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는 전달됐나요?”
문자 한 줄을 읽고 나자 이상하게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몇 시간 동안 건물들이 사람을 붙잡으려고 온갖 이름을 바꿔 붙였는데, 정작 저 문장을 보낸 사람은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위치를 추적합니까?” 민재가 물었다.
“안전 확인에 필요한 위치만. 누군지 알아내려고 감시하는 건 아니야.”
김하린은 공공 안전 접수 담당자와 연락해 수동 신고의 실물 단말 위치를 확인했다. 도원솔루션 바깥 작은 보행자 통로에 달린 비상 호출 버튼이었다. 실제 통화가 가능한 장치는 아니고, 위험 상황을 알리는 간단한 송신기였다. 버튼 누름이 검출됐다는 사실까지만 확인됐다.
“누군가 실제로 누른 건 맞아요?” 서윤이 물었다.
“입력 접점이 눌린 건 맞습니다. 사람이 눌렀는지, 진동이나 장치 고장인지는 현장 확인이 필요해요.”
정말 지겹도록 신중한 답이었다. 그런데 그 신중함이 오늘 수십 명의 피해를 막았다.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동의를 만들고,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구조를 취소했던 장치와는 달랐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도원 로비를 지났다. 회의실 출석 화면은 흰 바탕에 [참석자 없음]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 옆에 [경고 유효]라는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사람 하나를 희생하지 않아도 경고는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도윤 씨, 그걸 보고 기분이 좋으세요?” 서윤이 물었다.
“퇴사자 없는 회의요? 제 인생 최고의 회의죠.”
웃음이 짧게 지나갔다. 밖은 밝아지고 있었다. 이틀 밤을 지새운 것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날짜는 이제 11월 1일 아침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출근복 대신 가벼운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 주말 아침이었다.
비상 호출 버튼은 오래된 철제 기둥에 붙어 있었다. 옆에는 야간 조명과 자전거 도로 안내도가 있었다. 빨간 버튼 아래에 원래부터 새겨져 있던 글씨는 '위험하면 누르세요. 성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였다. 누군가 최근 새로 붙인 경고 스티커가 그 문장을 가리고 있었다.
[이용 시 제0 회의 참석 처리]
“다시 뜯어야 할 문구가 늘었네요.” 민재가 말했다.
“스티커를 떼는 건 시설팀이 하겠죠. 우린 사진과 이력만 남깁시다.”
하린은 스티커의 작성일과 승인 서명을 대조했다. 발행 주체는 공동 운영사 미래기록관리협의회의 시설 공지 계정이었다. 개인 이름도, 실제 결재 번호도 비어 있었다. 옛 단말은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새 안내는 그 일을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포장했다.
“실물 원래 기능을 시민에게 알려야겠어요.” 하린이 말했다.
현장 통제 인력이 안전하게 가린 뒤, 하린은 공공 설비의 실제 이용 방법을 다시 표시했다. 버튼을 누른 사람이 직원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서윤은 기업 출석 데이터가 버튼 입력을 수신하지 못하도록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수동 신고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 CCTV는 보행자의 개별 신원을 식별하도록 고화질로 저장되지 않았고, 신고 버튼 근처에는 잠깐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소방 신고가 실제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신고자의 신원을 강제로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돌아서려는 순간 기둥 밑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여기… 아직 있나요?”
민재가 놀라 벽을 바라봤다. 기둥 안쪽 작은 스피커에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수신함에선 이전 신고와 별개의 실시간 단문 연결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한쪽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서윤이 공공 담당자에게 확인한 뒤 마이크를 켰다.
“여기는 현장 안전 확인팀입니다. 위험 신고는 실제 접수되었고, 위험한 통로는 통제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신 분이 계십니까?”
잠시 지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어요?”
“확인된 건물에서는 대피와 실물 출입 안내를 시행 중입니다. 어느 장소를 말씀하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 침묵. 이번에는 아이 목소리인지 어른 목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들렸다.
“아직 한 사람은 아니에요.”
연결이 끊겼다. 기록상 통화 시간이 열한 초 남았다.
“아이 엄마일까요?” 민재가 속삭였다.
“그렇게는 몰라.” 나는 손을 저었다. “그 말을 기록에 적으면 우리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사람을 또 하나 만들어 버려.”
누군가 실제로 한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그러나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도 그대로 남겨야 했다. 서윤은 음성을 담당자에게 보존 요청하고 위치·시간·위험 정보만 별도 공유했다.
그때 조정실 보호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안전한 상태였지만 천장 표시등이 일제히 파란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아이한테 무슨 말을 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요. 그 아이는 아침으로 달걀을 먹고 싶다고만 했습니다.”
“그럼 달걀 챙겨 주세요. 그리고 표시는 시설팀이 직접 확인하도록 해 주세요.”
이름 없는 아이가 새 신호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에게 답을 캐내는 대신 현장 안전을 유지했다. 그 태도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결정을 가로채지 않았다.
건물 외벽에서 투명한 복도 하나가 나타났다. 유리처럼 보였지만 유리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복도는 도원솔루션 로비와 맞은편 카페 옆 벽을 잇고 있었다. 중앙에는 [신규 인사 연결 경로]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광고 화면처럼 보고 있었다.
하린이 사람들을 실제 보도 가장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노란 표시선 밖에서 복도의 바닥 경계가 어디인지 확인했다. 겹쳐진 길의 안쪽에는 근무복을 입은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들었다.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거기 계신 분, 도움이 필요하시면 안전한 통로로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형체는 대답하지 않고 작은 종이를 유리 너머로 밀었다. 종이는 벽을 통과하지 않고 바닥 안쪽에 떨어졌다. 그 위에 이런 글씨가 보였다.
[외부 관찰자 번호 000]
[사용자: 빈칸]
[장치 위치: 도원 조정실 아님]
“000이 사람 이름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네요.” 서윤이 말했다.
“장치 번호라는 증거는 있지. 하지만 왜 그 번호가 아이 팔찌에 붙었는지는 아직 모르죠.”
형체는 유리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복도의 안내판이 바뀌었다.
[대기 구역 안전 유지]
[마지막 한 사람 위치 미확인]
지금까지 시스템은 결석자를 찾았다. 이제 처음으로 사람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고 인정하는 표시가 나타났다.
나는 휴대전화에 떠오른 새 회의 요청을 지웠다. 아니, 정확히는 개인 일정 목록에서만 거부했다. 공식 로그에는 거절과 원본을 따로 남겼다.
“서윤 씨. 마지막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면 찾을 수 없겠죠.”
“그래도 실제 위험이 있다면 위치부터 확인할 수 있어요.”
민재는 마지막으로 경보 기둥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봤다. 그 자국이 오늘 아침 눌린 버튼의 주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비가 그친 뒤 남은 먼지처럼 흐릿했다. 우리는 사람을 찾는 일과 사람의 허락 없이 정체를 공개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을 현장 보고서에 적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직원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고립 가능자. 그렇게 쓰자, 화면의 문장이 처음으로 사람의 이름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5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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