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완은 내일 출근부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조정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기 전에 민재에게 아이가 보이지 않는 자리가 어딘지 물었다. 아이는 옆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방음문이 닫혀 있었고, 한서림이 침낭과 물을 챙겨 두었다. 사건의 중요한 단서라고 해서 아이가 모든 회의에 참석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저한테 문제가 생긴 건가요?” 지완이 먼저 물었다.
“문제가 생긴 건 이 출근부예요. 당신이 아니라.”
그녀는 잠시 내 표정을 살폈다. 내 말을 믿기 어려운 것도 이해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프라 엔지니어였고 그녀는 신입 입사 예정자였다. 지금 우리는 새벽 한 시가 넘은 조정실에서 내일 날짜 종이를 앞에 두고 있었다.
“이 종이를 제가 가져온 건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누구 대신 회의에 간다고 한 적은 없어요.”
“그 사실을 기록해도 됩니까?”
“네. 다만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어떤 기억은 다음날 출근길 같고, 어떤 건 오늘 밤 일이에요.”
나는 일부러 미래에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이미 메일 하나가 ‘내일의 차도윤’ 명의로 보내졌지만, 예약 생성 시각은 어제였다. 표지에 쓰인 날짜가 곧 사람의 여행 기록이 되는 건 아니었다.
서지완은 처음 도원에 입사 지원한 이유를 짧게 말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셔서 출퇴근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았고, 도원의 채용 공고에는 야근을 줄이겠다는 약속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잠깐 웃고 말았다. 일곱 해 동안 그 약속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 문구를 믿은 제가 바보였나요?” 지완이 물었다.
“아니요. 약속한 쪽이 지켜야 하는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에 어떤 위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미래의 직원이라는 표시만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일하는 사람이기 전에 오늘 밤 무서운 곳에 혼자 와 버린 사람이었다.
지완은 종이를 탁자에 펼쳤다. 첫 장에는 자신의 이름과 내일 오전 아홉 시의 첫 출근 안내가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도원솔루션의 야간 안전회의 참석 표가 있었다. 그 표의 한 칸에 [참석자 000]이 적혀 있었다.
“제가 이 페이지를 넘긴 적이 없는데요.” 지완이 말했다.
“누군가 출근부를 회의 참석 명부로 연결했나 봅니다.” 서윤이 대답했다. “원본은 당신이 보관하고, 공개해도 되는 항목만 따로 확인할게요.”
지완은 빈 서명란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 아래 작게 ‘미서명 상태는 임시 찬성으로 처리’라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7년간 만들어 온 배치 프로그램에도 기본값은 있었지만, 사람의 의사에 기본 찬성을 넣은 적은 없었다.
“무시하면 자동 찬성이래요.” 지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문구가 그렇게 주장하는 거지, 실제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서명하지 않은 채 출근부를 비닐 파일에 넣었다. 서윤은 별도 종이에 [본인은 대리 참석·대리 서명·제3자 지정에 동의하지 않았음]이라고 써서 지완에게 읽어 줬다. 지완은 표현이 마음에 드는지 확인하고 자필로 서명했다. 이 서명은 그녀의 부인 의사를 남기기 위한 것이지 출근부의 하단 칸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입사 안내 메일과 출근부 날짜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메일에는 발송 시각과 수신 시각이 정상 순서로 적혀 있었다. 출근부의 잉크만 일부 거꾸로 번지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어젯밤 받은 미래 발신 메일처럼 단순한 예약 송신으로 설명되는 부분과,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한데 섞여 있었다.
“내일의 제가 과거로 와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결론 낼 자료는 없어요. 지금 여기서 선택하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히 당신이라는 것만 알죠.”
서윤은 지완에게 시계를 하나 건넸다. 조정실 안의 실제 시각과 출근부의 시간표를 따로 기록하자는 제안이었다. 지완은 그제야 종이를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그때 지완의 그림자가 형광등 반대 방향으로 길게 늘어났다. 소문처럼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빛이 어디서 오는지 먼저 봤다. 벽면의 꺼진 모니터 뒤쪽에서 밝지 않은 청색 화살표가 투사되고 있었다. 그 빛이 그림자를 이중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게 전부 광학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지완이 물었다.
“전부는 아니에요. 일단 오늘 눈에 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설명할 수 있다는 거죠.”
서윤이 모니터 전원을 안전하게 분리하자 두 번째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러나 지완이 종이봉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벽의 날짜가 다시 내일로 변했다. 설명되지 않는 현상은 여전히 있었다. 우리는 그걸 억지로 결론짓지 않았다.
민재가 무전으로 말했다. “형, 조정실 문이 다른 층으로 연결되려고 해요. 화면 속에 회의실 의자가 보여요.”
나는 문을 열어 실물 복도를 확인했다. 복도 끝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소방 계단이 있었지만, 가까운 벽면에는 회색 정장들이 지나가는 영상이 겹쳐졌다. 서윤은 노란 테이프로 실물 계단의 방향을 표시했다. 두 곳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지완은 출근부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제가 문을 닫을까요?”
“아니요. 닫는 건 시설 담당자가 할 거예요. 당신은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그래도 제가 가진 출근부 때문에 그런 거라면…”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종이 때문에 사람이 죄인이 되진 않아요.”
우리는 회의실 영상이 나타나는 구간의 조명을 조절하고, 실물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는지 점검했다. 배 소장이 무전으로 수동 차단 상태를 확인해 주었다. 문은 잠시 진동하더니 더 이상 회의실 의자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때 지완의 출근부에서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처음 보는 얇은 시간표였다. 내가 허락을 구하자 지완이 손잡이 쪽을 쥐고 내용을 보여 줬다.
[제0 회의 자동 배포 일시: 오전 6시 1분]
[배포 대상: 내일 출근 예정자 전원]
[출석 대리자: 미정]
[원본 편집 위치: 0층 구내 기록실]
“내일 출근 예정자 전원이라면.” 내가 말했다. “도원뿐 아니라 다른 건물의 사람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서윤이 답했다. “배포 명단이 회사마다 나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지완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저는 내일 회사에 가기로 한 건 맞아요. 그래도 오늘 제가 모르는 회의에 참석한 건 아니에요.”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출근 여부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연차를 써야 할 것 같네요.”
“이런 회사면 연차보다 회사 평가가 먼저입니다.”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시간표의 구내 기록실 위치를 찾았고, 시설도에는 해당 공간이 이미 폐쇄된 통신실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방은 제0 회의실과 같은 선상에 있었다.
서윤이 말했다. “6시 1분 전에 자동 배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누가 대신 동의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안 됩니다.”
지완은 자신이 보관할 종이를 다시 접었다. 뒷면에 새로운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부인 의사 확인]
[그러나 출근 예정자 수가 아직 부족합니다]
“몇 명이 부족한데요?” 지완이 말했다.
숫자는 표시되지 않았다. 대신 조정실의 빈 의자 하나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왔다. 나는 의자와 출근부 사이에 섰다. 사람을 숫자로 채우는 회의라면, 오늘은 정족수부터 깨 버릴 생각이었다.
제4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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