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내일의 직원으로 등록하겠다는 화면을 보자, 내 머릿속에서 회사생활 칠 년 동안 쌓인 불평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아무리 미래 지향적인 회사라도 사람의 동의보다 출근부를 먼저 만드는 건 지나치다. 게다가 직원 번호 000이라니. 인사팀이 미신을 믿었더라면 최소한 그런 번호는 피했을 것이다.
“민재야, 아이 곁에 누가 있지?” 내가 물었다.
“배 소장님 대리로 현장 관리하는 분하고 저요. 아이는 안전 안내실 안쪽에서 쉬고 있어요.”
“강제로 출근부에 서명시키려는 사람이 접근하면 막아. 대신 아이에게 직접 결정하라고 압박하진 말고.”
“네. 아이도 그 종이는 싫다고 했어요.”
그 말이 제일 중요했다. 우리는 아이의 보호자가 아니고,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기 의사를 갖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서윤은 영상 통화로 아이가 있는 장소의 실제 출입문과 비상등을 확인했다. 도원솔루션 안전 구역에는 강민재와 몇몇 직원이 교대하며 남아 있었다. 인원 확인 숫자는 그대로였지만, 벽에 붙은 안내판이 문장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재직자: 내일에도 재직 예정]
[미등록 방문자: 임시 직원으로 편입 예정]
“둘째 줄부터 뜯으세요.” 서윤이 말했다. “그건 사람들이 합의한 안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표지예요. 종이 위에 따로 실제 출입 가능 여부를 써 두고요.”
강민재는 직원들과 함께 전산 안내판을 가리고, 직접 걸어 보며 확인한 비상 대피 안내만 남겼다. 나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봤다. 사람 수백 명이 있는 곳에서 종이 한 장을 붙이는 일은 작아 보였지만, 어떤 표지를 따라야 할지 명확히 하는 데에는 큰 힘이 있었다.
차량 바깥에서는 금융센터 앞의 서류철 괴물들이 방향을 바꿨다. 병원 쪽으로 걷던 것들이 모두 같은 방향, 시내 중심의 낮은 회색 건물을 향했다. 내가 본 푸른 화살표도 그쪽으로 이어졌다. 건물에는 '미래기록관리협의회 공동 전산실'이라는 낡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저 건물이 열일곱 곳을 다 통제하는 겁니까?” 배 소장이 물었다.
“모릅니다. 통제한다고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중계 지점일 수도 있어요.” 나는 말했다.
서윤은 운전대를 잡은 소장에게 먼저 외부 기관과의 통신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실제 소방 지휘는 구조된 세 사람을 안전 지역으로 이송하고 있었고, 금융센터의 정상 출입구도 확보됐다. 우리는 새 건물에 무작정 들어가 단말을 건드리는 대신, 바깥에서 관찰할 수 있는 위험부터 확인했다.
도로 전광판에서 숫자가 하나씩 켜졌다. 01, 02, 03. 처음에는 자동차 번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병원과 금융센터가 같은 순서로 나타나자 나는 그것이 공동 운영 대상 건물 번호라는 걸 알아챘다. 17까지 표시가 올라갔다.
[공동 야간 근무 시작 준비]
[각 건물 원본 인원 자동 이송 예정]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건물은 서로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사람을 종이 기록처럼 옮겨 적겠다는 것이다. 무전기에서는 병원의 박유라 간호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병동에 입원하지 않은 사람이 병상 배정표에 나타나요. 이름도 다르고 병실도 없는데, 전산이 곧 병동으로 이동할 거라네요.”
세림종합병원과 성하금융센터는 업종도 다르고 책임자도 달랐다. 그곳의 사람이 서로의 근무표로 이동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원본 관리 기록과 대역 시험 기록을 서로 맞추는 시스템이 실제 사람의 출입까지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박 간호사님, 전산 배치와 실제 환자 이동을 구분해 주세요. 실제 응급환자 이송은 현장 의료진이 판단해야 합니다.” 서윤이 말했다.
“네. 수동 병상표로 전환할게요.”
성하금융센터의 우찬도 전화를 걸어 왔다. 구조된 세 사람의 이름이 '야간 외부 정산팀'으로 복사돼 다른 건물 명부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인사 담당자들에게 연락하자 상대는 모른다고 했다. 입사 기록도, 파견 계약도 없었다.
“우찬 씨, 그 세 분이 직접 다른 곳에서 일하겠다고 한 적 없다는 증언을 보존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건 전산에서 만든 계획일 뿐이니까요.”
회색 전산실 건물의 유리창에서 검은 종이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종이들은 하늘로 올라가더니 마치 거대한 사원증처럼 서로 붙었다. 그 한가운데 '17개 건물 / 통합 출근부'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검은 종이 한 장이 차량 유리를 때렸다. 충격은 가벼웠지만 글자가 선명했다.
[원본 인원 부족]
[잔여 인원으로 충당]
[우선 충당 대상: 000]
“아이를 빈칸 채우기에 쓰겠다는 건가.” 배 소장이 이를 악물었다.
내 휴대전화 화면에 또 푸른 팝업이 나타났다.
[긴급 구조 요청]
[외부 복구팀 차도윤]
[아이 000의 대리 출근 동의서에 서명하면 17개 건물 위험을 일시 정지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위험을 멈춘다는 말은 달콤했다. 특히 수백 명의 동료와 환자와 지하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에겐. 하지만 대가로 아이의 미래를 내 마음대로 결정하라는 제안이었다.
“서윤 씨, 이거 지금 누르면 일단 멈출 수는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화면이 약속한 효과를 확인할 근거가 없어요. 그리고 멈출 수 있어도, 도윤 씨가 아이 대신 동의할 권한은 없잖아요.”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화면을 보지 않아도 손끝에 버튼이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회색 전산실 바깥 전광판은 계속 숫자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17이던 숫자가 한순간 16으로 바뀌고, '응답 없음'이라고 표시됐다. 나는 그게 도원솔루션을 뜻하는지 병원을 뜻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해당 건물의 담당자들에게 직접 안전 여부를 묻는 편이 정확했다.
배 소장은 평소 알던 설비 담당자 두 명에게 연락했고, 두 사람은 각각 건물 밖 대피 공간과 실내 기계실의 상태를 답했다. 숫자가 응답 없음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17개 건물의 상태를 실제로 모두 확인할 수 없다면, 확인하지 못한 곳을 '안전'이라고 써선 안 됐다. 우리는 종이 지도에 확인된 세 곳만 초록 동그라미가 아니라 단순한 체크 표시로 남겼다. 색을 덧칠하면 어쩐지 문제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병원의 박유라 간호사가 알려 왔다. 병상 전산이 새로운 사람 이름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직접 확인한 환자 명부와 의료진 판단으로 실제 이송은 막아 뒀다는 것이다. 작지만 분명한 성과였다. 자동화가 물러선 자리에서 사람이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강민재의 휴대전화를 통해 나를 불렀다. 화면에는 얼굴이 아니라 접힌 종이 지도만 보였다. 작은 손이 종이 가장자리를 눌렀다.
“아저씨. 이건 문 열일곱 개예요.”
“응. 네가 직접 그린 거니?”
“응. 그런데 그쪽은 한 개를 더 그리고 있어요.”
아이의 손가락이 종이 밖을 가리켰다. 그림 바깥엔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
“그건 뭔데?” 내가 물었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그 점에서 엄마가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어요.”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발적으로 보여 준 그림의 의미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그 지점을 사진으로 남겨도 되는지 물었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화면으로 확인했다.
지도 바깥의 점 아래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1758]
“이건 누가 썼어?”
“엄마가 위험하면 여기로 신호 보내라고 했어요. 근데 내가 한 건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17시 58분의 경고가 아이에게서 왔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회선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누군가 아이에게 알려 줬던 것이다.
차도윤이라는 이름 옆에서 푸른 숫자가 지워졌다.
[대리 서명 유예]
[대체 경로 발견: 1758 독립 경고 회선]
아이의 그림 하나가, 자정까지 남은 몇 분을 다시 돌려준 것 같았다.
제2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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