시판의 '안전 제일'보다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다. 배 소장은 장비 앞에 설치된 두꺼운 케이블을 가리켰다. 구리 코일은 주전원, 독립 경고 보조 전원, 대피실 안쪽으로 이어지는 유지 회선의 세 덩어리로 나뉘어 있었다. 끝의 회선은 도면에 연필로 그려져 있었다. "시험은 사람이 없는 회로부터 해야죠." 서윤이 말했다. "그럴 수 있는 회로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답했다. 우리는 연결을 끊는 대신 동작 기록을 살폈다. 보존 코일은 과거의 길을 다시 만든다기보다, 원래 길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오면 '마지막으로 안전하다고 기억한 경로'를 임시로 나타내고 있었다. 문제는 안전했던 시점이 십 년 전이거나 어제거나 가리지 않는다는 것. 십 년 전의 문이 오늘의 벽 가운데 나타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좋아요. 마지막 안전한 경로면 왜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거죠?" 민재의 질문에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때 서윤이 바닥에 분필로 원을 그렸다. "코일은 길을 보여 주기만 할 수도 있어요. 출입증 시스템이 그 길에 사람을 강제로 배정하는 거죠. 둘을 별도로 봐야 해요." 나는 구조대와 합의한 원칙을 다시 적었다. 코일을 무작정 끄지 않는다. 사람이 실제로 있는 통로와 영상만 존재하는 통로를 분리해 확인한다. 무기명 신고 회선은 항상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험은 언제라도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한때 내가 회사의 배포 절차서에 넣으려다 '너무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삭제된 항목들이었다. 안쪽 사람에게는 시험 순서를 먼저 설명했다. 언제 화면이 꺼질지, 어떤 소리가 날 수 있는지, 이상하면 무엇을 말하면 즉시 멈추는지. 그가 준비됐다고 답했을 때에도 실물 바닥과 연결된 선은 조작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옛 도면의 번호 하나가 실제 회로 번호와 달랐고, 그 차이가 우리 예상 밖의 영향을 만들었다. 사고를 되돌린 후 나는 시험 절차서 맨 앞에 '도면 확인 뒤 실제 배선 재검증'을 추가했다. 이미 안전을 확인했다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이 바닥은 너무 비싼 방법으로 가르쳤다. 실험은 사람을 피한 지상 저장고에서 시작됐다. 배 소장님은 코일로 들어오는 오래된 영상선의 하나를 분리한 뒤,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만 모형 복도의 표시를 꺼 보았다. 벽을 가로지르던 가짜 회색 문틀은 화면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독립 경고등은 그대로 켜져 있었다. 좋은 징후였다. 다른 건물의 통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모형을 껐을 때 B-0 안에서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이 사라져요!" 나는 즉시 분리선을 원상복구하라고 요청했다. 배 소장님이 경로를 되돌렸고, 안쪽 사람의 발밑에서 시멘트가 긁히는 소리가 멎었다. 구조대 카메라에는 진짜 콘크리트 위로 검은 틈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장면이 찍혔다. 영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시험을 반복하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내가 무전기에 말했다. "안전한 장치라고 판단했는데, 예상 밖의 영향이 생겼습니다." "미안하단 말은 받겠습니다." 안쪽의 사람이 대답했다. "대신 다음 시험 전엔 저한테도 먼저 얘기해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누가 누구의 동의를 먼저 묻자고 떠들었더라? 바로 나였다. 사람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 사람의 발밑에서 시험하는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서윤이 내 노트 가장 윗줄에 적었다. [안쪽 대상자 실시간 설명 및 중단 요청 채널 확보.] 그 글씨가 회로도보다 훨씬 중요해 보였다. 반면 독립 외부 경고 장치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주전원과 경고 보조 회로가 분리돼 있었다는 뜻이었다. 배 소장님은 별도의 임시 축전지로 외부 신고와 안쪽 무전만 유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장비를 무작정 복원하는 대신, 사람이 어디에 기대어 서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계획이었다. 민재는 자신의 점검표를 붙잡고 한참 서 있었다. "선배, 아까 그 사람이 다쳤으면 저도 책임이 있었겠죠?" 나는 쉬운 위로 대신 내가 승인한 시험 범위와 실제로 바뀐 범위를 나란히 적었다. "우리가 관여한 건 맞아. 그래서 다음에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도 적어야지. 누가 잘못했는지 먼저 정하는 회의로 끝내지 말고." 민재는 끄덕이더니 안쪽으로 보낼 새 조명을 직접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먼저 밝기를 낮추고, 눈부심이 없는지 물었다. 그 작은 변화가 우리가 아직 이 회사의 규칙에 완전히 먹히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오후가 깊어지자 17개 건물 담당자들이 원격 회의를 요청했다. 이번 회의에는 출석 카드도, 강제 임명도 없었다. 박유라가 병원의 산소 공급 상태를, 금융센터 시설 당직 정우찬이 0.5층 접근 금지 상황을, 정라희가 집하장 야외 노면을 보고했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말을 쏟아 냈지만, 누구도 다른 건물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명령하지 않았다. "도원에서는 상태가 어떻습니까?" 박유라가 물었다. "주전원은 그대로입니다. 경로 복원 영상선 하나가 실제 바닥과 연결됐음을 확인했어요." "그럼 환자 이동이 필요할 때는요?" "실측한 독립 통로로만 이동해 주세요. 우리 화면의 파란 화살표는 믿지 마시고요." "그건 병원에서도 말해 둡시다." 회의가 끝나자 내 앞에 오래된 대시보드가 나타났다. [안전 임시 전원 제안 / 대체 관리자: 차도윤]. 나는 자동 서명 칸을 지우고 [시설 안전 책임자 공동 확인 대기]로 바꿨다. 바로 승인할 수 있는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일이 이렇게 많은 노동을 요구하다니. 회사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역시 승인하지 않을 용기였다. 그때 외부 도로에서 소방차의 사이렌이 다시 울렸다. 검은 문틀이 이번에는 우체국 출입구에 걸쳐 나타난 것이었다. 사람의 대피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옛 길이 오히려 사람들이 피난해야 할 길을 막고 있었다. 그 현장의 안전조치가 끝날 때까지 모형 시험을 전면 중지했다. B-0의 무전기에서 낮은 기침 소리가 났다. "이제 발밑은 괜찮아요. 그런데 문 옆에 다른 문이 하나 생겼어요." 나는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무슨 표시가 있습니까?" "퇴사자 전용이라는 글자가요. 그런데 이름이 당신 겁니다." 보조문 안쪽의 작은 액정에 문장이 뜨고 있었다. [차도윤 퇴사 경로 / 안쪽 대상자 경로 인수 요청.] 내 동의 없는 길이 그 사람의 몸 아래로 연결되려 했다.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그 문은 제 것도, 당신 것도 아닙니다. 그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다른 길을 찾아 보겠습니다." 코일의 열 경고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하나를 배웠다. 전원을 끄는 버튼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발밑에서 안전하다고 믿은 길을 빼앗는 버튼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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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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