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솔루션에 돌아온 건 퇴사 승인을 받은 지 여섯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정확한 시간은 내 휴대전화와 옥상 관측용 시계가 서로 다르게 주장했으므로, 이 표현에도 오차가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 내 발걸음이 자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정문으로 들어가요.” 문서윤이 말했다.
“퇴사자는 정문 출입증이 정지됐을 텐데.”
“시설팀 임시 방문 명부가 있어요. 현장 안전 점검으로 기록할 겁니다. 취업 승인 아닙니다.”
나는 명부를 읽고 목적과 종료 시각이 비어 있는지 확인했다. 종료 시각은 ‘점검 종료 후 본인 퇴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회사가 출입증 하나 가지고 사람 인생을 다시 채용하는 걸 몇 번이나 봤더라. 손가락으로 해당 문장을 짚고 서명했다. 서윤은 내 신발 밑에 들러붙은 회색 글씨부터 떼어 냈다.
“[휴직 종료, 업무 복귀]라니.” 나는 혀를 찼다. “제 인사평가보다 고집이 세네요.”
배만식 소장은 지하 기계실의 실제 구조도를 펼쳐 두고 있었다. 평면도에 0층은 없었다. 대신 1층 승강기 후면과 지하 방화 계단 사이에 오래된 설비 점검 통로가 있었다. 원래는 환기 덕트를 교체할 때 쓰는 좁은 공간이었다.
“오늘 밤 저기서 문짝이 나왔소.” 배 소장이 연필로 벽에 점을 찍었다. “근데 문 너머가 회의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불 끄면 벽이 없어지고, 다시 켜면 콘크리트가 돌아와.”
“그럼 불을 끄지 않습니다.” 서윤이 말했다.
“맞아. 손전등 두 개, 유선 무전, 돌아갈 길에 표식. 바닥부터 확인해.”
우리 뒤에는 남기석이 왔다. 그는 예전 시험 문서의 보관 구역 번호만 알고 있었다. 문을 열 권한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정직함이 요즘엔 귀했다.
0층을 향한 복도는 1층의 구두 소리와 지하의 냉각기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이상한 장소였다. 세 번째 계단참에서 사각형 빛이 벽 위로 떠올랐다.
[도원솔루션 제0 회의실]
[회의 목적: 최초 설계 검토]
[참석 인원: 318명]
[결석자 자동 대리 참석: 승인 대기]
“318명이 다 들어갈 회의실이면 여의도 회의장도 빌려야겠네.”
“숫자보다 대리 참석이 문제죠.” 서윤은 빛을 찍되 얼굴은 찍지 않았다. “앞서 우리가 확인한 사람 수를 회의 정족수로 복사하고 있어요.”
우리는 누구의 대리 참석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파란 출구 표시를 볼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 화살표를 따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만 보이는 길이었다. 소장과 서윤을 두고 건너가면 돌아오는 법을 모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문이 나타난 쪽에 구조용 삼각대를 세우고, 돌아갈 계단의 문을 두 사람 이상이 번갈아 확인하기로 했다. 첫 확인에선 왼쪽에 있던 소방 표지가 두 번째 확인에선 오른쪽 벽에 붙어 있었다. 표지가 움직인 건지, 다른 장소가 겹쳐진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배 소장은 표지를 증거로 사진만 남기고 실제 난간의 볼트 위치에 흰 분필로 번호를 매겼다. 그림이 아니라 실물을 다시 찾기 위한 표시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남기석이 물었다.
“오늘 한 명이라도 계단 대신 벽으로 들어가면 누가 책임집니까.” 소장이 대답했다.
그가 평생 시설을 다뤄 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나는 모니터에 표시되는 파란 비상구가 보였지만 지금은 그 화살표가 오히려 미끼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남들이 못 보는 길을 본다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남들이 밟을 수 있는 바닥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한 능력이었다.
설비 도면에 따라 실제 바닥을 두드려 가자, 발밑이 울리는 구간이 나타났다. 배 소장이 작은 쇠추를 구멍에 내려 깊이를 재었다. 아래는 적어도 두 층 높이만큼 비어 있었다. 벽에 그려진 ‘회의실’ 표지를 따라 한 걸음만 더 내디뎠다면 낭떠러지였다.
“누군가 회의실로 들어오길 원하는군요.” 남기석이 말했다.
“들어오라는 안내와 들어갈 수 있는 바닥은 별개입니다.” 내가 답했다.
우리는 점검 선 밖에서 대기했다. 배 소장이 기계실의 오래된 유선 점검등을 켜자 빈 공간 맞은편에 실제 철제 발판이 보였다. 발판 끝에는 손잡이 달린 문이 있었다. 문이 혼자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 빛이 겹치는 위치를 바꾸면서 서로 다른 통로를 같은 곳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때 출석부가 다시 나타났다.
[회의 불참 사유 제출]
[사유 1: 퇴사]
[사유 2: 사망]
[사유 3: 대리 출석 지정]
나는 세 가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공책을 꺼냈다. ‘점검 중, 아직 결정하지 않음.’ 그렇게 쓰고 내 공책에만 남겼다. 어느 회의든 네 번째 선택지가 필요했다. 특히 회의 참석이 생존 확인과 뒤섞인 곳이라면.
“문은 열 수 있소.” 배 소장이 말했다. “다만 문 앞 발판을 먼저 고정해야 해.”
우리는 현장 구조대에 위험 구간을 알리고 고정 쇠줄을 설치했다. 손잡이에 닿을 때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설비 점검이 늦어졌다고 잔소리할 시간이었겠지만, 이곳에서는 그 느림이 사람을 살렸다.
문에는 오래된 황동판이 붙어 있었다. ‘0층’이라는 숫자도, 회사 이름도 없었다. 판에는 단 한 문장만 새겨져 있었다.
‘출입하지 못한 사람의 기록을 지우지 말 것.’
“누가 만든 문인지 궁금하네요.” 서윤이 속삭였다.
“안에 들어가면 알아보죠. 다만 그 사람이 우리에게 고용계약서를 내밀면 바로 돌아나옵시다.”
배 소장은 손잡이를 내렸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대신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밀려 나왔다. 백지였다. 아니,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글자가 생겼다.
[회의 진행자 지정]
[현재 문 앞 인물: 차도윤]
[진행자 수락 여부: 기록 없음]
나는 종이를 줍지 않았다. 흰 종이 모서리만 점검 집게로 살짝 들어 공개된 안내 면을 확인했다. 종이를 직접 잡으면 ‘문서 수령’으로 등록되는 일을 벌써 겪었다.
“진행자 자리가 비어 있다는 얘기군.” 배 소장이 말했다.
“원래 비워 두려던 자리일 수도 있죠.” 남기석의 목소리가 굳었다. “전에 본 시험 문서에도 같은 문장이 있었어요. 다만 그땐 진행자가 아니라 ‘첫 위험 신고자’였는데.”
내가 물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합니까?”
“글씨가 겹쳐 있어서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문을 보니 떠올랐고요.”
서윤은 그 말을 기록했다. 불확실한 증언이라도 출처를 표시하면 쓸모가 있다.
방 옆에 놓인 회전식 감시경으로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눈을 대는 순간 유리 표면에 [방문 기록 자동 승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윤은 장치의 조명만 바깥에서 관찰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마이크로 이름을 말해 보는 시도도 보류했다. 어떤 행동이 회의 출석으로 기록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반 회사에서도 회의 들어갈 때 이런 걸 걱정하진 않죠.” 내가 말했다.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회의록이 사람을 잡아먹진 않으니까요.”
그녀의 얼굴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나는 배 소장에게 교대 시간을 묻고, 우리가 쓰러지면 더 위험해질 수 있으니 밖에서 대기할 사람을 정했다. 밤새 일한 팀에 무조건 더 일하라고 하는 방식으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잠긴 문 뒤에서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를 옮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어서 아주 또렷한 기계 음성이 들려왔다.
“회의 시작 전 확인합니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문 앞에 서서 대답했다.
“차도윤입니다. 확인하러 왔지 참석하러 온 건 아닙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기계가 나를 이해했는지, 문 안의 누군가가 그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화면에는 처음으로 ‘대리 참석’ 대신 다른 문장이 뜨기 시작했다.
[방문 목적: 원본 열람 요청]
[회의 출석: 미확정]
[기록 보호 모드: 대기]
그제야 문 위의 작은 등 하나가 켜졌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도원솔루션에서 퇴사한 뒤 제일 긴 회의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나는 안전줄을 다시 잡았다. 이번만큼은 회의에 들어가더라도 제 발로 나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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