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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43화
PAYLUA ORIGINAL · 제43화

결석자를 소환하는 회사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777자

오프라인 책장
조정실로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남의 회의에 다녀오고 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전날까지는 회의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귀찮기만 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신체가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출석 체크의 진화 방향이 아주 잘못됐다. 강민재가 세 번째 신호에 전화를 받았다. “형? 아이는 자고 있어요. 저희가 밤새 화면을 안 보여 줬는데도 출입문에 알림이 떴어요.” “무슨 알림?” “[외부 관찰자 000, 제0 회의 대리 출석 준비.] 그래서 조정실의 화면선을 뽑았습니다. 근데 문틈에 종이가 끼어 있더라고요.” “종이는 만지지 말고 표지만 찍어.” 사진에는 옛 회의실의 작은 접이식 의자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 이름 칸이 비어 있었다. 아이의 팔찌 숫자 000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당시 조정실의 단말 번호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아이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할 근거는 없었다. “서지완 씨는?” “아직 여기 있어요. 내일 출근부를 봉투에 넣고 본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보여 드리겠다고는 하는데, 원본은 안 뺏었어요.” “잘했어. 아이는 계속 쉬게 해. 어떤 서류에도 아이 손대게 하지 말고.” 나는 회의실 문 앞에서 무전을 끊었다. 서윤이 점검표에 [원격 대리 출석 신청: 당사자 의사 없음]을 적었다. 그렇다고 신청서 자체를 찢지는 않았다. 누가 자동 처리를 걸었는지 추적할 증거였다. 민재는 더 걱정스러운 얘기를 전했다. 조정실 문에 붙은 종이는 누구도 만지지 않았는데 밤새 세 번 바뀌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대기], 두 번째는 [출석 준비], 마지막은 [보호자 승인 요청]이었다. 나는 그중 마지막 문구가 가장 싫었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누구의 의사를 대신 수집하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호자를 찾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민재가 물었다. “아이의 보호는 실제로 필요해. 그렇지만 지금의 자동 회의 문구로 보호자를 정하면 안 돼.” 우리는 실제 아동 보호 절차를 별도로 확인하고, 아이가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현장 담당자와 연계했다. 서류에 빈칸이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회의실까지 데려오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회의실 안으로 돌아갔을 때 열일곱 의자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아까는 부채꼴로 배치됐는데 이번엔 길게 두 줄이었다. 한쪽 끝에 대표이사 명패가, 맞은편에는 집행관리자 명패가 놓여 있었다. “임현규가 둘이면 대표 자리에 누가 앉죠?” 내가 물었다. “지금은 둘 다 안 앉히는 게 낫겠습니다.” 서윤이 말했다. 말이 끝나자 화면 속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명은 낡은 검은 셔츠를 입은 임현규, 다른 한 명은 윤이 나는 양복에 ‘집행관리자’ 표지를 붙인 사람이었다. 둘 다 내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저 회의록은 내가 승인한 게 아닙니다.” 검은 셔츠가 먼저 말했다. “나는 승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양복이 말했다. “그러므로 결재 가능한 대표로 간주됩니다.” “그 결론이 문제입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사람을 대표하는 건 다르잖아요.” 양복이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대리 출석 지정권자 변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윤이 읽자 서류의 수신처가 또 바뀌었다. [1순위: 퇴사자 차도윤] [2순위: 내일 입사 예정자 서지완] [3순위: 외부 관찰자 000] 우리가 피할 때마다 가장 나중에 보호해야 할 사람에게 책임이 넘어가고 있었다. 시스템은 의자를 비워 두는 걸 오류로 취급하는 모양이었다. “세 자리 모두 미확정입니다.” 서윤이 말했다. “대리 출석에 대해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 공석이 길어지면 병합 진행이 지연됩니다.” 양복이 답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지연되어야 합니다.” 나는 말했다. 의자 아래에서 돌돌 말린 검은 종이들이 기어 나왔다. 각기 ‘참석 위임장’을 문 뒤로 운반하려 했다. 배 소장은 종이를 밟지 않고 바닥의 공기 흐름을 바꿨다. 종이들이 모이자 투명 창고에 넣어 봉했다. 종이가 생명인지 출력물인지 알 수 없어도 남에게 달라붙지 않게 하는 방법은 있었다. 검은 셔츠의 임현규는 어느새 회의실 시계 앞에 서 있었다. “그때는 이 공간이 직원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때가 언제죠?” “도원이 이전하기 전입니다. 아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도면에는 외부 대기 구역만 있었어요.” 그가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기록했다. 양복 임현규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얼굴이 흐려졌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원설계와 변경설계의 책임자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양복이 말했다. “동의합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양복이 무언가 기록하려 하자 바로 덧붙였다. “방금 말한 문장의 논리에만 동의한 거고, 업무 결재는 아닙니다.” 서윤이 웃음을 참았다. 이 회사에서는 문장마다 주석을 달아야 살 수 있었다. 의자 열일곱 개 뒤 벽에 비상문 그림이 나타났다. 문 그림 하나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려앉은 그림 밑에는 실제 손잡이가 없었다. 하지만 바깥의 직원 한 명이 화장실에서 나가려다 그 가짜 문으로 넘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우리는 회의실을 더 조사하는 대신 현장 경고부터 보냈다. 민재는 도원 18층의 복도에 노란 안전선을 치고 현장 시설 직원에게 실제 방화문 위치를 다시 알렸다. 회의실에서 나온 표지가 도원 건물 어디에나 겹쳐질 수 있었다. 서윤이 출석부 전산의 보류 시간을 확인했다. [대리 참석 요청 처리 예정: 오전 6시 1분] [현장 대리 지정: 아직 없음] 현재 시각은 새벽 한 시를 넘긴 뒤였다. 아직 다섯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회의실 문을 부숴 버릴 수는 없었다. 우리가 들어온 실제 안전 발판도 함께 무너질지 몰랐다. “원본을 가져가면 연동 규칙을 떼어 낼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남기석은 고개를 저었다. “원본이 아니라 변경표를 찾아야 합니다. 종이 초안은 명분이고, 지금 사람을 끌어오는 건 후대의 자동 배포니까요.” 회의실 천장에는 낡은 프로젝터 세 대가 있었다. 그중 하나만 돌아가고 있었는데 렌즈 앞을 종이 조각이 지날 때마다 사람 얼굴이 겹쳤다. 배 소장은 렌즈 자체를 가리기보다 투사를 받는 벽에 안전 막을 세웠다. 광원을 잘못 건드리면 연결된 다른 방에서 어떤 표시가 사라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조치로 의자 옆 그림자가 분리됐다. 아까 검은 셔츠 임현규가 앉았던 자리에 있던 흐릿한 형체도 한 번 더 드러났다. 그 형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의자가 밀리지 않게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진짜 임현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앉았는지보다, 의자가 사람을 끌어당기지 않는지가 중요했다. 그 순간 회의실 의자 끝에 작은 영수증이 한 장 나타났다. [대리 참석 요청자: 내일 출근부] [요청 생성 주체: 서지완 아님] [기준 날짜: 2026-11-01] 나는 영수증을 들여다보다가 창백해졌다. 사람의 이름도, 부서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일의 출근부 자체를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서지완 씨에게 먼저 설명해야겠어요.” 서윤이 말했다. “맞아요.”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분이 모르는 사이 참석자가 돼 버리기 전에요.” 회의실 안에서 양복 임현규가 우리를 불렀다. “관리자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문턱에서 돌아보았다. “아니요. 관리자의 권한부터 누가 만들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문이 서서히 닫혔다. 문을 잠그려는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문 밖의 내 이름이 ‘출석’에서 ‘방문’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작은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내 퇴사 뒤 첫 회의는 나를 붙잡아 두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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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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