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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회의록의 첫 번째 원칙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874자

오프라인 책장
회의실 문은 우리가 밀어서 열린 게 아니었다. 누군가 안쪽에서 걸쇠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배만식 소장이 안전줄을 한 번 당겼다. 끊어지지 않았고 고정점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이 먼저 발판에 무게를 실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순서를 정해 들어갔다. 내가 처음 본 건 의자였다. 흰 사각 테이블을 중심으로 의자가 열일곱 개 있었다. 그리고 창문 아래에 놓인 작은 접이식 의자 하나. 모두 합하면 열여덟 개였다.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벽 시계의 분침은 5시 58분에 멈춘 상태였고, 초침만 자꾸 여섯 시 1분으로 건너뛰려 했다. “본격적으로 회의가 싫어지는 구조네요.” 내가 중얼거렸다. “시간은 건드리지 마세요.” 서윤이 말했다. “실제 시계 아니에요.” 탁자 한가운데 녹슨 회의용 마이크가 있었다. 금속 몸체에 무늬가 없어 보였는데 손전등을 비추자 잔글씨가 올라왔다. [안건 0: 외부 위험 신고를 수신한 사람을 관리자에 등록할 것인가] [원안: 등록하지 않는다] [결정: 확인 불가] 나는 말을 잃었다. 우리가 밤새 막으려던 기능이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시스템은 지나가는 시민과 구조자를 관리자로 만들려고 할까. “그게 원본인지 단정하지 맙시다.” 남기석이 말했다. “여긴 화면이 문장까지 흉내 내는 곳입니다.” 서윤은 탁자 아래의 종이함을 확인했다. 봉인표의 제조연도가 오래됐고, 손으로 새긴 번호가 있었다. 반대로 벽면에 표시된 전자 장부에는 작성 시각이 자정 이후로 찍혀 있었다. 실제 종이와 전산 화면이 같은 출처라고 볼 근거는 없었다. “봉인한 사람의 허락은요?” 내가 물었다. “시설 보관 원본입니다. 개인정보가 있으면 가리고, 공개 가능한 설계 목적만 확인하겠습니다.” 서윤은 기계실 점검 담당자와 영상으로 연결했다. 봉인을 훼손하지 않고 밖의 표지만 촬영했다. 함의 윗면에는 오래된 시설관리대장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문이 다시 닫힐 듯 떨렸다. 천장에서 종이 조각이 떨어졌다. 조각마다 도원 직원들의 사번이 인쇄되어 있었다. 다른 건물의 환자 번호와 경비 출입증 번호까지 섞여 있었다. 내가 조각 한 장을 보자 [참석 의사: 동의]라는 말이 깜박였다. “이건 투표용지가 아니야.”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번호를 떨어뜨린다고 사람이 회의에 오는 게 아니니까.” 배 소장이 낙하하는 종이를 투명 보호막으로 가리고 환기 스위치를 수동으로 잠갔다. 종이 조각이 둥둥 떠다니다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의 번호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회의실에 남겼다면 그것도 위험이었다. 나는 촬영 영상에 번호가 보이지 않도록 보관 구역을 지정했다. 나는 벽에 붙은 오래된 화재 대피도를 살펴보았다. 대피도 속 사람들은 건물 이름 대신 서로 다른 색의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점 사이에 선 하나가 굵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 선은 회의실 안을 지나지 않고 복도의 바깥을 감돌았다. 문서윤은 시설 도면과 비교해 선의 끝이 실제 외부 계단 방향임을 확인했다. “그럼 회의실에서 사람을 모으는 게 아니라, 모이지 않아도 나갈 수 있게 만든 설계일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서윤은 대답을 유보했다. 도면에 색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실제 설계 의도를 확정할 순 없었다. 그래도 나가는 길을 의자 수보다 먼저 그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의자 열일곱 개에는 각기 다른 건물 이름이 한때 붙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림병원, 성하금융센터, 도원솔루션. 나머지 이름은 닳아서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작은 접이식 의자에는 건물명 대신 ‘외부’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열여덟 번째 출구일까요?” 서윤이 물었다. “같은 번호라는 이유로 연결하면 위험합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제0 경계가 외부 신고를 보존하는 자리였다는 추정과는 맞아요.” 남기석이 책상 아래에서 종이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가 봉인된 건 아니었지만 접수 표시가 없었다. 겉면에 보관 목적만 적혀 있었다. ‘제0 경계 첫 설계 회의의 공개 배포용 초안.’ 회의록 원본이나 참석자 명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안에는 세 줄의 기본 원칙이 있었다. 첫째, 직원 여부와 무관하게 위험을 알릴 수 있을 것. 둘째, 신고를 한 사람에게 임의로 책임이나 고용을 부여하지 않을 것. 셋째, 안전하게 떠날 길은 건물 안의 어떤 관리자가 없어도 유지될 것. “누가 이런 걸 만들고는 지금처럼 망쳤죠?” 내가 말했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변경 기록부터 찾아야 해요.” 서윤은 초안 끝을 가리켰다. “여기 도장을 보세요. 배포 전 재검토.” 재검토 도장 위에 다른 색 먹으로 ‘출석부 모듈과 연동 검토’라는 주석이 있었다. 주석의 연도는 도원솔루션이 현재 건물로 이전한 해보다 늦었다. 누군가 공공 안전 계획을 회사의 인사 프로그램과 합친 흔적이었다. 그때 의자 하나가 뒤로 밀렸다. 우리가 손대지 않은 세림병원 자리였다. 의자 위에 반투명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허리에 병원 직원증을 달고 있었지만 얼굴이 흐릿했다. “저는 결재하러 온 적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 물러났다. “그 말을 기록해도 됩니까?” “그냥 제가 없었다는 것만.” 서윤은 개인 이름이나 얼굴을 남기지 않은 채 ‘해당 자리의 대리 출석 부인’이라고 적었다. 반투명한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의 그림자만 남고 몸은 흐려졌다.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옆 벽의 투명한 칸에 잠깐 쉼표 하나가 새겨졌을 뿐이었다. 마이크가 켜졌다. [출석 확인: 1명] [결재 대리: 불가] [회의 진행 보류] “한 명이 출석했다면서 왜 보류죠?” 배 소장이 물었다. “출석은 곧 동의가 아니니까요.” 서윤이 답했다. 우리는 초안을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 점검했다. 문 옆 보관함에서 스캔본을 생성할 수 있었지만 ‘전체 참석자 번호 첨부’ 옵션이 기본 선택되어 있었다. 나는 그 옵션을 해제하고, 공개 원칙 세 줄만 별도 촬영했다. 기계는 몇 차례 오류음을 냈지만 사람 이름을 빼고도 문서가 저장되는 걸 막지는 못했다. 배 소장이 한쪽 콘센트에 시험기를 꽂아 봤다. 회의실의 전원은 도원 건물 회로 하나로 설명되지 않았다. 잠깐 병원 냉각실 전압이 잡혔다가, 다음엔 집하장에 설치한 무정전 전원 장치 신호가 떴다. 그는 더 측정하지 않고 플러그를 뽑았다. 전압 표시가 사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선을 만지다 누군가의 장비를 꺼뜨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여기서 대체 뭘 설계했든, 지금은 다른 건물에 직접 영향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초안에 붙은 배포 주석을 다시 봤다. 안전을 위해 여러 장소를 연결했지만, 후대의 연결이 안전을 잡아먹고 있었다. 처음 목표와 지금 기능을 반드시 구별해야 했다. 마침내 시계 아래에 숨은 액자가 열렸다. 안에는 손으로 쓴 제목만 남은 종이가 있었다. ‘회의에서 가장 먼저 보호할 사람: 회의에 오지 않은 사람.’ 나는 그 문구가 좋았다. 단 하나, 제목 아래 빈칸이 너무 많다는 점을 빼면. 빈칸에는 잉크로 쓰인 이름이 아니라 전산 수정 흔적이 옅게 남아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려다 지웠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정 기록에 낯익은 문구가 떠올랐다. [대리 참석 지정 대상: 외부 관찰자 000] [현재 위치: 도원솔루션 조정실] [요청 시각: 내일 오전 6시 1분] 나는 바로 서윤을 봤다. 아이는 지금 잠들어 있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고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저 요청을 먼저 차단해야겠습니다.” “아이를 여기 데려오진 않을 거예요.” 서윤이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록의 빈칸에 누가 앉을 것인가보다, 그 빈칸이 왜 어린아이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먼저였다. 나는 방문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서 아주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이크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빈 회의실은 아직 다음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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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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