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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내일의 나에게 온 퇴사 통보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838자

오프라인 책장
내일 날짜의 퇴사 통보서라니. 나는 퇴사하기 전부터 회사가 내 결정을 미루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날짜까지 미래로 옮겨서 다시 퇴사시키려 든다면 그건 재능이 아니라 시간 낭비의 초능력이었다. “민재야, 서지완 씨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 내일 출근부가 언제, 어디서 생긴 건지.” “물어봤는데 본인도 모른답니다. 서류가 먼저 책상에 놓여 있었다고 해요.” “그럼 내일 날짜라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로 취급하지 말고. 그 사람도 아직 입사 절차를 마친 게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지도에 검은 점을 찍었어요.” 나는 금융센터 계단 위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아이. 손목에 000이라고 찍힌 이름 없는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출근을 끝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에게 일을 시키거나 이름을 강제로 밝히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은 물리적 위험을 알리는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아이가 먼저 보여 준 건가?” “네. 자기가 이거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지도는 건물 열일곱 개와 그 밖의 점 하나예요.” “점 하나는 뭔데?” “그걸 아이도 아직 모르겠대요. 지금 그림을 접어 들고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서윤에게 통화를 넘겼다. 그녀는 도원솔루션 내부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를 그림을 그리는 도구처럼 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 더는 그림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금융센터 밖의 차 안에서 서지완과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지완은 내일 입사 예정자답지 않게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의 뒤 벽에 붙은 달력은 10월 31일에 머물러 있었지만, 손에 든 출근부 첫 장은 분명히 11월 1일이었다. “도윤 선배님.” 지완이 말했다. “이게 제가 적은 이름이 아닌 건 확실해요. 그런데 잉크가 마른 걸 보면 몇 시간 전에 출력됐어요.” “날짜는 내일인데 출력은 오늘인 거군요.” “네. 출근하는 사람들을 미리 정하는 서류라면 이해하겠는데, 제가 입사하기도 전에 퇴사할 사람을 정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는 마지막 장을 보여 줬다. 나는 화면에 쓰인 문장을 보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차도윤 / 2026-11-01 예정] [퇴사 통보 사유: 내일의 원본과 중복] [복구 담당 공석] “내일의 원본?” 내가 중얼거렸다. 지완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손가락 그림자는 창문 쪽이 아니라 벽 안쪽으로 길게 뻗었다. 내가 6화에서 봤던 모습이었다. 지완은 눈치를 챘는지 휴대전화를 움직여 그림자가 사라지게 했다. “저도 이상한 건 알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알고 있는 것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실제로 내일에서 왔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게 맞는 말입니다.” 나는 말했다. “여기는 다들 자기 정체를 자신 있게 말하는 게 오히려 불안한 동네라서요.” 지완이 작게 웃었다. 웃고 나니 그가 스물몇 살의 신입사원처럼 보였다. 곧 시험 삼아 한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 내일 회사에 제 자리가 없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본인 집부터 가야죠.” “회사에서 출근해야 한다고 문이 막히면요?” “그럼 출근부보다 실제 문 상태가 우선입니다. 나갈 길을 찾고, 원하지 않는 계약에는 서명하지 마세요.” 서윤은 통화 중 들리는 비상 방송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도원솔루션 대강당에서는 아직 317명의 생존이 확인됐고, 안전 구역도 유지 중이었다. 다만 오늘 날짜에서 내일 날짜로 넘어가는 전환 장치가 출근부를 기준으로 사람을 재배치하려는 흔적이 나타났다고 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가요?” 배 소장이 물었다. “정확히는 미래를 예약해서 현재 사람을 거기에 맞추려는 것 같아요.” 내가 대답했다. “예약을 실제 동의로 오용하는 거죠.” 나는 통화를 끊기 전에 지완에게 부탁했다. “서류 전체를 함부로 회사 시스템에 올리지 마세요. 원본 보존하고 서로 다른 시간 표시부터 적어 두죠. 그리고 내일 출근하더라도 본인이 원해서 하는지 꼭 확인하세요.” 지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내일 출근하는 건, 적어도 지금은 제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휴대전화 화면이 어두워졌을 때, 배 소장이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금융센터 정문에서는 퇴사 처리된 직원들이 안전하게 나간 방향을 향해 검은 명찰들이 떠다녔다. 우리는 멀리서 사람을 지키는 직원들과 통화하며 실제 통로가 변하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했다. 서윤은 내일의 명부를 굳이 없애려 하지 않았다. 문서 자체는 지금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위험이 있는지 알리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미래의 종이에 제 이름이 없다면 안심해야 할까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종이에 있다고 확정하지 않는 것처럼, 없다고 실제 사람이 사라진 것도 아니에요.” 나는 서윤의 수첩을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현재 함께 있는 사람의 이름과 확인 시각이 적혀 있었다. 나도 한 줄을 추가했다. '차도윤, 현재 성하금융센터 외부 안전 지점에 있음, 직접 대답함.' 그 짧은 기록은 내일 어떤 화면이 나타나더라도 오늘의 내가 있던 장소를 대조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통화가 끝났다. 그런데 내 휴대전화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내일의 차도윤'. 메일은 저장 시간부터 이상했다. 2026년 11월 1일 00시 02분. 아직 오지 않은 시각이었다. 나는 메일을 곧바로 열지 않았다. 화면 아래 미리보기만으로도 중요한 문장이 보였다. [나는 이미 구조에 실패했다. 같은 이름이라도 내 판단을 원본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미래의 제가 이렇게 겸손할 줄은 몰랐네요.” 나는 말했다. 문서윤이 화면을 가리켰다. “미리보기라고 해도 그건 누군가 보내 놓은 문장일 수 있어요. 미래의 도윤 씨라고 확인된 건 아니죠.” “맞아요. 그래서 그걸 믿으라는 게 아니라, 왜 이런 경고를 지금 보내는지 봐야겠죠.” 우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금융센터의 장부에서 구조된 세 사람의 '인출 완료' 기록이 삭제된 게 아니라 옆 항목으로 옮겨졌다는 것이었다. 새 항목 제목은 '내일 정상 출근 예정'. 오은호는 전혀 다른 시설에서 내일 새벽 작업할 예정이었고, 지수와 태식에게는 그런 출근 계획이 없었다. “사람들을 건물 간 출근표에 옮겨 적는 겁니다.” 서윤이 말했다. “여기서 꺼낸 사람을 다시 다른 곳에 넣으려고요.” 나는 안전 대기 중인 세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현재 계획과 의사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의 선택은 우리의 추측보다 중요했다. 금융센터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도원솔루션 직원이 될 이유도 없었다. 그때 모든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도원솔루션 사내 앱, 병원 호출기, 금융센터 비상 안내 화면. 각각 다른 장비였는데도 똑같은 한 줄이 나타났다. [공동 운영 건물 간 인사 연동: 기준 시각 점검] [시각: 23:43] [17개 건물 중 16개 응답] “한 건물은 왜 응답하지 않죠?” 배 소장이 물었다. 나는 기계가 알려 주는 숫자를 보며 생각했다. 응답하지 않는 건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오래된 계측 장치 하나가 아직 네트워크 밖에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지도 밖에 그렸다는 점 하나처럼. 전화기 너머 지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는 통화를 끊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른 연결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내일 출근부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직원 번호까지 생겼어요. 그리고 그 번호가 아이 손목의 숫자랑 같습니다.” 화면에는 짧은 글자가 떠 있었다. [직원 번호: 000] [2026-11-01 최초 출근 예정] [대리 서명 필요]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과, 아이를 누구 마음대로 미래 직원으로 등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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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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