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층 기록실의 진짜 입구는 회의실 바로 옆에 있었다. 다만 벽에 겹쳐 나타나는 길을 따라가면 병원 응급실로 연결된다는 경고가 있었다. 나는 배만식 소장의 실물 도면을 택했다. 설비 통로에서 수동 문을 찾아, 구조대가 확인한 난간과 바닥만 밟아 움직였다.
“제가 일곱 해 동안 여기 있었는데 이런 방은 처음 봅니다.”
“그 일곱 해 중 환기구 안까지 들어온 적은 몇 번이오?” 소장이 물었다.
“영이요.”
“그러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넓고, 인프라 담당자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좁았다.
방의 습도는 지나치게 낮았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곰팡이 대신 가루처럼 마른 검은 점이 붙어 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만지려 하자 배 소장이 장갑 낀 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새로 나타난 물질인 데다가 어느 건물에서 넘어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나는 원본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환경 조건을 기록하고 원본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일부터 할 수 있었다.
기록실은 열일곱 건물의 도면을 억지로 한 방에 모은 것처럼 보였지만, 선반의 바깥 표지에는 각 건물의 실제 설비 관리번호가 달려 있었다. 서윤은 번호가 진짜 발급된 것인지 해당 시설팀에 하나씩 확인을 요청했다. 나중에 누군가 이 방의 원본을 가져갔다고 주장해도, 사진 속 위치와 번호를 대조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기록실의 오래된 선반에는 다른 건물의 표식이 붙은 릴 테이프와 도면통이 있었다. 그중 ‘제0 경계 비상 퇴로 모의 훈련’이라는 녹음 상자가 눈에 띄었다. 장비는 정전 대비용 수동 발전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새로 전력을 넣지 않아도 손잡이를 돌리면 재생할 수 있는 기계였다.
남기석이 상자 외부의 관리번호를 확인하고 시설 담당자의 허락을 받았다. 개인정보가 실려 있을 수 있어 헤드폰으로 먼저 내용을 검토했다. 나는 소리 대신 남기석의 표정만 봤다. 처음엔 굳어 있다가, 서서히 의아해졌다.
“원하시면 공개 가능한 안전 지침 부분만 들려드릴게요.” 그가 말했다.
그는 작은 스피커의 볼륨을 낮췄다. 잡음 사이로 오래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1758 경고선 시험 구간. 비상 신고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신호는 출근 확인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목소리가 물었다.
“그럼 누가 책임을 집니까?”
“설비 담당 부서가 위험을 접수합니다. 신고자 개인에게 업무를 전가하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당연한 원칙인가. 밤새 우리는 그 당연한 말을 다시 만들어 내느라 건물 사이를 뛰어다녔다.
녹음은 계속됐다.
“퇴로가 확보되지 않은 경우 작업 종료는 선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의 근무 여부와 공간의 안전 상태는 별개입니다. 사람은 퇴근할 수 있고 시설 위험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소리가 찢어졌다. 다음 문장은 다른 날짜의 녹음이었다. 누군가 ‘작업 종료’를 ‘근로자 퇴사’로, ‘비상 대기’를 ‘재직 유지’로 바꿔 읽는 시범 음성. 익숙한 기계음이었다. 현장에 떠오르던 안내 문구와 비슷했다.
“같은 테이프예요?” 내가 물었다.
“상자 하나에 두 시기의 녹음을 이어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 남기석이 답했다. “실물 접합 흔적은 봤지만 편집한 사람은 모릅니다.”
서윤이 현장 기록을 펼쳤다. 서로 다른 시기를 같은 원본으로 믿으면 안 된다. 우리는 테이프의 공개 문구만 별도 표시하고 원본 상자를 중립 보관 구역에 되돌려 놓았다.
곁에 있던 작은 벽면 키패드에는 ‘작업 종료’라는 버튼이 있었다. 버튼 아래 더 작은 글씨로 ‘설비 안전 상태 기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손을 올리자 키패드 화면에 갑자기 다른 단어가 나타났다.
[전 직원 퇴사 종료]
“또 번역기가 사고를 쳤군.” 배 소장이 혀를 찼다.
그러나 단순한 번역 오류는 아니었다. 그 옆에 별도 연결된 초록색 전선은 도원 인사 시스템 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 물리적인 장치에 새로운 케이블을 덧대어 실제 퇴사 처리를 시도한 것이다.
우리는 전선을 뽑지 않았다. 전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끊으면 병원 통신이나 제0 경고까지 함께 죽을 수 있었다. 배 소장이 케이블을 추적하고 서윤이 안전 담당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몇 분 뒤 시설 서버에서 ‘인사 출석 연동선’의 별도 포트만 차단할 수 있다는 답이 왔다.
차단을 준비하는 동안 회의실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작업 종료 승인 바랍니다.” 검은 셔츠 임현규의 목소리였다. 곧바로 양복 임현규의 목소리가 겹쳤다. “전 직원 퇴사 승인 바랍니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뜻으로 반복되는 걸 듣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것이 두 임현규 중 누가 진짜인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누가 말을 해도 잘못된 시스템이 그 말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원본 문서와 변경 케이블을 촬영하세요.” 나는 말했다. “둘을 분리해서 책임을 찾아야 합니다.”
서윤은 내게 수동 차단 작업의 체크리스트를 건넸다. ‘현장 조명 유지, 병원 긴급 회선 유지, 1758 위험 신고 유지, 인사 출석 연동만 비활성.’ 나는 하나씩 소리 내 읽었다. 설비 담당자의 확인이 끝난 뒤에야 차단 신호가 내려갔다.
벽에 떠 있던 출석부 글씨가 잠깐 흔들렸다. 전 직원 숫자는 변하지 않았고,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는 일도 없었다. 대신 ‘작업 종료’를 누르려던 키패드의 인사 연결 표시만 꺼졌다.
“성공입니까?” 남기석이 물었다.
“한 선을 끊었을 뿐이에요.” 내가 답했다. “안전한 종료는 아직 아닙니다.”
차단 직후 병원 시설팀에서 시험 결과가 들어왔다. 세림병원의 실제 비상 호출기는 정상으로 울렸고, 고선희 씨가 보관 중인 개인 청소도구 목록도 퇴사 처리되지 않았다. 그가 오늘 밤 처음으로 자신의 도구를 들고 안심하고 퇴근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서윤은 그 소식을 내게 전했고, 나는 오래된 키패드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사소한 연결 하나가 잘못되면 사람의 직업과 목숨까지 흔들린다. 반대로 정확히 한 선을 분리하는 조치로 누군가는 오늘 집에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쓴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그럼 다음 선도 자릅시다.” 내가 말했다.
“계통도부터 보세요.” 배 소장이 즉시 대답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개발자가 선부터 자르려 하면 혼내 주세요.”
그때 테이프 상자 밑에서 작은 메모가 발견됐다. 젖어 바랜 종이에 연필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1758 신고는 어느 건물의 회의 결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 붉은 글씨가 한 줄 추가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이것을 반대로 만들었다.’
그 말이 누구의 것이든, 위험을 신고하는 사람을 관리자로 만든 사고는 우연히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메모를 집지 않고 현장 번호와 함께 촬영했다. 원본 추적을 맡길 때까지 이 손글씨도 보호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기계의 바늘을 처음 위치로 돌려놓았다. 스피커에서 아주 짧은 문장이 더 흘러나왔다.
“열일곱 곳 중 하나라도 퇴로가 막히면, 회의는 끝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문서윤을 바라봤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안전 경계가 열네 곳이었다. 0층의 비밀을 파헤치는 동안에도 다른 곳의 실제 사람이 위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가 회의실을 설계했는지보다 먼저, 그 사람들에게 길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제4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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