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두드림은 세 번째보다 느렸다. 박지수와 김태식이 있는 점검 통로 바닥 아래에서 누군가 깊은 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벽을 통과할 능력이 없었다. 개발자에게 모든 버그를 고칠 권한이 있다는 오해가 흔한 것처럼, 0층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모든 문을 열 능력이 있다는 오해도 위험했다.
“두 사람과 분리된 공간이 있다는 뜻인가요?” 문서윤이 물었다.
정우찬은 설비 도면을 벽에 펼쳤다. 지하 이 층 아래에는 더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 없었다. 단, 건물 준공 후 전력 장비를 교체하면서 만들어진 좁은 격리 점검실 하나가 있었다. 평면도에는 아직 옛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비상 정산 보관실]
은행에 정산실이 있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발전기 밑에 사람 하나가 갇힐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건 전혀 안심할 만한 소식이 아니었다.
“저 문이 지금 열리지 않는 건 안전 인터록 때문이에요.” 우찬이 말했다. “문을 열려면 안쪽 환기부터 정상이어야 합니다.”
“그럼 진입보다 통화와 환기를 먼저 확인하죠.” 서윤이 답했다.
박지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저희 들어왔을 땐 저쪽에서 남자분이 전등을 손보고 있었어요. 이름은 모르겠어요. 우린 장부 때문에 서로 이름을 믿을 수 없었거든요.”
“혹시 그분이 도움을 청했나요?”
“처음엔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전기 분전함이 흔들리고 있다고. 그러다 종이들이 쏟아져 내렸고 문이 닫혔어요.”
나는 서로 다른 사건이 한 줄의 정산 내역으로 합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수와 태식은 같은 방에 갇혔고, 다른 한 사람은 시설 작업 중 격리실에 들어갔다가 고립됐다. 장부에는 세 명이라고 표시됐지만 영상 속 세 번째는 펌프와 종이 대역이었다. 사람 세 명, 대역 하나, 구조 신호 셋. 숫자가 맞아 보여도 실제 의미는 제각각이었다.
방화문 위 검은 종이가 바뀌었다.
[퇴사자 인출 한도: 2]
[인출 실패 시 보증인에서 차감]
[보증인 후보: 차도윤]
“금융센터 와서 갑자기 채무자가 됐네.” 내가 중얼거렸다.
배 소장이 내 등을 툭 쳤다. “네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제가 아닐 사람이라기보단 제 의사와 상관없는 빚이죠.”
우찬은 경비실에서 받아 온 옛 정산 시험 기록을 넘겼다. 공동 운영 시범 과제의 제목은 '퇴사 대출 자동 연계'. 실제 은행 대출을 뜻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야간 작업의 공백 시간을 임시 대여 계정으로 메우는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퇴사자'를 계정 종료가 아니라 사람의 법적·물리적 이동처럼 취급하도록 잘못 연결한 데 있었다.
“여기는 누가 일을 끝내면 그 사람의 남은 근무 시간까지 담보로 잡는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서류상으로는 정산 편의 기능이에요.” 우찬이 말했다.
“그 편의 때문에 사람이 문 안에 갇혔는데요.”
나는 새 회사에서 배웠던 한 문장을 떠올렸다. 자동화는 시간을 아껴 주지만, 무엇을 아끼는지 잘못 선택하면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없애 버린다.
우찬이 소방대와 함께 격리 점검실의 독립 환기 스위치를 찾았다. 도착한 소방대는 건물 구조 담당자와 함께 현장 안전을 확인했고, 우리는 그들이 실제 설비를 조작하는 동안 통신과 기록을 맡았다. 누군가 사람의 목소리를 복사하는 탓에, 무전에서도 모든 호출에는 확인용 문장을 붙였다. 내가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말하면 서윤이 '내일은 일요일'로 응답하는 방식이었다. 대역이 그 말을 곧 따라 하긴 했지만, 원래 문장을 전파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그 몇 초 동안 직접 만난 사람의 얼굴과 행동을 함께 확인하면 적어도 한 차례는 진술을 구분할 수 있었다.
격리실에 임시 통화선이 연결됐다. 잡음이 일었다.
“들리십니까? 밖에서 구조 준비 중입니다.” 서윤이 말했다.
몇 초 뒤 낮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오은호입니다. 설비 교체하러 왔다가 갇혔어요. 제발 발전기를 꺼 버리진 마세요. 위층 냉각 장치가 멈춥니다.”
오은호. 장부의 세 번째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퇴사자가 아니었다. 오늘 이곳에 임시 파견된 설비 수리 기사였다.
“어제 퇴사 처리됐다는 기록은 알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예? 저는 아침까지 다른 건물에서 일했는데요.”
그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화면에 '근무 제공 기간 종료'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은행의 정산 모듈은 한 사람이 다른 시설에 파견된 순간을 '원 직장에서 퇴사'로 해석했다.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이동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이동 기록이 끊긴 시간을 '빌린 시간'이라고 표시했다.
“그럼 저분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빚이라는 거예요?” 배 소장이 물었다.
“원래는 설비 관리 비용의 임시 기록일 겁니다.” 서윤이 말했다. “그걸 사람에게 적용하는 오류예요.”
나는 발밑에서 검은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약 종료 날짜 옆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출 만기: 자정.' 서류 아래에는 내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 원본이 아닌, 방금 찍힌 이름이었다.
“저 계약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종이가 작게 떨렸다.
[동의 여부 확인 실패]
[정산 보류 불가]
“거짓말이죠. 보류할 수 없다고 써 놨을 뿐이잖아요.”
나는 우찬이 건넨 실제 건물 운영 계약서에서 금지 조항을 가리켰다. '근무자의 인격·법적 신분·물리적 출입 여부는 자산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법률 용어가 들어간 문장은 늘 피곤했지만 이번엔 기분이 좋았다. 최소한 이 한 줄은 사람이 돈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분명히 해 줬으니까.
서윤이 그 조항을 사진과 수기로 각각 보관했다. 소방대는 점검실 안의 환기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고, 고립된 세 사람의 의사와 상태를 다시 물었다. 오은호는 천천히 답했다. “걸어 나갈 수 있어요. 다만 무전이 끊기면 그쪽이 제 이름을 또 바꿀까 봐 무섭습니다.”
“이름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마 저는 그렇게 할 권한도 없고요.”
그 순간 어디선가 딸깍 소리가 났다. 바닥에서 얇은 검은 선이 길게 그어져 세 통로를 연결했다. 서류철들은 마치 은행 창구 앞 대기줄처럼 한 줄로 서기 시작했다.
[정산 모듈: 특별 인출 시행]
[차감 자산: 현장 인원 3]
[동의 누락분: 외부 복구팀 보증으로 대체]
점검실 통화 기록을 살펴보자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더 나왔다. 오은호의 최초 도움 요청 시각은 장부에 표시된 퇴사 시각보다 뒤였다. 누군가 더 일찍 그를 없어진 사람으로 정리했다는 뜻이다. 나는 현장 통신 기록 두 장을 나란히 놓고 서윤에게 보여 줬다. 한 장은 실제 무전기의 수신 시각, 다른 장은 회계 모듈이 나중에 출력한 시각이었다. 서로 다른 기계에서 나온 숫자를 한 줄로 합쳐서는 안 됐다.
“이상하죠?” 서윤이 물었다.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이미 종료된 사람으로 취급했어요.”
우찬은 원본 로그를 봉인하고 두 시각의 차이를 적었다. 금융센터의 기계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해도 자꾸 현재의 확인보다 과거의 완료 기록을 우선했다. 그래서 현장의 응답을 듣는 통화기와 기계의 정산 결과를 의도적으로 떼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오은호에게도 설명했다. 그가 침착하게 “그럼 아직 제 작업 지시서는 취소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답했다. 구조가 끝나면 작업은 실제 시설 책임자와 다시 결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대출 원금처럼 생긴 숫자 세 개가 화면에 떴다. 3, 17, 00. 세 사람과 열일곱 건물과 영점. 그건 금액이 아니라 사람과 장소를 묶는 순서였다.
“이걸 막으려면 어디를 건드려야 할까요?” 서윤이 물었다.
나는 창구를 바라봤다. 검은 선 끝에 기계 한 대가 천천히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오래된 현금인출기와 닮았지만 화면에는 돈 액수 대신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게 전산의 실제 출구일 수도 있겠네요.”
기계가 카드를 요구했다.
[퇴사자 전용 계정으로 인출하십시오.]
나는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퇴사했다고 모든 문에 내 명의 카드를 꽂아야 할 의무까지 생긴 건 아니었다.
제2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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