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직장에 다시 와서 회의를 주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회의실에 팀장 두 명, 사장 두 명, 내일 입사할 사람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아이가 함께 앉아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회사생활 칠 년 동안 이런 인원 구성을 본 적은 없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도 최소한 사장은 한 명이었다.
회의 장소는 대강당 옆 안전 안내실로 정했다. 사무실 컴퓨터에 로그인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고, 창문과 피난 문을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이었다. 배만식 소장이 의자 위치를 정리했고 문서윤이 비상 동선을 표시했다. 강민재는 대강당에 남은 직원 317명의 현장 상태를 교대조별로 확인했다. 그 숫자는 오늘 실제로 응답한 사람의 수였지, 회사가 앞으로도 그들을 강제로 출근시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회의 주제를 먼저 정합시다.” 나는 말했다. “첫째, 사람이 지금 위험한 곳. 둘째, 기록 때문에 곧 위험해질 곳. 셋째, 우리가 모르는 곳.”
서지완이 출근부를 펼쳤다. 그는 내일 날짜의 사람 명단을 가져왔지만, 오늘을 기준으로 누군가의 생존이나 실종을 확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태도가 반가웠다. 미래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미래를 너무 믿지 않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열두 명을 찾는 임무는 어떻게 하죠?” 강민재가 물었다.
“열두 건으로 정정했어. 현재 확인된 건 사람과 업무와 미확인 원본이 섞여 있어.”
나는 이명주가 작성한 공개 가능 기록만 읽어 줬다. 병원에서 만난 이명주는 본인 의사로 남아 현장 안전을 돕기로 했다. 무전실에 있는 명주 둘도 스스로 머물기로 했고, 그를 없애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환자를 일괄 퇴원시키려던 위험한 명령은 의료진과 시설팀이 직접 중지했다.
“그럼 한 건 성공인가요?”
“성공은 구조와 위험 중지 두 가지야. 사람을 회사에 회수해 오면 성공이라는 표시엔 동의하지 않아.”
강민재는 화이트보드에 단어를 바꿔 적었다. '회수 완료' 대신 '안전 확인'. 쓸데없는 형식 같아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를 빼앗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아이는 문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아이는 물을 마신 뒤 종이비행기를 새로 접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 방 괜찮아? 다른 곳이 편하면 옮겨도 돼.”
“여긴 문이 열려 있어서 좋아요.”
“다행이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저쪽이 세기 시작해요.”
그 말과 동시에 벽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다. 19시 47분을 가리키던 바늘이 18시 1분으로 가까워졌다. 회의실 안에 실제 인원이 열한 명인지 열두 명인지 확인하려는 문구가 나타났다. 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고, 옆 복도에 있던 부상자 지원 인력이 필요하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열어 두었다.
“숫자 말고 상태를 확인하세요.” 서윤이 말했다. “누가 다쳤으면 의무실로, 쉬고 싶으면 옆 방으로 가면 됩니다.”
시계는 잠시 멈췄다. 회사는 모인 사람을 회의 참가자로 등록하고 싶어 했지만, 실제 피난 안내를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따로 기록하자 더 이상 인원 카운트를 줄일 수 없었다.
배 소장은 병원과 연결되는 오래된 수동 회선을 정리했다. 그가 실제 외부 담당자와 대화한 내용이 있었다. 17시 58분 신고가 전달된 것은 확인됐지만, 구체적 발신자의 이름은 없었다. 장비 번호 1758과 신고 시각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연결 고리였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두 숫자를 나란히 적고 가운데에는 물음표를 넣었다.
“이거 오늘 해결해야 합니까?” 서지완이 물었다.
“아뇨. 확인할 수 없는 걸 오늘 안다고 적으면 내일 더 위험해져요.”
서지완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들고 온 출근부도 그런 식으로 취급해 주세요.”
“그렇죠.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록입니다.”
회의실 옆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회색 양복의 임현규 대표였다. 검은 셔츠의 집행 관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임 대표는 보안 금고에서 확인한 원본 서류를 돌려놓고 왔다고 말했다. 황 팀장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근무 경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지금 당장 지우지 않는 데는 동의했다.
“대표님, 도원솔루션 직원들을 출근 기록에서 일괄 삭제하라는 승인에 반대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반대합니다.”
“그 말이 전산에서 자동 승인으로 바뀌지 않게, 수기로 서명해 주시죠.”
그는 펜을 들었다. 나는 서윤이 가져온 종이 양식에 현재 시각과 회의 참석 목적을 기록했다. 대표의 서명이 실제 법적 효력을 갖는지는 나중에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현재 의사를 남기는 일은 가능했다.
그 순간 0층 방송이 울렸다.
[외부 복구팀 회의 결과 감지]
[공동 운영 건물 17곳 자료 공유 승인 요청]
“아직 승인 안 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미승인 시 재심사 2단계로 자동 이관]
“그것도 승인 안 했어요.”
화면이 깜빡였다. 건물 안의 오래된 공용 프린터에서 열일곱 장의 종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종이마다 다른 장소의 출입 위험이 적혀 있었다. 병원, 금융센터, 아파트 관리동, 물류센터, 그리고 이름을 가린 몇 개의 건물. 각 문서에는 같은 문장이 있었다.
[원본-대역 통합 적용 예정]
나는 장부를 보고 침을 삼켰다. 이런 방식이라면 누군가의 근무 기록만이 아니라 진료 기록, 관리 기록, 입주 기록까지 한 사람으로 병합될 수 있었다. 병원에서 확인한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각 장소의 현장 안전 담당자가 실제로 확인해야 합니다.” 서윤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든 건물의 출입을 조작하면 안 돼요.”
“맞아요. 연락 수단을 구분합시다.” 나는 말했다. “자동 공용망에 한꺼번에 올리면 이쪽이 승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수동 전화로 위험 상태를 설명하고, 현장 판단을 요청해요.”
배 소장이 오래된 통신망을 열었다. 병원 담당자와는 이미 연결돼 있었다. 다른 건물에는 비상 전화와 실제 시설 담당자의 번호로 연락해야 했다. 서지완은 내일의 명부에서 건물 이름만 확인해 현재 신고 목록과 대조했다. 이름을 가린 건물은 확정하지 않고 별도의 확인 대상으로 남겼다.
아이의 종이비행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저씨. 건물마다 하나씩 있어요.”
“뭐가?”
“제일 처음에 들어가서 못 나온 사람.”
나는 아이가 말한 것을 곧바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지만 아이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신 파란 크레파스로 바닥 종이에 네모를 열일곱 개 그렸다. 그중 셋에 작은 문을 그렸고 하나는 붉은색으로 칠했다.
“어디서 본 거야?”
“꿈일 수도 있어요. 근데 여기에 불 켜진 문이 있어요.”
그가 가리킨 곳은 지도에 아직 나오지 않은 금융센터 옆의 작은 관리동이었다. 서윤은 그 장소를 곧바로 구조 대상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단서를 기록하고, 실제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를 점검했다.
“너는 이게 꿈이든 아니든 말해 줘서 고마워.” 나는 말했다.
아이는 조금 웃었다. “그럼 이름 안 말해도 되죠?”
“당연하지.”
배 소장의 무전기에서 처음으로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도원솔루션 안전관리 담당자 맞습니까? 여긴 성하금융센터 시설 당직입니다. 여기는 설계도에 없는 층 때문에 사람 세 명이 갇혔습니다.”
서윤이 즉시 무전기로 현장 상태를 물었다. 담당자는 지상층의 정상 피난 출구는 열려 있으나, 비상 발전기실 아래에서 분명히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영상에는 사람이 없고, 출입 장부에는 '어제 퇴사한 직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서 금융센터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직 누구인지도, 몇 명인지도 확정할 수 없지만 실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외부 복구팀 첫 임무를 다시 정합시다.” 내가 말했다. “사람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데려올 방법을 찾는 겁니다.”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재는 대강당과 연결된 수동 무전기를 확인했고 배 소장은 차량과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나는 병원 쪽에도 근무 중인 이명주가 위험 없이 머물 수 있는지 다시 물었다. 답은 '현재 안전'이었다.
그때 내 손목에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외부 복구팀 임무 변경 요청 접수]
[요청자: 차도윤]
[기존: 퇴사자 12명 회수]
[변경안: 위험 구역 12건 현장 안전 확인]
[승인 주체: 공석]
처음으로 '미확인 동의'가 아닌 내가 직접 요청한 문장이 화면에 남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 새로운 안내가 나타났다.
[2단계: 17개 건물의 내일 출근 시작]
[기준 시각: 2026-11-01 00:00]
아직 자정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자정이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알았다. 누군가 문 뒤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진짜인지 확인하러 가야 했다.
“가죠.” 내가 말했다. “야근은 이미 충분히 했지만, 이제부터는 야근 수당을 줄 회사도 없네요.”
문서윤이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럼 살아서 돌아오면 제가 저녁 살게요.”
“그 약속은 꼭 지켜 주세요.”
우리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계단에는 또 하나의 푸른 화살표가 떠 있었다. 이번에는 나만이 아니라, 서윤이 가리킨 실제 비상등과 같은 방향이었다.
제2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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