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금융센터의 시설 당직자 정우찬은 내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세 분은 전부 무사합니다. 지난번 구조했던 분들 말씀하시는 거라면요.”
“이번엔 그 세 분이 아니에요. 서쪽 계단에 반 층이 생겼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계단에는 정수 층밖에 없습니다.”
“금융센터가 산수를 잘했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죠.”
그는 욕을 하려다 말고 시설팀 무전기를 켰다. 기계식 방화문 센서가 지하 1층과 지상 1층 사이에서 서로 다른 층수를 보고하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평범한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바닥의 지진 감지기에는 누군가 계단 중간에 오래 서 있는 것처럼 무게가 걸렸다.
“실물 확인할 때까지 서쪽 계단 통제하세요. 대피는 동쪽 실물 계단으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전화에 대고 말했다.
정우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서쪽 계단 안에서 사람이 두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버스 환승 통로의 공공 설비 담당자 김하린에게 현장을 인계하고 이동했다. 택시를 타려다 계기판에 ‘전 직원 복귀 차량’이라는 글자가 떠서 내렸다. 기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결국 정라희의 정비업체 승합차를 얻어 탔다. 그녀는 발목을 쉬게 해야 했으므로 운전은 다른 기사에게 부탁했다.
금융센터에 도착하자 서쪽 계단 앞에 붉은 통제선이 쳐져 있었다. 정우찬과 소방대가 현장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단으로 뛰어들지 않고 시설 도면과 실제 철제 난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부터 확인했다.
“지하 1층에서 열두 계단, 중간참, 다시 열두 계단입니다.” 정우찬이 말했다.
“지금은 몇 개예요?”
“카메라는 스물넷인데, 아래에서 세면 스물아홉 개입니다.”
나는 휴대용 줄자를 받아 바닥에 놓았다. 다섯 번째 추가 계단 앞에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외부 위험 신고자 확인 중]
[서명하면 이동 가능]
문서윤이 종이를 떼려다 멈췄다. “물리적으로 붙어 있어요.”
“회사 문서가 진짜 종이가 되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돼요.” 내가 말했다. “그 종이가 누구 서명인지 요구하면 더더욱.”
계단 위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래에 사람 있습니까? 저 여기 서 있습니다!”
“성함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치셨습니까?” 소방대원이 대답했다.
“다리는 괜찮아요. 그런데 제 앞의 계단이 계속 늘어나요. 내려가려고 돌아섰더니 아까 지나온 문이 없어졌어요!”
그녀는 금융센터 직원이 아니었다. 오전 교대 전 도시락을 배달하던 김소연이라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먼저 이름을 말했지만 구조를 위해 직원으로 등록할 의사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등에는 배달 가방이 있었고 두 손은 난간을 쥐고 있었다.
“가방은 놓으셔도 됩니다.” 구조대원이 말했다.
“거기 제 어머니가 싸 주신 반찬도 들어 있는데요.”
“어머님께 다시 부탁드려야겠네요. 지금은 몸이 먼저예요.”
그녀가 작게 웃었다. 웃음과 함께 난간 끝에 생긴 그림자가 길어졌다. 무게 센서 값은 두 사람으로 바뀌었다.
“한 분 더 있습니까?”
“아뇨. 저 혼자예요. 방금 제 옆으로 저처럼 도시락 가방을 멘 사람이 지나갔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역인지, 반사 영상인지, 실제 고립자가 더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일단 구조대에 ‘추가 인원 불명’이라고 전달했다. 서류에서 사람이 둘이라고 한다고 실제 두 명이라고 믿는 순간 다른 사람을 놓칠 수 있었다.
정우찬이 시설 비상 전원 회로를 보여 줬다. 서쪽 계단에는 독립 조명 한 줄과 인사 시스템에 연결된 출입 모듈이 따로 있었다. 계단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1758 원본 자료가 중앙 서버로 재전송되려던 순간과 일치했다.
“모듈을 끄면 조명도 꺼지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럼 눈으로 확인합시다. 시험 전환은 구조대와 담당자 승인 아래서만.”
현장팀은 일단 비상 손전등을 보강하고 조명 전원의 물리 경로를 확인했다. 출입 기록을 중앙으로 보내는 포트만 임시 격리하자 계단 종이의 글씨가 변했다.
[서명 확인 실패]
[실물 안전 통로 유지]
“드디어 정상적인 문장이 나왔네.” 민재가 말했다.
하지만 다섯 계단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난간을 살폈다. 배만식 소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단이 늘어난 게 아니라 중간참이 두 겹으로 접힌 것 같소. 위쪽 사람은 다른 높이에 서 있는 거고.”
정우찬은 건물 옆 외부 점검 통로의 수직 구조를 확인했다. 원래 금융센터에는 비상 설비 교체를 위한 낮은 점검 발판이 있었는데, 그 발판이 0층 경계와 겹치며 서쪽 계단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물리적으로 안전한지는 전문가가 확인해야 했다.
소방대는 외부 장비로 김소연에게 접근해 안전줄을 걸었다. 우리는 그들이 쓰는 출구 표기를 중앙 전산이 덮어쓰지 않도록 수동 표시를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 거꾸로 보이는 파란 화살표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참았다. 저 화살표는 퇴사자인 나에게만 보이는 안내였다. 배달 노동자가 안전하게 걸을 길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구조대원이 김소연의 발을 실제 금속 발판 위로 옮겼다. 그녀는 울면서도 도시락 가방에 손을 뻗었다.
“가방은 제 뒤에서 다른 대원이 가져갑니다.”
“그럼 밥은 안 버려도 되겠네요.”
“네. 점심값은 구조 대상 아닙니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주변에서 짧은 박수가 터졌다. 계단 안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형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메라에는 소연과 비슷한 모습이 한 박자 늦게 따라 나왔다. 독립 존재인지 저장된 영상인지 확인될 때까지 자동 제거 명령은 보류했다.
정우찬은 구출 직후 실제 계단 길이를 다시 측정했다. 수치는 여전히 스물아홉이었다. 구조가 끝났다고 현장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CCTV의 회색 형상이 누군가의 움직임을 재현하는지 검사하기 위해 카메라 저장장치를 분리 복제했고, 소방대는 서쪽 계단 폐쇄를 유지했다. 김소연은 연락받을 곳을 스스로 정해 가족에게 무사하다고 알렸다. 회사 시스템은 그녀의 배달 가방에 있는 물건까지 ‘인수 가능한 자산’으로 올려 놓았지만, 나는 그것을 구조 문서에서 제외하라고 요청했다. 도시락 여섯 개와 고장 난 계단 사이에 인사 결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금융센터 출입 장부에서는 소연을 ‘퇴사자 대체 등록 완료’로 표시하려 했다. 서윤이 물리 구조 기록과 전산 표시를 분리하자 장부의 글자가 튀었다.
[제0 위험 신고 전송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건 대상이 아니라 잘못된 수신처겠지.” 내가 말했다.
김하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환승 통로 수신함의 기계가 새 항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원본 메시지 목적지: 17개 건물이 아님]
[원본 메시지 목적지: 아직 건물 바깥에 있는 사람]
나는 김소연의 배달 가방을 돌아봤다. 그녀는 직원도, 관리인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도움을 청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1758이 기다린 것은 특정 이름이 아니라 누구라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통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화면 하단에는 여전히 이름 한 줄이 깜박였다.
[최종 수신인 후보: 서지완]
서윤은 상황판에 실제 구조 완료 한 명과 정체 미확인 영상 하나를 구분해 적었다. 두 값을 합치면 보고는 간단해지지만, 다음 구조대가 어떤 현장을 봐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나는 김소연의 가족 연락처를 직접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연락할 사람을 정했고, 따뜻한 물을 마신 뒤 안전 담당자의 귀가 안내를 받을 예정이었다.
미래 날짜 출근부에 적힌 신입 사원의 이름이었다.
제5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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