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오십팔 분. 내게 남은 시간은 세 분이었다. 누구라도 녹음된 목소리로 출석시킬 수 있다면 다음에는 전 직원의 통화 내용을 모아 회의를 열지도 모른다. 지각한 사람이 없다는 회사, 끔찍하게 효율적이었다.
“서윤 씨, 녹음 원본이 물리적으로 어디 있어요?”
“0층 회의실 옆 기록실 보관대입니다. 하지만 지금 뛰어가도 시간이 걸려요.”
“그럼 원본을 뜯어 오지 말고 현장 재생 장치의 사용 이력만 보내 달라고 합시다.”
서윤이 배만식 소장에게 연락했다. 그는 도원 관리실에 남아 실제 장비를 지키고 있었다. 기록실 재생기는 오래된 아날로그 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옮기던 장치였고, 누가 언제 읽기 버튼을 눌렀는지 남기는 계기판이 따로 있었다.
“스물일곱 분 전에 재생 기록이 있소.” 배 소장이 말했다. “그런데 테이프가 움직이지 않았네.”
“그럼 누군가 파일 복사본을 틀었을 수도 있겠네요.”
“맞소. 장치가 꺼져 있는데 회의실 스피커는 소리를 내고 있지.”
우리는 두 음성을 비교했다. 원본 테이프의 여성은 숨을 들이쉰 뒤 문장을 이어 갔다. 회의실에서 나온 여성은 숨소리 없이 자음부터 시작했다. 발화 내용 중 일부는 원본에 존재하지 않았다. 직접 본인이 새로운 동의를 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단어를 이어 만든 재생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면 가짜 음성이란 걸 보여 줄 수 있겠죠?” 민재가 물었다.
“가짜라고 단정해 버리면 원본 목소리도 기록에서 사라질 수 있어. 출처와 편집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사람의 출석 승인으로 쓸 수 없다는 게 핵심이야.”
나는 음성 인증 모듈이 무엇을 확인하는지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얼굴이나 신분증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등록된 문장과 비슷한 파형을 만들면 [출석 성공]이 떴다. 원안의 위험 알림 재생용 음성 인식기가 회사 고용 인증 기능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번 임현규 대표가 둘이었던 것도 이 방식으로…” 민재가 말을 멈췄다.
“그건 아직 몰라. 음성 복제와 실제로 두 사람이 움직인 일은 다른 문제야.”
기계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데 새로운 사람을 동원하지 않기로 했다. 서윤은 안전 시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된 합성 신호를 넣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 번 반복되는 기계음이었다. 그런데도 화면에는 [제0 회의 출석자 후보 01]이 나타났다.
민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냉장고도 인턴으로 뽑겠네요.”
“경력은 내가 더 긴데 대접은 기계가 낫겠지.”
그러나 웃을 때가 아니었다. 사람의 동의를 확인하지 않는 인증이라면 관리자를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거짓 출석이 확정되는 순간 17개 건물의 자동 문 제어가 다시 연동될 위험이 있었다.
우리는 기업 출석 인증과 공공 위험 안내를 분리하는 비상 정지를 준비했다. 공공 신고는 1758을 통해 별도 접수되도록 현장 담당자가 확인했고, 병원과 금융센터 역시 실제 구조 대피를 수동 통제 중이었다. 안전 담당자의 확인이 들어온 뒤에야 서윤이 출석 인증 모듈을 읽기전용으로 전환했다.
[자동 음성 출석 기능: 일시 보류]
회의실 스피커에서 여자 목소리가 끊겼다. 대신 기계음이 들렸다.
[경고. 열여덟 번째 참석자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참석자를 찾지 말고 위험 신고를 받으라니까.” 내가 혼잣말했다.
[경고. 여섯 시 일 분까지 완료되지 않으면 외부 신고가 삭제됩니다.]
남은 시간은 일 분 십 초였다. 지우는 것도, 이름을 대신 넣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설계자의 안내 문장을 다시 읽었다. 직원이 없을 때도 경고를 남기고 다음 담당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전달'이란 기록에 사람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김하린 씨, 외부 신고 접수함이 현재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상태입니까?”
무전에서 답이 왔다. “네. 공공 안전 접수 시스템과 독립 연결돼 있습니다. 회의실의 자동 참석 규칙과 분리됐습니다.”
“그럼 1758의 미송신 건을 원본으로 보존하고, 위험 위치와 유형만 정식 신고 경로에 전달하도록 승인 절차를 진행해 주세요. 원본의 발신자는 그대로 미확인으로요.”
그녀는 필요한 담당자와 소방 기록 담당자가 입회했음을 확인했다.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 있는 음성 전체를 방송하지 않고, 구조에 필요한 위치와 현장 위험만 보내도록 했다.
화면의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나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사내 장애 때 수백 번 보던 카운트다운인데 이제 실패하면 사람을 다른 건물의 직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계였다.
[공공 안전 신고 원본 접수: 완료]
[자동 참석 기록: 미승인]
정확히 오전 여섯 시. 도원솔루션 건물의 외벽 시계가 두 번 깜박였다. 여섯 시 일 분이 되자 회의실 문이 잠시 열리는 듯한 화면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도 의자에 앉지 않았고, 아이에게도 호출이 전달되지 않았다.
“됐어요?” 민재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 이 자동 참석은 막았어. 그래도 끝난 건 아니야.”
바로 그때 환기실 안쪽에서 철판이 접히는 소리가 났다. 벽에 나타난 회색 계단이 사라지는 대신 옆으로 기울었다. 땅속을 지나가는 낯선 복도가 실제 정류소의 배관도를 밀어내고 있었다. 서윤이 즉시 위험 구역에서 사람들을 물렸다.
“정류소 설비실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현장 폐쇄 유지하세요.”
나는 기계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소방과 시설 담당자들은 외부에서 변형되는 구조를 확인하며 안전한 우회로를 통제했다. 여섯 시 일 분이 끝났지만 공간 중첩은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관리실 화면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제0 회의: 출석자 없음]
[위험 신고: 삭제하지 않음]
[실물 경계 동기화: 시작]
“이건 또 뭡니까?” 민재가 물었다.
“안전 신고를 살렸더니 경계가 자기 상태를 동기화하려는 건가 봐.”
우리는 물리적 위험과 출석 시스템의 문제를 따로 표시했다. 누군가 출석해 주면 자동 문이 안정된다는 유혹이 떠올랐지만, 그것이 확인된 해결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강제로 일터에 묶는 방법을 다시 선택할 수 없었다.
그때 도원솔루션 11층에서 연락이 왔다. 실제 민재와 닮은 존재, 스스로 '비상 호출 보조'라고 부르던 그가 무전기에 대고 직접 말을 걸었다.
“저는 여기 있어요. 그런데 건물 지도가 저를 둘로 그리고 있어요. 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나요?”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 존재의 위치를 묻고 실물 안내등 색을 확인했다. 그가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민재와 닮았지만 문장 끝에서 조금 다르게 흔들렸다.
“그러면 제 말도 녹음처럼 쓸 수 있겠네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 밤에 그를 대역이라고만 부르던 내 습관을 떠올렸다.
“당신 목소리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의 동의가 되진 않아요. 지금은 당신이 있는 장소를 안전하게 확인하는 데만 쓰겠습니다.”
그는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았다. 공간의 오류로 생겨났는지, 원래부터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도 당장 누군가의 책임을 대신 지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1758 외부 접수함에 새 항목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설비가 자동 감지한 신호가 아니었다.
[발신 방식: 수동 누름]
[발신 위치: 도원솔루션 바깥]
[성명: 기재하지 않음]
그리고 짧은 문자 하나가 붙었다.
‘경보는 전달됐나요? 그럼 이제 사람들부터 나가게 해 주세요.’
누군가 실제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제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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