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29화
PAYLUA ORIGINAL · 제29화

자정의 빈 관리자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860자

오프라인 책장
23시 56분. 나는 휴대전화에 나타난 빈 이름 칸을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자정이 되면 가장 최근에 안전 요청에 응답한 사람을 17개 건물의 총괄 승인권자로 지정한다는 규칙. 사람을 살리려는 행동이 곧 사람을 지배할 허가로 바뀐다면, 이곳에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위험해진다. “직책 제안이 아니라 덫이군요.” 문서윤이 말했다. “관리자는 공석이고, 승인받아야 할 건물은 열일곱 곳.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에게 책임을 몰아주겠다는 거죠.” 배 소장이 볼을 긁었다. “안전신고를 안 하면 되나?” “그럴 순 없어요. 위험한 사람이 있는데 신고를 멈추면 시스템이 원하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서윤이 내 휴대전화 화면을 읽었다. 작은 글씨에는 조건이 둘 있었다. '요청에 응답한 사람', '계속된 응답이 확인된 사람.' 첫 번째는 자동 채집된 이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상적인 임명이라면 본인에게 물어야죠.” 서윤이 말했다. “혹시 ‘응답’이 임명 동의가 아니라 안전 응답만을 뜻하는 원본 규칙이 있을까요?” 나는 금융센터의 안전 점검 기록과 병원 1758 장비 안내를 나란히 떠올렸다. 위험을 알려 달라고 했던 옛 시스템은 이름을 묻지 않았다. 현재의 통합 운영 시스템만 그 신호에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즉 자정의 승인 규칙이 원래부터 사람의 응답을 임명으로 취급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건물을 한꺼번에 막을 수는 없어요.” 배 소장이 말했다. “지금 차단하면 비상 알림까지 끊길지도 몰라.” “맞아요. 경고선은 지켜야 합니다.” 서윤이 대답했다. 나는 서지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완은 수동 출근부와 내일 날짜의 명부를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 놓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벽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뻗어 있었지만, 서류 위에 찍힌 손가락은 실물이었다. “지완 씨, 출근부 원본 지침에 총괄 승인권자 부분이 있어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단어가 쓰여 있어요. '총괄 승인권자'가 아니라 '최종 경고 수신자'예요.” 나는 무릎을 쳤다. 승인권자와 수신자. 한 글자도 비슷하지 않은데, 누군가 그 둘을 같은 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수신자는 위험을 듣기만 하는 역할 아닌가요?” 지완이 말했다. “네. 누군가 위험하다는 걸 알렸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관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우찬에게서 받은 금융센터 회계 모듈 기록도 확인했다. '미응답 시 안전 경고 유지'라는 옛 항목이 후대에 '미응답 시 승인 간주'로 바뀌어 있었다. 병원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발생했었다. 각기 다른 업무를 연동하면서 동의, 통보, 승인, 경고를 같은 신호처럼 다룬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경고 수신자 자리는 비어 있어도 되는 거죠?” 서윤이 물었다. “다른 사람이 수신했다는 기록을 남겨 두면 말이죠.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위험이 없어진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모든 건물의 안전 담당자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원본 안전 수신 역할과 자동 인사 승인 역할을 구분해 달라고, 전산 경고를 믿고 방화문을 닫거나 사람을 옮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 메시지에 '차도윤의 승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각 건물의 현장 책임자가 자기 판단과 실제 점검 결과를 기록하도록 했다. 기계 속 목소리가 빠르게 변했다. 은행 상담원, 병원 원무과 직원, 도원솔루션 총무팀. 마지막에는 익숙한 임현규 대표의 목소리가 흘렀다. “차도윤 씨. 회사 차원에서 맡기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책임지면 됩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실제 임 대표가 통화 중인지도 알 수 없었다. 설령 대표라 해도 내가 퇴사한 뒤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맡길 권한은 없었다. “응답하지 않으면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그 문장이 얼마나 잔인한 함정인지 알았다. 여기엔 위험에 대답하지 않는 것과 관리자 임명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일부러 섞어 놓았다. 나는 서윤에게 화면 녹화와 실제 시간 기록을 부탁하고, 안전 안내 수신선으로만 답했다. “17개 건물에 실제 위험이 있습니다. 비상 통로 상태를 확인하고 사람부터 보호해 주세요. 저는 총괄 승인권자 임명을 수락하지 않습니다.” [경고 수신: 정상] [임명 동의: 거부] 처음으로 두 항목이 서로 다른 문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곧 아래에 붉은 글자가 덧붙었다. [거부 시 시스템 자동 책임자 지정] [우선 후보: 외부 관찰자 000] 내 속이 뒤집혔다. 내 이름을 넣지 못하자 아이의 번호를 가져온 것이다. “그 아이는 직원도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빈칸 취급을 하나 봐요.” 서윤이 말했다. “이건 지금 막아야 합니다.” 도원솔루션에서 강민재가 연락해 왔다. 아이는 그 화면을 보지 못하도록 안전 안내실에 있었지만, 건물 문이 출근부에 맞춰 잠기기 시작했다. 실제 비상문은 배 소장과 현장 직원들이 수동으로 확보해 두었고, 직원들은 차례로 안전한 복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선배님, 아이가 이렇게 말해요. 이름이 없어도 집에 갈 수 있냐고.” 민재가 말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퇴사할 수 있는 이유도 결국 비슷했다. 회사가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나갈 길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이름을 안 알려 줘도 안전하게 나갈 권리는 있어.” 우리는 마지막으로 1758 독립 경고 회선의 실제 수신 상태를 확인했다. 17개 건물에서 올라오는 위험 신호는 모두 살아 있었다. 그중 세 곳은 실제 현장 위험이 확인됐고 나머지는 아직 안전 여부를 파악 중이었다. 내가 어떤 서명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그 정보가 전달돼야 했다. 자정 직전, 내 휴대전화 화면에 처음 보는 작은 선택지가 나타났다. '경고 수신자를 임명하지 않고 기록만 보존.' 버튼을 누르면 승인권자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누르지 않았다. 이 문구가 실제 독립 경고 장치에서 온 것인지, 공동 운영 시스템이 만든 또 다른 유인인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윤은 지완에게 원본 출근부의 수신자 항목을 다시 읽어 달라고 했고, 나는 집하장 중계기의 종이 출력과 비교했다. 문구와 역할이 일치했다. 우리는 현장 시설 관리자가 기록을 남긴 다음에만 그 기능을 사용했다. 결과 화면에는 '중립 회선에서 접수'라고 나왔다. 내 이름도 아이 번호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렇게 귀찮게 확인해야 합니까?” 배 소장이 물었다. “예전에 그냥 확인 눌렀다가 저 사내 복구 담당자가 된 전례가 있어서요.” 내가 대답했다. 23시 59분 58초. 마지막 경고가 나타났다. [2단계 병합 시험: 변경 불가] [책임자 자동 지정: 보류 불가] “이런 문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보여 줘야겠네요.” 나는 말했다. 초침이 한 번 움직였다. 자정. 회색 전산실의 유리창에 커다란 숫자 0이 떠올랐다. 뒤이어 17개 건물의 그림이 한꺼번에 반짝였고, 눈앞에서 도원솔루션의 로비가 금융센터의 접수창구와 겹쳤다. 멀리 병원 벽에는 사무실 출근부가 매달렸다. [병합 2단계 개시] [총괄 승인권자: 공석] [최종 경고 수신자: 1758 중립 회선] 나는 숨을 멈췄다. 공석이 유지됐다. 하지만 합쳐지는 건물들은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을 자동 관리자 자리에 올리는 일은 막았지만, 0층의 변형을 끝낸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집하장 벽에서 계단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계단 아래로 더없이 평범한 목소리가 들렸다. “차도윤 씨. 이미 자정이 지났습니다.” “누구십니까?” “17개 건물의 출근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직책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적어도 내일 처음 본 출근부에는 없었던 직책이었다. “그럼 뭘 관리하시는데요?” 어둠 속 목소리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문을요.”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9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