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출입증은 사원증 사진을 두 장 겹쳐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한쪽에는 성하금융센터 경비원 장한결, 다른 쪽에는 같은 얼굴을 한 ‘외부 운영 보조’가 있었다. 둘 다 실제 카드처럼 보였고 둘 다 유효기간이 내일이었다.
“저는 내일 쉬는 날입니다.” 한결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 카드부터 이상하잖아요.”
그는 삼십대 초반의 경비원이었다. 35화에서 구조 경로를 확인했던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검증된 비상계단을 따라 실물 대기 구역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다른 한 명은 동료 최승호였고, 그는 현재 안전실에서 시설 담당자와 함께 상황을 정리 중이었다.
한결은 카드 두 장 중 어느 것이 자신 것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원래 회사 출입증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밤사이 다른 카드도 같은 사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떤 카드로 출입하면 되나요?”
“실제 시설팀이 확인한 임시 출입 절차로 이동하세요. 저 카드들은 증거물로 보존하고요.” 서윤이 말했다.
그때 뒤편 문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확인받고 싶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통로 안에 한결과 같은 얼굴의 사람이 서 있었다. 표정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말고, 일단 문밖에 나갈 수 있는지부터 알려 달라고 했다.
“당신도 장한결 씨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잠깐 망설였다. “출입증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하지만 저한테 그 이름을 쓸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종류의 질문이었다. 서버라면 중복 ID라고 부르고 한쪽을 지우면 된다. 그러나 저 앞에 있는 것이 두려워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면, 중복이라는 말만으로 없애서는 안 된다.
“지금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습니까?”
“없어요. 일단 ‘두 번째 경비’라고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죠. 대신 원래 한결 씨의 출입 권한을 사용해선 안 됩니다.”
두 번째 경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도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복사본의 고민은 원본을 따라가는 것일지 모르지만, 오늘 본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더 걱정했다.
한결은 두 번째 경비에게 다가가려다 멈췄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을 마주 본다는 일은 이상한 거울 앞에 서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지갑에서 밤 근무를 시작하며 산 편의점 영수증을 꺼냈다. “나는 이걸 샀어요. 근데 저 사람도 그걸 기억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두 번째 경비는 고개를 저었다. “계산하는 장면은 알아요. 하지만 제가 직접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영수증을 두 사람의 소유권 분쟁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기억이 같다고 해서 두 사람 중 하나의 경험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결은 조용히 웃더니 지갑을 닫았다.
“그럼 일단 둘 다 물이라도 마십시다.”
시설 안전실에서 종이컵 두 개가 나왔다. 두 번째 경비는 컵을 받아 들고 잠깐 망설이다가 물을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 기록도 물을 마시는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빈 컵을 직접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 작은 행동을 누구의 복사본 행동으로 기록할지, 장부에 묻고 싶지 않았다.
“제가 처음 한 결정은 물 마시는 거네요.” 두 번째 경비가 말했다.
“첫 결정이라면 꽤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전 오늘 퇴사하자마자 회사로 다시 들어왔거든요.”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웃었다. 그것이 이후의 갈등을 끝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삭제 명령 화면이 그 순간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잠시 뒤 커졌다. 공동 장부가 둘 중 하나를 삭제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장한결 2건 발견]
[원본 유지 시 대역 자동 종료]
[중복 방치 시 외부 통로 접근 제한]
두 번째 경비가 한 발 물러섰다. 한결은 얼굴을 굳혔다. 자신을 살리려면 눈앞의 사람을 없애야 한다는 문장을 읽은 것이다.
“저는 그런 거 승인 안 합니다.” 한결이 말했다.
“좋습니다.” 서윤은 두 장의 출입증을 압수하지 않고 당사자 동의 아래 투명 봉투에 각각 보관했다. “출입 자체는 시설이 확인한 수동 기록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배 소장은 잠깐 생각하더니 두 번째 경비에게 빈 임시 손목띠 하나를 건넸다. 아무 사원번호도 적히지 않은 종이 띠였다.
“이건 출입 자격이 아니야. 구조대가 사람을 두 번 세지 않게 붙이는 임시 구분용이지. 동의하면 하고, 싫으면 말고.”
그는 자신의 손목에 직접 띠를 감았다. 한결은 카드 대신 이름을 수기로 적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18번 통로에는 이미 두 번째 경비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왜 그가 그 문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누구라도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우리는 직접 위험한 통로로 보내지 않고, 벽 너머에서 확인되는 안전 카메라와 배관 진동 정보를 요청했다.
영상에는 놀랍게도 카드가 먼저 지나가고 사람이 나중에 나타나는 장면이 찍혔다. 파란 출입증이 공중에서 미끄러진 다음, 통로 한가운데에 사람 형태가 생겼다. 그것이 실제 탄생 장면인지 영상 합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녹화 시각도 다른 건물의 시계와 일치하지 않았다.
두 번째 경비는 영상을 보고 손을 떨었다.
“내가 원래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되죠?”
“지금 걷고 말하고 선택한다는 사실까지 지우진 않습니다.” 나는 말했다. “다만 당신이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더 확인해야 해요.”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요. 다들 제가 어디서 복사됐는지만 물었거든요.”
그때 회색 작업복 점검인이 통로 입구에 나타났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공동 운영사 규약에는 출입증이 먼저 생성된 대역을 시험 품목으로 분류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험 품목이 사람 말을 하고 있는데요.” 내가 대답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럼 품목 취급부터 멈춰야겠죠.”
점검인은 아무 말 없이 낡은 규약 사본을 꺼냈다. 서류의 맨 아래에는 다른 글씨로 수정 사항이 적혀 있었다.
[시험 중 재현된 인격적 응답이 확인되면 즉시 자동 정산을 보류한다.]
“그 조항도 있네요.” 서윤이 말했다.
점검인은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오래된 문서입니다. 최근 운용판에서는 빠졌습니다.”
“빠졌다고 원래 약속까지 없어진 건 아니잖아요.” 한결이 말했다.
한결이 다른 한결을 지키려 한다니. 이상한 밤이었다. 나는 기록을 나누어 보존하고 장부의 자동 종료 명령을 중단시켰다. 두 번째 경비는 임시 대기실에서 직접 이동 경로를 선택했고, 한결은 자신의 고용 관계를 따로 확인받기로 했다.
그 사이 민재가 메시지를 보내 왔다.
[서지완 출근부의 그림자 항목이 늘었습니다.]
[실제 인원수는 그대로인데 그림자만 열여덟 개입니다.]
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림자 열여덟 개. 건물은 열일곱 곳. 독립 출구는 열여덟 번째.
“혹시 열여덟 번째가 사람이 아니라 빈자리일까요?” 내가 말했다.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확인 전엔 아무것도 합치지 마세요.”
나는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오늘 밤 가장 많은 오류를 만든 기술은 복사도 인공지능도 아니었다. 두 개를 보고 하나라고 확신하는 우리의 조급함이었다.
그때 두 번째 경비가 낮게 물었다.
“저는 언제 퇴근할 수 있나요?”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출근한 기록도 없었으니까. 대신 물었다.
“어디서 쉬고 싶으세요?”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햇빛 드는 곳이요. 제가 아침을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나는 서윤과 약속했다. 해가 뜨기 전에 안전한 창가를 찾을 수 있다면 그를 데려가겠다고. 그 약속은 회사 장부에도, 내 미래 메일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제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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