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승인 직후 내가 처음 본 것은 파란 비상구였다. 그때는 회사 밖으로 나갈 길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길이 보여도 실제 사람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지, 누가 그 문을 마음대로 잠그지 않는지였다.
오전 여섯 시 오십 분. 도원솔루션에는 해가 들고 있었고 0층 회의실의 스피커는 조용했다. 그곳에서 일찍 끝난 회의를 축하할 사람은 없었다. 대신 실물 위험을 확인하려는 현장팀과, 밤샘 근무를 마치고 교대하는 시설 직원들이 복도를 지나갔다.
“차도윤 씨, 원본 보호 장치 B는 개봉 전에 주변 설비를 격리해야 합니다.” 배만식 소장이 말했다.
“네. 읽을 수 있는 기록부터 보죠.”
우리는 서버실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소방·전기·시설 점검 담당자들이 실물 통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보관함 외부에 노출된 원본 기록의 확인 가능한 항목을 읽었다. 그 장치에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목적이 적혀 있었다.
[원본 보호 장치 B]
[주 기능: 사고 발생 시 원본 인원 기록과 임시 대역 기록을 구분하여 보존]
[금지 기능: 임시 대역을 원본으로 강제 교체 / 실제 인원 일괄 종료]
나는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대역’이라는 단어가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것도 지금처럼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존재를 삭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 중에 누가 실제로 어디 있었는지 혼동하지 않도록 분리하려는 기능으로 쓰였다.
“그럼 지금 사람처럼 움직이는 두 번째 경비나 명주 둘은요?” 민재가 물었다.
“이 문서만으론 설명 안 돼.” 나는 말했다. “일단 서류 속 대역 기록과 실제로 의사를 표현하는 존재를 같은 걸로 취급하지 말자.”
문서윤은 가장 먼저 그 문장을 별도의 안전 원칙으로 남겼다. 사람인지 기록인지 확정되지 않은 존재는 자동 삭제나 병합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안전한 대기 위치와 호칭을 직접 말할 수 있도록 한다. 장치는 그것을 막으려고 만든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옆에 선 두 임현규는 서로 다른 표정이었다. 검은 셔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양복은 손가락을 굳게 쥐었다. 나는 두 사람 중 누가 원본인지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은 지금의 설비 위험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면 최초 작동 기록은 볼 수 있습니까?”
배 소장은 외부 계기판을 점검했다. 봉인된 하드디스크를 열지 않아도 날짜와 작업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본의 첫 상태는 [예방 차단 대기]. 그다음 [17:58 위험 신호 전달 실패]. 마지막은 [18:01 동기화 재개 요청]이었다.
“우리 1화 때 퇴사 승인 떨어진 시각이 여섯 시 일 분이었죠.” 민재가 말했다.
“그래. 그런데 위험 신호는 그보다 세 분 전에 있었어.”
그제야 작은 그림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사고가 날 것을 알고 안전 회선을 이용해 경고를 남겼다. 그러나 경고는 직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중간에 막혔다. 그리고 세 분 뒤 내 퇴사 처리를 계기로 출입·인사 시스템이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순서만큼은 더 분명해졌다.
“도윤 씨가 퇴사해서 이 일이 벌어진 건 아닙니다.” 서윤이 말했다.
“그 말은 고맙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 퇴사 승인 이벤트가 무슨 일을 건드렸는지는 찾아야 해요. 원인을 오해하면 다음 퇴사자도 똑같은 일을 겪을 테니까요.”
그때 외부 공공 접수함에서 아침 수동 신고 건의 후속 확인이 들어왔다. 첫 신고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수신 기록이었다. 신고자 이름은 공란으로 남아 있었고, 현장 위험은 정류소와 금융센터의 실제 점검표에 연결됐다. 이름이 없는 신고라도 누군가 구조를 준비하는 데 충분했다.
“그럼 마지막 신고는 이제 끝난 겁니까?” 민재가 물었다.
“아니야. 우리가 받은 건 하나의 신고가 실제 담당자에게 간 기록이야. 최초 녹음과 같은 사람이 보낸 건지도 모르고, '마지막'이란 이름이 붙은 메시지의 모든 내용도 확인하지 못했어.”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면 누가 또 사람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요?”
“이렇게 말해야지. 신고 수신은 끝났지만 동의는 받은 적 없다고.”
서윤이 기록을 정리하는 사이 나는 18번 제0 경계의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독립 구조 대기 통로는 외부 담당자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병원은 환자를 회사 인사 기록과 분리했고, 금융센터 서쪽 계단은 실제 구조가 끝난 뒤에도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 폐쇄했다. 도원 11층은 화재 위험 부분을 수리 중이었다. 열일곱 개 건물의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위험 상태를 숨기고 자동으로 ‘완료’라고 찍는 일은 적어도 몇 곳에서 멈췄다.
“이제 교대하세요.” 서윤이 내게 말했다.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퇴사자에게 그런 문장을 쓰는 건 벌금 내셔야 합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배만식 소장에게 현장 연락망을 다시 넘기고, 자발적으로 필요한 기술 설명만 제공하겠다는 기록을 남겼다. 누가 쉬어도 경고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나부터 지켜야 했다.
조정실 아이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멀리서 보호 담당자에게 안부만 확인했다. 어머니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고, 아이 팔찌의 000 번호를 주민등록처럼 쓰지도 않았다. 서지완은 첫 출근 예정 인사팀과의 연락을 직접 결정했고, 회사의 임의 제0 회의 참석을 거부한 기록은 유지됐다. 그녀의 그림자 하나는 여전히 영상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시간의 문제가 모두 설명된 것은 아니었다.
0층 복도 끝에서 비상 호출 보조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는 민재와 닮았지만 손을 움직이는 방식은 달랐다.
“제가 회사 직원이 아니면 저 문 밖으로 나가도 되나요?”
나는 단번에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실물 통로가 안전한지, 그가 실제로 그곳을 걸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위치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안전한 출입 경로를 함께 확인해 볼 수 있어요.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당신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깥의 아침 햇살을 바라봤다. “햇빛이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나는 서윤과 시설팀에 연락해 그가 원하는 장소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했다. 그 존재가 어디서 왔는지는 몰랐지만 원래 인물과 같아져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규칙은 없었다.
회의실에서는 마지막으로 공지 하나가 떴다.
[06:01 대리 참석 및 강제 관리자 지정: 보류]
[제0 경계 외부 안전 신고: 독립 전달 중]
[원본 보호 장치 B: 조사 전까지 봉인 유지]
나는 완전히 끝났다고 공지하지 않았다. 건물들은 여전히 겹쳐졌고, 임현규의 두 모습과 명주 둘의 존재도 설명되지 않았다. 과거 기록을 잘못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밝혀야 했다.
그런데 공지 아래에 아주 낡은 파일명이 떠올랐다.
[제0 경계 최초 시험 실패 원본]
[시험 목적: 퇴사자가 없는 건물에서도 안전 보장]
[시험 장소: 도원솔루션 폐쇄 서버실 B]
[최초 실패 기록: 인사 동기화 전 발생]
“인사 동기화 전에 실패했다고?” 나는 화면 가까이 몸을 숙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의 출근과 퇴사를 기록으로 묶은 것이 모든 현상을 만들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이상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물론 오래된 날짜가 잘못 이관됐을 수도 있다. 원본 확인이 필요했다.
파일의 끝에는 손으로 쓴 듯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사람을 붙잡지 말 것. 다만 대피시키지 못한 것을 없는 사람으로 세지 말 것.’
내가 아는 회사의 업무 보고서에는 없는 문장이었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이 시스템을 고치려 했던 것이다. 어쩌면 퇴사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는 서윤에게 그 문장을 보여 주었다.
“다음은 서버실 B겠네요.”
“당장 문을 열자는 말은 아니에요. 봉인과 현장 안전부터 확인해야죠.”
“그건 당연하죠.” 나는 창밖의 아침을 봤다. “오늘은 제발 회의 없이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그때 휴대전화에서 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발신인이 ‘내일의 차도윤’이 아니었다.
[발신: 도원솔루션 서버실 B / 비상 기록]
[제목: 첫 번째 퇴사자는 아직 나가지 못했습니다]
메일 아래에는 낯익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사고 발생: 17:57]
1758의 최초 경고보다 일 분 빨랐다.
제6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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