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가면 시스템이 남는다.”
회의실에서 온 문장을 다시 읽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무서운 유령은 퇴사한 직원이 아니다. 그 직원이 떠난 뒤에도 끝없이 도는 배치 작업이다. 나는 도원솔루션에서 7년을 일하면서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그렇다고 남은 배치 작업을 돌보기 위해 퇴사자를 죽도록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업무는 맡길 수 있어도 인생은 담보로 잡을 수 없다.
0층 회의실로 돌아가자 검은 셔츠와 양복을 입은 임현규가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앞에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커피가 아니라 검은 잉크가 담겨 있는 점만 빼면 평범한 경영진 회의 같았다.
“차도윤 씨.” 양복 임현규가 나를 불렀다. “퇴사 승인을 취소하면 일부 회로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제 퇴사를 취소하면요?”
“제0 경계 유지 인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임시 관리자 공백도 해결됩니다.”
“제가 남으면 시민들이 안전해진다는 증거는요?”
그는 서류 한 장을 보여 줬다. [차도윤 재직 전환 시 안전 확보율 100퍼센트 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상’이라는 글씨만 작았다. 서윤이 그걸 가리켰다.
“예측값이잖아요. 실물 비상구 확인과 무관합니다.”
검은 셔츠 임현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저 문장을 처음 봅니다. 회사는 누군가 남아야 유지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왜 하필 퇴사자인지는 설명되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이 누구의 진심인지 몰랐다. 동일한 얼굴의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논리를 펼쳤다. 그래도 둘 중 한 명을 즉시 원본으로 선언하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이야말로 시스템이 원하는 지름길일 수 있었다.
“안전 확보율 100퍼센트라는 숫자에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양복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른 제안을 원하십니까?”
“제안이 아니라 기록을 원합니다. 최초 변경 신청서와 실제 승인자의 구분.”
양복의 손목에서 종이테이프가 풀렸다. 테이프에는 인사 등록 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다. 검은 셔츠는 손목을 만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변경 신청서는 기술적 문서입니다.” 양복이 말했다. “승인 기록은 별도입니다.”
“좋아요. 그럼 둘 다 주세요. 개인정보는 빼고요.”
서윤은 양복 임현규에게 자신의 말이 기록되는 방식을 직접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화면에는 ‘설비 책임 인정’이라는 문장과 함께 [전 직원 인사 책임 인수]라는 별도 코드가 붙어 있었다. 양복은 같은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문장은 다르다. 첫 번째는 위험이 있을 때 설비를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근로계약을 대신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표를 반으로 나눠 각각에 해당하는 사람과 장비를 적었다. 사람의 이름은 해당자가 직접 확인한 경우에만 기재했다. 검은 셔츠 임현규도 자신의 진술 칸을 직접 확인했다. 양복에게는 결재 권한의 출처를 밝힐 공간을 남겼다.
“보통은 대표 둘 중 하나가 결재를 하면 끝인데.” 내가 말했다.
“여긴 대표 둘 다 근거를 대야 끝납니다.” 서윤이 대답했다.
탁자 아래 작은 서랍이 열렸다. 안에 낡은 파일 하나가 있었다. 파일의 표지는 ‘공동 운영 17개 건물 외부 안전 대기소 연계’였다. 다음 장에는 전산 이관 기록이 붙어 있었다.
원안: 구조 요청을 접수한 설비가 있는 한 비상 안내를 유지한다.
변경안: 신고자를 최종 조치 책임자에 임시 등재한다.
재변경: 최종 조치 책임자를 고용 관리자와 동기화한다.
세 단계 사이에는 최소 수년의 간격이 있었다. 원래는 설비 책임을 기록하던 항목이 사람을 고용하는 항목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변경에는 작성자 대신 공동 운영사 시스템 계정이 적혀 있었다.
“누가 그 계정을 조종했죠?” 서윤이 물었다.
양복이 말했다. “협의회 승인 절차가 있었습니다.”
“회의 참석자에 모두 동의 표시가 있나요?”
“원본 일부가 유실됐습니다.”
“그럼 승인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겠네요.”
검은 셔츠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내가 받은 건 설비 안전 연동 계약이었어요. 인사 관리자 동기화 문장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 증언은 적겠습니다. 다만 계약 원본과 대조해야 합니다.” 서윤은 진술 시간을 기록했다.
양복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마지막 제안을 꺼냈다. “차도윤의 퇴사 취소를 보류하는 대신, 외부 관찰자 000을 임시 담당자로…”
“안 됩니다.” 내가 말을 잘랐다.
“신고자 정보를 입력하지 않으면 시스템 오류가 발생합니다.”
“그건 시스템 오류입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죠.”
우리는 회의실 마이크를 끄는 대신 1758 장비의 실제 수신 기록을 가져왔다. 그 기록에는 위험 발생 시각과 설비 번호, 전달 성공 여부만 있었다. 신고자의 이름은 없었다. 신고 메시지 자체는 멀쩡히 처리됐고 인사 관리자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기록으로 안전 신호가 유지된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사람 이름 없이도 작동했어요.”
양복이 종이에 손가락을 올렸다. 문장이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기존 담당자 등록 불필요]
[설비 수신 확인과 인사 승인 분리 가능]
“가능하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나 공동 운영 연동이 유지되는 동안 재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양복이 답했다.
나는 그 말을 오히려 진전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그는 모든 문제의 답이 퇴사 취소라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기능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1758의 무기명 신고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다시 시험했다. 시설 담당자가 실제 위험이 아닌 점검 시험임을 명확히 표시한 신호를 보내자 수신 장부에는 [점검]과 도착 시각만 남았다. 양복 임현규는 그 신호를 회의 참석으로 바꾸지 못했다. 검은 셔츠는 무슨 생각인지 한참 수신기를 바라봤다.
“이렇게 간단했다면.” 그가 중얼거렸다.
“간단하지 않았죠. 실물 통신을 살리고 잘못된 결재 연동만 찾는 데 밤을 꼬박 썼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는 웃지 않았다. 그가 진짜 대표든 아니든 과거에 설비와 인사 기능을 혼합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시험 결과를 별도 책임 조사 기록에 첨부했다.
그때 회의실의 작은 접이식 의자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의자 밑의 나무판이 열렸다. 그 안에는 복잡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그림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건물 열일곱 개를 둘러싼 파란 선. 아이의 그림과 너무 비슷했다.
뒷면에는 오래된 글씨가 있었다.
‘구조 대기소는 출근부의 바깥에 둔다. 누구도 이 자리에 대신 앉히지 않는다.’
“이걸 누가 그렸습니까?” 내가 물었다.
두 임현규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는지, 시스템이 기억을 가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 가장자리에는 관리대장 번호가 있었다. 그 번호는 우리가 0층 기록실에서 찾은 최초 회의 초안의 부록과 이어졌다.
서윤이 내게 말했다. “원안을 만든 사람의 목적을 더 찾아볼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누가 목적을 바꿨는지도요.”
우리는 그림을 제자리에 두고 고화질 촬영본만 보존했다. 아이에게 보여 주겠다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림이 닮았다는 이유로 아이나 어머니를 설계자로 지정하는 일을 반복하면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었다.
회의실의 마이크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설계 변경 이의 신청 접수]
[접수 경로: 1758]
[이의자 이름: 공란]
나는 공란을 보며 작게 웃었다. 사람 이름 없이도 이의 신청은 도착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화면 아래의 작은 문구는 마음에 걸렸다.
[원본 변경 심의는 제0 설계 참석 기록의 누락된 열여덟 번째 항목이 확인될 때 재개됩니다.]
그 열여덟 번째 항목이 사람인지, 설비인지, 단지 비어 있어야 할 자리인지 우리는 아직 몰랐다.
제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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