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가 박지수를 부축해 나오자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미 수화기 너머에서 듣긴 했지만, 밖으로 나온 사람이 방금 전의 사람과 같은지 확인하는 것은 눈앞의 얼굴보다도 본인의 대답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흡은 괜찮으십니까?” 문서윤이 물었다.
“네. 다만 다리가 좀 떨려요.”
“다른 사람은요?”
“태식 씨가 뒤에 있어요. 은호 씨는 반대편 문으로 나온대요.”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서 김태식이 두 손을 들고 걸어 나왔다. 무슨 범죄자라도 된 듯한 자세였다. 나는 그가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손에 쥔 작업 장갑을 보고야 조금 안도했다. 그의 손은 카메라 속 복사본처럼 종이로 접히지 않았다.
“이거요.” 그가 장갑을 들어 보였다. “저희가 세 번째 소리를 내던 수동 펌프 손잡이입니다. 밖에서 듣는 사람이 필요할까 봐 가져왔어요.”
오은호도 구조대 안내를 따라 나왔다. 그의 작업복 가슴에는 협력 업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성하금융센터 직원도, 도원솔루션 퇴사자도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 이름과 상태를 확인했고, 우찬은 본래 출입 경로와 근무 관계를 따로 적었다. 그 과정에서 기계 화면의 '인출 완료' 표시가 세 번 번쩍였다. 나는 속이 서늘해졌다. 실제 구조가 성공한 사실을 기계가 자기 거래 실적으로 가져가려는 것 같았다.
“정산 장치를 중지했는데 왜 계속 작동해요?” 나는 우찬에게 물었다.
“안전 중지 자체는 됐어요. 저건 사후 회계 기록일 겁니다.”
“사후 기록도 사람을 다시 가두면 큰일인데요.”
그 말이 끝나자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종이로 만든 경비원 셋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은 모두 희미했지만 명찰에는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지수, 김태식, 오은호. 검은 종이 경비원들이 서로 다른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한 명은 지수처럼 왼쪽 다리를 약간 절었고, 다른 한 명은 태식처럼 장갑을 흔들었다.
서윤이 구조대와 우찬에게 먼저 사람들을 계단 위쪽 안전 장소로 이동시키게 했다. 나는 출입 문 옆에서 종이 경비원들을 지켜봤다. 본인이 구출된 뒤에도 업무 흔적이 남는 회사는 흔했다. 하지만 그 흔적이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면 이제 문제의 종류가 달라진다.
“저 애들은 우리를 해치려는 걸까요?” 은호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아직 사람의 대역인지 단순한 기록인지도 확인 못 했습니다.”
종이 경비원 중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손끝은 얇은 서류 모서리였다.
[미정산 업무: 구조된 사람의 퇴사 서명 회수]
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나 여기서 퇴사한 적도 없는데요?”
종이가 한동안 멈췄다. 지수는 자신의 고용 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서윤은 우선 안전 구역으로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이 경비원은 그녀의 말을 따라 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명찰을 주워 검은 봉투에 넣었다.
“우리가 무조건 싸워서 부숴야 할 대상은 아닌 것 같네요.” 배 소장이 말했다.
“사람을 따라가게 둘 순 없습니다.” 서윤이 답했다.
우찬은 건물 정문 근처에 정상 출입증 반납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종이 경비원들은 0층이 생긴 뒤 반납 처리되지 않은 이름을 찾아다니는 자동 사무 대역이었을 수 있었다. 우리는 경비원들이 사람의 뒤를 쫓지 못하도록 안전 통로와 반납 구역을 분리했다. 강제로 잡아넣거나 없애지 않았다. 그저 '직원 실제 고용 상태 미확인, 회수 금지'라는 수동 안내판을 붙였다.
놀랍게도 종이 경비원들은 안내판 앞에서 멈췄다. 글자를 읽는 것처럼 머리를 숙였다. 한 명이 명찰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짓했다. 나는 무심코 그쪽으로 다가가려다 멈췄다.
“함정일 수도 있겠죠?”
“그럴 수 있어요.” 서윤이 말했다.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사람을 잡아당기진 않네요.”
나는 안전한 거리에서 물었다. “말할 수 있습니까?”
가장 작은 경비원이 입을 열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났다.
“우리는 퇴사 승인 이전의 작업을 마쳐야 합니다.”
“어떤 작업인데요?”
“사람을 정상 경로로 돌려보내는 일.”
나는 문서윤과 눈을 마주쳤다. 적어도 초기 목적은 사람을 빼앗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 잘못 연결된 명령을 주기 전까지는.
그때 내 손목의 푸른 창이 또 켜졌다.
[외부 복구팀 비인가 구조 활동]
[안전 관리자 자격: 미확인]
[미승인 구조자: 차도윤]
[신원 보증 즉시 요구]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허락받고 구조했냐는 질문이 지금 나올 줄은 몰랐다.
“서윤 씨. 우리 지금 회사 허락 없이 사람 살렸다고 징계받는 분위기인가 봐요.”
“그 사람들 상태가 증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게 현실의 구조 기록이지, 저쪽의 계약서가 아니에요.”
안전 구역으로 옮겨진 세 사람에게 물과 담요가 전달됐다. 나는 그제야 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김태식은 계속 문 쪽을 돌아봤고, 박지수는 자기 휴대전화의 시간을 확인했다. 오은호는 발전기실에서 들리던 울림이 귓속에 남았는지 자꾸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그들은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소대로 일하다 갑자기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혹시 저희가 여기서 나와서 다른 회사로 자동 발령되는 건 아니죠?” 지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화면은 봤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동의했는지는 없었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정정해 주세요.”
“정정 신청은 도와드릴 수 있어요. 본인 의사부터 적어 두죠.”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답했다. 지수는 원래 업무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 했고, 태식은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연락하겠다고 했으며, 은호는 시설 담당자에게 작업 인계가 끝났는지 먼저 확인했다. 나는 세 사람을 마주 보며 잠깐 부끄러워졌다. 내가 조금 전만 해도 그들을 ‘구조 대상 3명’이라고 부른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필요한 표현이긴 했지만 사람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은호가 주머니에서 낡은 나사 하나를 꺼냈다. “이거 제가 수리하다 주운 건데 혹시 도움이 되나요?” 그는 나사를 내밀었다. 뿌리 부분에 검은 종이 한 줄이 감겨 있었고, '사전 반납'이라고 적혀 있었다. 종이 경비원들이 남긴 것과 같은 잉크였다. 나는 물건을 함부로 가지고 다니지 않고, 그가 발견한 위치와 시각부터 메모했다. 사람뿐 아니라 물건의 이동까지 자동 반납으로 처리됐다면 그 원인을 더 살펴봐야 했다.
우찬은 현장 구조 지휘와 시설 안전 담당 권한으로 실제 구조 경위를 기록했다. 나는 별도의 사실확인 진술서에 '강제 이동·인출·고용 종료 절차에는 동의한 적 없음'을 다시 썼다. 쓸 때마다 같은 문장이었지만, 같은 서류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누가 살아 나왔는지 직접 확인한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종이 경비원 하나가 내 앞에 얇은 종이 조각을 남겼다.
[미승인 구조자에게 전달]
[원본 요청자: 자정 이후 도착 예정]
“누가 보내는 겁니까?” 내가 물었지만, 경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는 스스로 접혀 비행기 모양이 됐다. 비행기는 계단 위로 솟아올랐다가 천장에 부딪혔고, 그대로 사라졌다.
정말로 퇴사한 회사가 던전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여지가 없었다. 최소한 정상적인 회계 시스템이라면 종이비행기를 출장 택배로 쓰진 않을 테니까.
우찬이 휴대전화의 시계를 보여 줬다. 23시 39분이었다. 자정까지 스물한 분.
“여기 세 분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우찬이 말했다. “이제 다른 건물들도 확인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도원솔루션의 강민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서지완 씨가 내일 출근부에서 선배 이름을 봤습니다.”
“제가 내일 출근한다고요?”
“아니요. 이름 옆에 ‘퇴사 통보 예정’이라고 써 있어요. 내일 날짜로.”
나는 수화기를 꽉 쥐었다. 오늘 퇴사한 사람에게 내일 퇴사 통보를 한다는 건, 아무리 우리 회사라도 지나치게 성실했다.
제2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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