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사망 통보를 본 순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는가.
정답은 '일단 무전기를 뒤집어 본다'였다.
내 화면에는 생존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줄 위에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고장 난 모니터라면 새로 고치겠지만, 이건 멀쩡한 손목 위에 떠 있는 글자였다. 고객센터에 문의하고 싶어도 어느 고객센터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회수 담당자가 온대요." 내가 말했다.
민재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어떤 회수요? 장비 반납 같은 거요?"
"나한테 물으면 너만큼 억울해."
문서윤이 무전기 다이얼을 돌렸다. 지하 설비실과 이어지던 주파수는 잡음뿐이었다. 그녀는 수첩을 펼쳐 바닥에 앉아 기계실 약도를 그렸다.
"북문 계단은 저쪽인데, 지금 보이는 창고가 원래 위치를 가로막고 있어요. 지하 배관실의 급수 관로를 따라가면 북문 기계실까지 연결됩니다."
"덕분에 제 퇴사 축하 파티가 하수도 탐험이 됐군요."
"축하 파티였다고 생각하면 좀 덜 무섭겠네요."
그때 창고의 전등이 일제히 켜졌다. 길게 쌓인 종이 상자 사이로 검은 구두가 하나씩 튀어나왔다. 사람이 상자에서 태어나는 광경은 처음 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상자에서 나온 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각각 반쯤 접힌 종이로 된 몸을 가졌고, 가슴에는 붉은 줄이 그어진 사원증이 달려 있었다. 사원증의 이름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회수 대상은 차도윤." 종이들이 한꺼번에 말했다.
"사람을 부를 때 이름 정도는 제대로 불러야지." 내가 중얼거렸다.
"차도윤. 소유 업무 미반납. 사직 처리 보류."
이런 건 굳이 괴물이 되지 않아도 흔한 인사팀 이메일에서 보던 문장이다. 그만큼 익숙해서 오히려 화가 났다.
"사직은 이미 승인됐어요." 나는 손목을 들었다. "반납할 장비도 없고."
종이 하나가 내 앞으로 미끄러졌다. 가슴의 하얀 면에 글자가 떴다.
[미반납 품목: 관리자 암호]
나는 숨이 막혔다. 두 달 전, 회사에서 모든 서비스 관리자 암호를 개인 계정과 분리하고 공동 금고로 옮겼다. 그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나였다. 마지막 정기 감사에서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비밀번호를 품고 퇴사했다고 기록해 둔 것이다.
"그거 이미 반납했어요."
"증빙 미확인."
"증빙은 문서함에 있고요."
"증빙 문서 접근 권한 없음."
"누구 권한이 없는데?"
"회수 담당자."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증거를 보려면 권한이 필요한데 회수 담당자에게 그 권한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그쪽은 내게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악한 마법보다 멍청한 프로세스가 더 위험할 때가 있다.
"서윤 씨, 이 녀석들 이름 칸이 비어 있어요."
"그래서요?"
"업무는 배정받았는데, 일을 맡긴 주체는 없다는 거죠. 임의로 공격할 이유가 없어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종이들이 동시에 팔을 뻗었다. 서윤이 나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종이 손끝이 콘크리트를 스치자 표면에 '봉인'이라는 글자가 찍혔다. 바닥 타일 세 장이 검게 굳어 버렸다.
"네, 이유는 없는데 공격은 하네요." 나는 급하게 정정했다.
민재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선배, 말 줄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벽에 붙은 구형 소화전함을 살폈다. 설비가 진짜라면 안에 호스가 있을 것이다. 문서윤은 비상 상황 교육을 수십 번 한 사람이었다. 내가 손짓하자 곧바로 알아차렸다.
"물로 막아 보죠."
서윤이 소화전 밸브를 열었다. 호스 끝에서 물이 뿜어졌다. 종이 몸통들이 젖어 무너졌다. 하지만 잠시 뒤 뒤쪽의 상자에서 더 많은 종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은 시간을 벌어 줄 뿐이었다.
우리는 창고 끝으로 뛰었다. 철문 위에 낡은 '배관 점검구' 표지가 있었다. 두꺼운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자물쇠가 원래 이곳에 있었을까? 아니면 건물이 갑자기 만든 것일까?
"출입 키는 관리실에 있어요." 서윤이 말했다.
"배 소장님이 갖고 계실 테고."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요."
나는 멍하니 자물쇠를 바라봤다. 표면에 낙서처럼 작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권한을 잃은 사람은 어떤 문도 잠글 수 없다.]
퇴사자는 회사 출입문을 열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닫을 수는 없다는 뜻일까. 시험해 보기엔 뒤에 몰려오는 종이 괴물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문을 밀었다. 예상대로 안 열렸다. 그 순간 손목에 새 문장이 떴다.
[퇴사자에게는 시설 변경 승인 권한이 없습니다.]
"나한테 승인 권한이 없대요."
"당연하죠. 퇴사했으니까." 서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 승인권자가 열어야 해요."
"저도 시설관리자는 아니에요."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났다. 나는 사람들이 더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배만식 소장이 서 있었다. 이마에 피가 흐르고, 왼쪽 손에는 오래된 커다란 열쇠뭉치를 쥐고 있었다.
잠금장치를 찾느라 허둥대던 사이, 문서윤은 종이 괴물들에게 낙인이 찍힌 바닥을 살폈다. 타일은 불에 탄 것이 아니었다. 표면이 굳은 왁스로 덮여 있었고, 손으로 두드리면 안쪽에서 아주 가는 떨림이 느껴졌다. 뒤쪽 벽에 새겨진 화살표도 그 떨림에 맞춰 움직였다.
"도윤 씨. 이 녀석들 지나간 곳은 소방 설비 감지기가 꺼져요." 서윤이 말했다.
"사람을 쫓으면서 비상 설비도 끄는 거예요?"
"그래서 위험한 거죠. 제대로 설계된 비상 절차라면 한쪽 장치가 실패해도 다른 장치가 살아 있어야 해요."
나는 컴퓨터 보안에서 자주 듣던 말을 떠올렸다. 한 개의 비밀번호가 털려도 모든 데이터가 열리면 안 된다. 그런데 건물은 '책임자'라는 이름 하나에 사람의 운명을 묶고 있었다.
문 틈 사이로 멀리 구두 소리가 들렸다. 종이들이 우르르 멈춘 채 고개를 한 방향으로 돌렸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그 소리는 괴물의 발자국과 달랐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짧고 고른 무게가 실렸다. 진짜 사람처럼.
"거기 누구 있어요?" 서윤이 조심스럽게 소리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바짝 쉰 목소리가 대답했다. "문부터 붙들어! 내가 열쇠 가지고 간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도했다. 야근하는 날마다 복도 난방을 고쳐주던 배 소장의 목소리였다.
"진짜 사람 맞아요?" 민재가 먼저 물었다.
배 소장은 화가 난 얼굴로 대답했다. "배고프고 허리 아프면 사람이지, 뭐겠나!"
그는 열쇠 하나를 자물쇠에 밀어 넣었다. 자물쇠가 돌아갔다. 기계식 소리가 반가운 것은 처음이었다.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점검구 안으로 들어가자 배 소장이 문을 닫았다. 종이 손들이 문밖에서 빗방울처럼 두드렸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배관의 녹슨 부분에 어깨를 기대었다.
"소장님, 관리실에서 제 사망 통보를 받으셨다면서요."
"받았지. 그래서 네가 눈앞에 나타난 게 더 기가 막힌다."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출력물을 꺼냈다. 무전으로 읽은 문장보다 아래쪽에 더 긴 메시지가 있었다.
[퇴사자 차도윤의 사망 통보: 예정]
[예정 시각: 18:01]
[예정 상태를 실제로 적용하시겠습니까?]
옆에는 이미 검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적용 승인: 황규태]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다시 들여다봤다. 종이의 모서리에 황 팀장의 사내 결재 서명이 있었다.
"이 사람이 그걸 왜 승인해요?" 문서윤이 낮게 물었다.
배 소장은 대답 대신 배관 통로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던 회사 로고가 거꾸로 붙어 있었다. 로고 아래, 작은 초록색 문이 있었다.
[0층 출입구]
문틈에서 누군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차도윤 씨. 여긴 당신이 퇴사한 뒤에만 들어올 수 있는 층입니다."
제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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