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솔루션 조정실의 이름 없는 아이는 그림을 다시 그렸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강민재가 아이에게 물어보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건네준 사진만 보았다. 이전 그림의 열일곱 문 바깥에 있던 검은 점은 이제 작게 열린 사각형이 되어 있었다.
“이게 18번 통로일까요?” 민재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마세요.”
“제가 물어본 건 그림 보여 줘도 되냐는 것뿐이에요.”
민재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조금 섞였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지난 여섯 시간 동안 사람을 살리려다 사람에게 질문하는 방식까지 지나치게 경계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달려드는 일보다는 낫다.
아이의 그림 옆에는 낯선 선이 하나 더 있었다. 붉은 점과 이어진 파란 선. 끝에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엄마 퇴근길]
나는 서윤과 그림을 봤다. 1758 경고 회선과 독립 출구 18 사이, 철거된 집하장 창고 자리였다. 실제 지도에서는 몇십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설계도 없는 복도와 겹쳐 있었다.
“어머니가 그곳에서 일했을까요?” 서윤이 물었다.
“아이가 말한 건 ‘엄마가 아직 퇴근을 못 했다’는 것뿐이죠.”
“그래요. 알아낼 수 있는 건 안전한 통행로가 있는지부터입니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이미 아이를 찾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000 외부 관찰자. 18번 출구 담당자는 보호자 위치를 확인해 회신하라.”
그 목소리에는 사람의 숨이 없었다. 반복되는 녹음 방송이었다. 도원솔루션 출입 전산이 아이를 ‘미등록 가족 관계’로 분류하고 보호자 확인을 명목으로 외부 통로에 출석시키려 한 것이다.
“그 방송 끄세요.” 나는 말했다.
민재가 무전실 출력을 분리했다. “알겠습니다. 안전 안내 방송은 남기고 이름 지정 요구만 끊었습니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말은 듣기 좋았다. 하지만 누가 보호자를 자처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아이를 위험 구역으로 보내는 건 보호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통로 사진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민재를 통해 지금 안전하게 쉴 곳과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가 대답했다.
“배고파요. 초콜릿 말고 밥.”
그 말에 서윤이 웃었다. “정확한 요청이네요.”
도원 구내식당의 자동 조리 장비는 여전히 ‘미처리 점심 식대’라는 괴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한 층에 머무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밀봉된 비상식량과 뜨거운 물을 아이에게 전달했다. 누구의 급여에서 식비를 공제할지 시스템이 물었지만, 직원들이 먼저 말했다.
“우리 돈으로 삽니다. 아이 이름 적지 마세요.”
장부에서 식비와 아이의 위치가 연결되지 않게 된 뒤에야 아이가 밥을 먹었다. 나는 그 장면을 무전으로 들으며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한편 집하장에서는 1758 수신기가 네 번 짧게 진동했다. 장비 담당자가 확인한 원문은 단 한 줄이었다.
[동쪽 외부 경로: 이동 가능 여부 확인 필요]
이것은 경고이지 출동 명령이 아니었다. 누가 직접 누른 것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통행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있었다. 우리는 시설 담당자의 동의를 받고 창고 쪽에 접근했다.
철거된 집하장 옆으로 임시 컨테이너 두 동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의 좁은 틈에는 표지가 없었다. 단지 누군가 손가락으로 벽에 긁어 놓은 화살표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낡은 신발 한 켤레와 주황색 우비가 접혀 있었다.
“사람이 여기 있었던 흔적일 수 있어요.” 서윤이 말했다.
우리는 함부로 옷을 들추지 않았다. 손전등으로 바닥을 살피던 배 소장이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다른 통로에서도 봤던 것과 비슷한 간격이었다. 짐수레인지 휠체어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1758 회선이 바깥으로 빠졌습니다.” 배 소장이 전신주 뒤의 케이블을 가리켰다. “선을 따라가면 하수구를 건너요. 사람이 지나가는 길과 신호가 지나가는 길이 겹친 겁니다.”
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아이의 그림에 있는 파란 선은 꼭 엄마의 실제 발자국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 비상신호가 건너간 길을 아이에게 알려 줬을 가능성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민재가 다시 연락했다.
“아이가 밥 먹으면서 한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이죠?”
“엄마가 길 잃은 사람을 데려오던 날마다 자기 신발이 늦게 왔다고 했대요.”
“신발이요?”
“네. 엄마는 먼저 왔는데 신발이 나중에 왔다고.”
기괴한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이미 사람과 출입 기록이 서로 다른 시간에 도착하는 일을 경험했다. 아이는 무언가를 어린아이의 언어로 표현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민재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적고, 뜻을 추측한 문장은 따로 표시하라고 했다. 엄마가 먼저 도착하고 신발이 늦게 온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 어떤 경로였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서지완이 우리에게 개인 통신을 보냈다. “아이의 그림 끝에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어요. 제가 들여다봐도 될까요?”
“당사자가 동의하면요. 그리고 그걸 근거로 아이를 어딘가로 이동시키진 맙시다.”
지완은 그림의 오른쪽 아래를 확대했다. 아주 작게 그려진 문 두 개 사이에 마른 구름 같은 것이 있었다. 문마다 숫자가 달랐다. 하나는 18, 하나는 0.
“이거, 건물이 아니라 출구 번호 아닙니까?” 지완이 말했다.
나는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하나의 통로가 두 개의 방향을 갖는다는 뜻일까. 0층에서 18번으로, 18번에서 0층으로. ‘출구이기도 하지만 입구’라는 메일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 아이가 다시 말을 전했다.
“엄마가 도망가지 말라고 했어요.”
서윤이 얼굴을 굳혔다. 그 말이 다소 위험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민재가 바로 다음 문장을 전했다.
“정확히는요, ‘불났을 때는 혼자 뛰지 말고 문이 어디로 열리는지 보고 가라’고 했대요.”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앞 문장만 들으면 누군가를 묶어 두려 했다는 뜻이 된다. 뒷문장까지 들어야 비로소 안전 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그림 더 그리라고 시키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오늘은 밥 먹고 쉬게 해 주세요.”
민재가 대답했다. “이미 자기가 더 그리겠다고 하는데요?”
“그럼 그건 아이가 결정할 일이죠. 단, 아무도 보고서를 채우라고 재촉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쓸쓸하게 웃었다. 일곱 해 동안 보고서 때문에 야근했는데, 오늘은 아이가 보고서를 쓰지 않도록 야근하고 있었다.
서윤은 아이가 직접 고른 표현을 그대로 기록하며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이름 없는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사람이 위험을 느끼는 동안에는 이름도 사연도 숨겨 둘 수 있고, 필요한 건 안전한 곳과 믿을 만한 어른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민재에게 아이가 원하는 연락 방식만 물었다. 대답은 뜻밖에도 ‘방송 말고 문 두드리기’였다. 민재는 조정실의 실제 문 앞에서 부드럽게 두드리고, 아이가 허락할 때만 식사와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기로 했다. 방송 스피커는 여전히 아이의 이름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에는 어떤 사원번호도 없었다. 아이는 그 방식이 좋다고 했다.
그 순간 1758 경고등에 낯선 문구가 떴다.
[외부 관찰자 회선: 신호 감지]
[발신 단말: 현장에 없음]
나는 아이가 아니길 바랐다. 아니, 누구라도 현재 위험한 장소에서 강제로 신고 버튼을 누르게 된 상황은 아니길 바랐다. 발신 단말이 없는데 신호가 감지됐다면, 우선 회선의 과거 기록과 현재 신호를 분리해야 했다.
서윤이 물었다. “조사하러 갈까요?”
“가야죠.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진 않겠습니다.”
우리는 손전등을 켜고 컨테이너 사이의 두 번째 길 앞에 섰다. 그 안쪽에서는 누군가 계속 짐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퇴근하지 못한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 오래된 설비가 혼자 움직이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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