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층이 복사한 것은 건물의 사진이 아니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복도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면 대체 뭘 복사하냐고 물었다. 오명선은 검게 그을린 철제 프레임을 손으로 쓸며 답했다. "사람이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자리일지도 모르죠." 신뢰할 만한 공학 논문에는 없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내 앞의 복도는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표시한 방향으로 실제 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원래 강변 019의 관측 장치는 안전 신고가 끊겼을 때 사람들이 어디로 빠져나와야 하는지 '미확정 상태'로 남겨 두는 설비였다. 그러나 도원으로 옮긴 뒤, 빈 경계를 과거에 성공했던 출구 모양으로 채우라는 기능이 추가됐다. 빈칸이 불편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장치가 모양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바닥의 무게와 온도까지 만들어 냈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019-00 구체의 전원을 직접 끊지 않았다. 앞서 B-0에서 전원을 차단했을 때 사람의 발밑이 불안정해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김하린은 공공 신고를 독립으로 유지했고, 배만식은 실제 경계의 하중을 확인할 외부 센서를 추가했다. 장혜원은 '관측 전 빈 기준점' 표시가 있는 원본과 후대 `BUFFER-SNAPSHOT`의 재생 순서를 비교했다. 재생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건물 경계가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공통 패턴이 있었다.
"공간이 사람처럼 출근하는 거네요." 민재가 말했다.
"사람을 명단에 넣더니, 이제 복도를 명단에 넣었군." 내가 답했다. "회사가 성장하면 별걸 다 채용해."
어느 틈에 도원의 중앙 계단이 강변 수문실의 계단과 닮아 있었다. 벽에 염분이 스며든 듯 하얀 줄이 생겼고, 손잡이에는 오래된 고무 끈이 걸려 있었다. 시설팀은 실제 계단의 안전 하중이 낮아진 것을 발견하고 즉시 폐쇄했다. 복도 하나가 새로 생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 쓰던 계단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우리는 구체가 어느 시점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 시험하기 위해 실제 사람이 없는 모형실의 안전 영상만 비교했다. 이선경의 공공 담당자 입회 아래, 작동을 유발하지 않는 읽기 전용 자료를 확인했다. 옛 모형실에는 두 문이 있었다. 하나는 닫혀 있고 하나는 열려 있었다. 시험 기록은 '열린 문만 선택하면 된다'고 예상했지만 원본은 '두 문 모두 실제 안전 확인 전까지 미선택'이었다.
두 상태를 후대 파일과 겹쳐 보자 거울 속에서 세 번째 문이 생겼다. 실물 구체는 전원 변경 없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우리는 즉시 읽기 작업을 멈췄다. 작동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자료 열람 자체가 관측 자극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기술팀은 로그를 분리하고 시간 동기화 결과를 다시 검증했다. 원인 확정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경고였다.
하진과 하림은 이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장치와 관련돼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직접 위험에 노출시켜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대신 두 사람의 자발적 진술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하진은 장치가 자신을 흉내 내도 실제 현재 선택은 자기 것이라고 했다. 하림은 한 번 나왔던 문 안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오후에는 병원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림병원의 오래된 세탁실 바닥이 잠시 도원솔루션 사무실의 복도로 바뀐 것이다. 환자용 세탁 카트가 중첩된 문틀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다. 직원들은 환자를 우회 동선으로 이동시키고 수동으로 카트를 제거했다. 그런데 현장 영상에는 세탁실에 들어온 적 없는 도원 직원 세 명의 그림자가 찍혀 있었다. 실제로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까지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요?" 서윤이 물었다.
"아직은 흔적만 있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한때 그 흔적을 보고 하진을 복사본이라고 불렀지. 하지만 지금 하진은 자기 의사를 가진 존재야.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됐는지, 애초에 사람의 종류가 다른 건지 확인하지 못했어."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원인 규명과 현재의 권리를 구분해야 했다. 그 점이 0층을 다룰 때 우리를 회사와 다르게 만드는 기준이었다.
옛 설계의 마지막 부록에서 새로운 기능명이 나왔다. `CONTINUITY-SHADOW`. 원뜻은 '대피가 완료되기 전 마지막으로 안전했던 통로 상태를 임시 보존'. 사람의 그림자를 만든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대 버전에서는 그 그림자에 출입증과 직원번호를 붙이고 실제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로 재현하는 옵션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통로를 보존한다'가 '그 통로를 지나간 사람을 보존한다'로 바뀐 것일까.
우리는 후대 옵션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새 대역을 만들지 않았다. 그 기능의 오동작이 이미 문제였다. 대신 옵션을 실행한 기록의 작성자를 추적했다. 17시 55분 관측면 전환 예약과 같은 작업 그룹이었다. 업무 계정은 `SAFE_EXIT_BACKFILL`, 작업 책임 부서는 미래기록관리협의회의 실증실. 최초 개발자가 책임을 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중간 수정 단계에서 사람의 흔적까지 보존 대상으로 넓혔다는 증거였다.
갑자기 구체 속 영상이 바뀌었다. 다섯 번째 현관의 문이 열렸고 그 뒤로 낯익은 사무실이 보였다. 7년 전의 내 자리였다. 책상 위에는 식지 않은 커피, 모니터에는 당시 고장 보고서. 하지만 의자에는 내가 아니라 내 얼굴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유리창 바깥을 바라봤다.
나는 숨을 멈췄다. 하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사진 속 모습은 그랬다. 그는 입을 움직였고, 작은 자막이 나타났다. `오늘 퇴사하지 않으면 내일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미확인 영상이었다. 하지만 구체 속 인물의 동작과 실제 도원 서버의 발열이 같은 순간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민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 저거 형이 맞아요?"
"아니. 내가 저 시각에 저 자리에 있었는지도 아직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그리고 저 사람이 말을 한다면 먼저 어디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지."
구체 안의 사람은 조용히 일어났다. 그가 의자에서 움직이자 우리 발밑에도 의자 바퀴가 한 번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실물 방 안에는 의자가 없었다. 복구 장치는 길의 마지막 안전 상태를 되살리려다, 그 길을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흔적까지 현재로 끌어오는 듯했다. 무서운 점은 저 영상을 믿고 다가가면 정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누군가를 그 자리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재현이 읽기 전용 이력에서 사고 이전의 경고를 찾았다. `현장 안전 상태와 과거 재현 상태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상태를 동일 인원으로 정산하지 않는다.` 그 아래 결재란은 비어 있었다. 누군가 결재하지 않은 경고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오승필은 후대 자산 등록 과정에서 이 위험이 이미 확인됐다는 자료를 받았지만 사업 계획을 유지한 정황이 있었다. 후대의 악용은 조사 자료로 쌓였다.
그날 밤, 장혜원이 구체의 바깥 보호 덮개에 붙은 작은 조각을 발견했다. `00 = 아직 관측하지 않은 선택이 남은 자리`. 그는 말했다. "저 빈자리의 목적을 바꾸지만 않으면 처음부터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 목표는 장치를 모두 지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바깥을 다시 빈자리로 남기는 거겠죠."
구체 속 사무실의 불이 꺼질 때 또 한 줄의 문장이 나타났다. `잔여 대역 생성 조건: 과거 경로와 현재 경로의 소유자를 하나로 승인`. 누가 이 조건을 만들었는지 찾아야 했다. 그때 더 이상 질문이 아니게 되는 것이 있었다. **밖에 있어야 할 사람을 안쪽에 남겨 놓고도 퇴근 완료라고 기록해 온 책임**이었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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