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사람을 붙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잠깐만'이라고 말하는 상사, 결재란이 열두 개인 휴가계,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음 회의를 예약하는 팀장. 우리 회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문 자체를 복도 끝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오전 일곱 시 십이 분. 나는 다시 도원솔루션 0층에 내려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층의 표지판이 새로 붙어 있었다. [서버실 B — 접근 권한: 최초 퇴사자]. 참으로 친절한 직장이다. 퇴사 처리는 제멋대로 해 놓고 출입권만 안 지워 준다.
“도윤 씨, 표지판만 보고 들어갈 생각은 아니죠?” 문서윤이 안전모를 건네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행동을 했길래 그렇게 믿음이 없죠?”
“들어가면 안 되는 문 앞에서 농담하는 사람은 대부분 들어가고 싶어 하거든요.”
맞는 말이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배만식 소장은 설비 점검팀 둘과 함께 물리적인 문을 살폈다. 금속문은 분명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문틀 오른쪽을 두드리면 음이 벽 안쪽이 아니라 복도 반대편에서 돌아왔다. 보통 건축 현장에서는 공명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어제 두고 온 우산이 반대편 벽의 유리창에 비쳐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 우산은 분명 18층 사무실에 있었다.
“광학 투사일 수도 있어요.” 서윤이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제 우산값 영수증까지 비치면 회사가 환불해 주는지 물어보려고요.”
정라희가 들고 온 열화상 카메라에는 실제 사람이 없었다. 대신 서버실 안쪽 전력선 두 개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소장은 즉시 분전반에서 해당 분기만 격리했다. 조명과 외부 경보를 유지한 채 문제 설비만 끊을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비한 문을 여는 용기보다 누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주의력이었다.
남기석이 문 옆의 오래된 육각 나사를 가리켰다. “저건 제가 일하던 때부터 있던 점검창입니다. 서버실 전산보다 먼저 설치됐어요.”
투명 커버 아래에는 종이 띠가 말려 있었다. 기계식 사고 기록기였다. 컴퓨터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철심으로 찍어 놓은 구멍까지 동시에 고치기는 어렵다. 물론 누군가 종이 자체를 갈아 끼우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장치 번호와 봉인 상태를 촬영하고 시설팀 입회 아래 외부 읽기 부분만 살폈다.
첫 구멍은 17:57. 두 번째는 17:58. 세 번째는 18:01. 예상했던 세 시각이었다. 그러나 맨 위에는 뜻밖의 표시가 있었다. [퇴출 준비 완료]. 그 아래는 [퇴출 보류]. 마지막은 [퇴출 대상 미확인].
“퇴출이면 직원 해고 아닙니까?” 민재가 물었다.
“확인하지 말자고.” 내가 말했다. “서버실에서 전원을 빼내는 것도 퇴출일 수 있고, 사람이 대피하는 것도 퇴출이라고 적었을 수 있어. 같은 글자라고 같은 뜻은 아니야.”
민재는 입술을 내밀었다. “선배가 퇴사한 다음부터 단어 하나에 인생을 거시네요.”
“회사에서 단어가 사람 목숨을 걸게 만들었거든.”
우리는 B의 역사 기록을 현장 도면과 겹쳐 보았다. 원래 서버실은 18층 장비실 아래 좁은 축에 있었다. 0층 같은 것은 설계도에 없었다. 그런데 금속문 경첩에 찍힌 제조연도는 도원솔루션 건물이 완공되기 전이었다. 낡은 문이 새 건물에 옮겨졌다는 추측도 가능했다. 여전히 문제는 왜 문을 열기 전인데 안쪽의 공기가 우리 발목을 식히는지였다.
“이거, 다른 층이랑 연결된 환기 덕트 아닌가요?” 배 소장이 물었다.
그가 덕트 감지기로 압력 차이를 측정했다. 공기는 우리가 있는 복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표시기는 반대였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을 열어 바람을 보내는 것 같았다. 즉시 문 개방을 중지하고 관련 층의 실물 피난 경로부터 확인했다. 우리의 호기심 때문에 외부 화재문 압력이 변하면 안 됐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서버실 B의 제목을 다시 읽었다. [첫 번째 퇴사자는 아직 나가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쓴 문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서늘했고, 기계가 쓴 문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서윤이 내 옆에 섰다. “도윤 씨가 첫 번째 퇴사자인 줄 알았어요?”
“솔직히요. 제가 주인공이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말해요?”
“퇴사 서류를 직접 낸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니라면 정말 위험하죠. 아직 못 나간 다른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 대화 중 서버실 바깥 모니터에 초록 화살표가 하나 생겼다. 비상구를 뜻하는 색이었다. 화살표는 문 쪽이 아니라 우리 뒤편, 막다른 벽을 가리켰다. 원래 내 눈에만 보이던 파란 퇴사자 안내와 달랐다. 서윤도 그 초록빛을 보았다.
“저거 보여요?” 내가 물었다.
“네. 하지만 실물 벽이에요.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때 벽 건너편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손가락이 아니라 작은 공구의 뒷부분으로 친 듯한 소리였다. 민재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가다가 소장이 내민 손에 멈췄다.
“대답하면 출입 승인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남기석이 말했다.
“그럼 들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려요?” 민재가 물었다.
나는 준비된 별도 수동 구조용 음성 확성기를 들었다. 회사 출입 단말과 연결하지 않은 장비였다. “안에 누가 계시면 말씀해 주세요. 문을 억지로 열지는 않겠습니다. 다친 곳이 있나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화면 아래 오래된 종이 띠가 한 칸 움직였다. 점검창의 바늘은 스스로 잉크를 찍었다.
[17:57 퇴출 보류 사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음]
[안에서 나가야 할 사람이 있음]
“이게 같은 말이 아니에요?” 민재가 중얼거렸다.
“아니.” 서윤이 대답했다. “안에서 나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실제로 나갔다는 건 완전히 달라.”
복도 끝에서 누군가 얇은 종이를 끌고 가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감시하는 서버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하지만 소리의 방향은 문 반대쪽, 방금 초록 화살표가 나타났던 벽 너머였다.
잠시 뒤 회사 메신저가 켜졌다. 보낸 사람은 없었다.
[최초 퇴사자 현황]
[출구는 확인되었습니다.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리 퇴사 진행하시겠습니까?]
나는 버튼 위에서 잠깐 손을 뗐다. 아까 벽을 두드리던 소리가 일정한 세 박자로 반복됐던 이유가 떠올랐다. 옛 장비가 사람을 부르는 신호를 흉내 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확인하겠다고 누가 응답한 것처럼 서명한다면, 실제 안에 남아 있는 존재에게 또 다른 책임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나는 서윤에게 별도 녹화 장비가 켜졌는지 확인했다. 새로 나타난 문장과 내 실제 조작을 구별해서 남겨야 했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화면을 본 사람이 나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화면의 거절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검게 변하면서 새로운 창이 떴다.
[거절 처리 완료]
[첫 번째 퇴사자가 거절했습니다.]
“와.” 내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거절한 사람 이름까지 마음대로 만들어 내네.”
서윤은 기록을 캡처하지 않았다. 별도 카메라로 화면을 촬영하고 그 앞에 시간표를 놓았다. 나중에 누군가 내 거절을 '첫 퇴사자의 답'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그러자 초록 화살표가 방향을 바꾸었다. 막다른 벽 위로 문손잡이 모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손잡이 아래에는 흰 글씨 하나가 떠올랐다.
[첫 번째 퇴사자는 당신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그 한 문장만은 시스템의 안내 문구처럼 보이지 않았다. 벽 안쪽에서 누군가 힘겹게 남긴 경고 같았다.
제6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