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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80화
PAYLUA ORIGINAL · 제180화

빈 기준점 00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4,124자

오프라인 책장
사건을 겪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퇴사자였다. 자기소개서에 적을 경력이 하나 더 늘었다. '7년차 인프라 엔지니어, 0층 공간 이상 현상 수습, 기계식 비상벨과 대화 가능'. 물론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비상벨이 제대로 답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체로 내가 말하고 비상벨은 울릴 뿐이었다. 019-3의 고정점 분리 작업은 하루가 지나서야 안정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강변의 빈 폭은 더 줄어들지 않았고, 도원 회의실의 벽돌도 더는 늘어나지 않았다. 금융센터와 세림병원의 나머지 불안정 구역은 여전히 통제 중이었다. 그 현장에 사람이 들어가도 된다는 결론을 내릴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실물 안전을 확인한 현장 담당자와 구조 책임자가 각각 판단해야 했다. 우리는 전날 나타난 `00` 표시의 원본을 찾았다. 처음에는 도원의 0층과 같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019-3 옛 설비 명세서에서는 00이 층수가 아니라 `기준점 없음 / 관측 개시 전`을 뜻했다. 원래 아무것도 놓지 않아야 할 자리였다. 그곳에 '실제 좌표'를 부여하면 주변 관측면이 전부 그 자리로 끌려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그럼 누군가 아무것도 없는 곳을 중심으로 삼았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장혜원은 대답 대신 오래된 설계 변경 이력을 가리켰다. `019-00 기준점 = 이동 가능한 원본 보관 자리`. 그 뒤에 후대 업무 계정의 수정이 한 줄 더 있었다. `019-00 = 도원 0층 실재 좌표`. 기록 하나가 실제 공간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여러 현장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정확히 어떤 힘으로 일어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코일의 원래 재료와 동작 원리를 확인해야 했다. 비상 관측실에 바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이선경은 먼저 외측 수문과 배수 펌프의 실물 상태를 확인했다. 배만식은 통신용 광케이블이 살아 있는지, 전원이 어느 지지대에 연결되는지 측정했다. 강민재는 새로 들어오는 영상이 원본인지, 00 기준점이 만들어 낸 과거 재생인지 분리했다. 나는 김하린과 함께 공공 경고 1758을 독립으로 유지했다. 단 한 명의 직원이 없어도 경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최초 원칙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외부 점검을 마친 오후, 허가된 관측실 앞의 두꺼운 유리창으로 작은 장치가 보였다. 녹슨 금속 바닥, 옆으로 기울어진 얇은 고리, 그리고 투명한 구체. 구체 안에는 아주 작게 비친 복도가 여러 개 있었다. 강변의 난간, 도원의 회의실, 병원의 세탁실, 금융센터의 지하문. 우리는 실제 소형 모형인지, 빛의 굴절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구체가 현재 실물 하중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진동한다는 사실은 측정할 수 있었다. 오명선이 영상으로 그것을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저건 제가 만들지 않았어요. 저는 그걸 둘러싼 철제 프레임만 수선했습니다." 그는 최초 019-3 설치 당시 그 구체를 '남은 폭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이름을 말한 사람은 기억하지 못했다. 시범 과정에서 구체가 사라지면 공간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시험은 끝내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왜 보관실에 남아 있죠?" "누군가 고장 나도 경보는 유지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는 경보가 아니라 건물 모양까지 보존하는 장치가 됐다는 소문이 났어요." 우리는 소문과 확인된 원본을 구분해 적었다. 그날 공개 가능한 기록에서 찾아낸 확실한 사실은 하나였다. 019-00은 원래 **재생할 공간이 없는 상태**를 기록하는 자리고, 관측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상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실제 좌표로 지정한 순간, 비어 있어야 할 자리에 여러 건물의 일부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때 오승필이 마지막으로 현장 승인 신청을 보냈다. 그의 업체가 장비의 실물 복구를 지원하는 대신 019-00의 상업적 이용권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과거 코일 이전과 보강 볼트 결제를 근거로 들었다. 오재현은 해당 계약이 안전 확인 이전의 조건부 시설 보수 문서였다는 자료를 제시했고, 태형의 단독 진입을 보류했다. 오승필은 자신이 장비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공공 통로를 임대 자산으로 등록하려 했던 후대의 시도는 별개로 조사해야 했다. 공공 설명회에서는 어떤 시민이 물었다. "그럼 앞으로 길이 안전한 겁니까?" 나는 장비에 대한 장광설 대신 지금 확인된 사실을 말했다. "오늘 통제 구역은 그대로 통제합니다. 지상 대피로와 공공 신고 회선은 운영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건물 안의 회사 관리자 허가 없이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기술적 완치 선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설명회가 끝날 무렵 한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름 없는 아이는 오늘 자발적으로 그림을 한 장 더 그렸다. 세모 셋과 네모 하나 아래에 작은 동그라미가 추가돼 있었다. 아이는 그림을 보여 줘도 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자기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우리는 그 선택을 기록했다. 동그라미가 019-00을 뜻한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그곳이 '엄마가 쉬어도 된다고 했던 빈자리'라고 설명했다. "엄마가 직접 그림을 보여 줬니?" 한서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근데 저거는 집이 아니래. 누가 오면 잠깐 서 있을 수 있는 곳이래." 그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물리적 가설을 떠올리게 했다. 빈 경계는 사람을 붙잡는 공간이 아니라, 어느 쪽 출구도 안전하지 않을 때 잠깐 남겨 두는 공간이었다. 사람 없는 비상 방향이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가기 전까지 소유자나 관리자를 임의로 지정하지 않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오후 늦게 019-00의 외부 유리창에 반사된 복도 하나가 움직였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도원, 세림, 금융센터의 복도가 아니었다. 반사 속에는 완전히 평범한 현관과 신발 두 켤레가 있었다. 벽에는 작은 시계가 걸려 있었고, 시침이 17시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실물 위치를 찾지 않은 채 그 방을 누구의 집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 순간 구체 옆 녹음기가 스스로 켜졌다. 낡은 자기 테이프가 돌기 시작했다. 김하린은 외부 회신과 분리해 원본을 보존했고, 우리는 인명 정보가 아닌 시설 안전 부분만 먼저 들었다. 음성은 이제까지 들었던 목소리들과 달랐다. 낮고 피곤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오늘 17시 53분. 관측면 두 곳의 기준이 다르다는 보고를 받았다. 승인 전 복원 실험은 중단한다. 그런데 아무도 만지지 않은 구체에 새로운 복도가 생겼다. 기록을 조작한 사람을 찾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 장치는…" 잡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길을 저장하지 않는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바깥을 **실제로 만들어 놓는다**. 확인 전까지 거기에 누구도 머물게 하지 마라." 녹음에는 서명이 없었다. 음성의 실명도, 테이프가 정말 2026년 10월 31일에 녹음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체가 단순한 과거 사진 저장 장치라는 가설을 흔드는 현장 증거였다. 누구의 선택과 상관없이 실제 물질이 움직였다는 수많은 기록과도 연결됐다. 그날 밤 도원솔루션 0층의 모니터에 새로운 항목이 나타났다. `[관측실 00 / 기준점 보관 상태 해제 요청]`. 시스템은 여전히 내가 관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승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래,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장이 나타났다. `안전 경계를 유지한 최초의 사람에게만 전달할 기록이 있습니다.` 곧이어 1758 공공 회선으로 짧은 신호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000'도, '차도윤'도 수신인으로 붙지 않았다. 내용은 단 네 글자였다. **`밖은 누구 것?`**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할 것은 단순히 코일을 멈추는 버튼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비상구가 왜 누군가의 건물이 됐는지, 실제로 만들어진 빈 공간에 누가 처음 남겨졌는지, 그리고 그 공간을 다시 비워 둘 방법이었다. "우리 회사 정말 퇴사하기 어렵네요." 나는 서윤에게 말했다. 서윤은 지친 얼굴로 웃었다. "대신 이제 퇴근할 사람을 회사가 정하지 못하게는 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작은 성공이었다. 우리는 출입문을 잠그지 않은 채, 확인된 지상 통로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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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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