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하나가 도시를 붙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두 군데 있어야 할 고정점을 한 벽에 묶어 버린 볼트였다. 오래된 시설을 수리한다고 설치한 작은 쇠붙이가 강변과 도원 사이에 놓여 있던 빈 공간을 끌어당긴 것이다. 현장 구조 담당자는 볼트를 함부로 빼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동의했다. 사고가 난 건물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면 안에 남은 사람들도 같이 없어질지 모른다.
배만식은 볼트를 보자마자 세 가지 준비를 요구했다. 다른 고정점에 실제 하중이 걸려 있는지 측정할 것, 구조대가 사람을 전원 안전 구역으로 내보냈는지 확인할 것, 공공 1758 신고가 계속 살아 있는지 시험할 것. 셋 중 하나라도 불확실하면 작업 중단. 평소 거친 소리를 잘하는 배 소장이 이런 순서를 말할 때마다 나는 그가 왜 살아남은 시설 소장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도원솔루션 회의실의 실제 사람을 먼저 내보냈다. 병원에서는 치료 중인 환자가 지나는 동선과 장비용 복도를 분리했다. 금융센터에서는 넓어진 문틀 쪽 출입을 막고 지상 비상구를 열어 두었다. 강변은 비 때문에 하천 수위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선경은 산책로를 닫고 안전한 우회로를 크게 표시했다. 그날의 목표는 세계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더는 다치지 않게 만드는 일이었다.
장혜원은 과거 019-3 관측 원본을 대조했다. 두 개의 외측 관측면은 서로 독립된 기준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하나가 미확인 상태면 80센티미터의 빈 폭을 남겨 두고, 안전을 확인한 뒤에만 사람이 이용할 통로를 확정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도원으로 코일을 옮기는 공정표에는 두 기준점 모두 '일체형 보강'으로 기록돼 있었다.
"보강 자체를 승인한 분이 누구죠?" 나는 물었다.
"서명란에 사람이 없어요." 장혜원이 답했다. "`FM-TRANSFER`가 결재를 대신했어요. 하지만 원본 보존 당시에는 어느 사람도 그런 자동 결재를 위임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비어 있는 승인란을 채우기 위해 시스템에 사람 이름을 끼워 넣은 일과 닮았다. 앞서 확인한 기록에서는 최소 관측 인원 조건을 실종자로 오해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승인하지 않은 보강을 담당자 없는 승인으로 바꾸어 실제 고정점을 묶어 버렸다. 오류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게 바뀐 것을 알면서 영업 자산화에 이용하려 한 책임도 따로 있었다.
오승필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태형공간자산 법무팀의 통지가 왔다. `본 보강 볼트의 제거는 임대권 보장 시설의 훼손에 해당함.` 나는 그 문장을 크게 읽고 민재를 쳐다봤다. "저 사람들, 볼트에 월세 받을 기세야." 민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월세 내면 볼트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나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웃을 여유가 없으면 이런 일을 끝까지 버틸 수 없었다.
공공 안전 담당 기관은 안전 확보 범위에서 작업을 승인했다. 시설의 실제 책임과 보존 자료의 소유 여부는 별도로 심의하기로 했다. 현장에는 배만식, 구조대, 서윤, 실물 설비 검사원이 함께 있었다. 나는 원격 수신기의 읽기 전용 기록 담당으로 서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무슨 일을 직접 하기보다 누가 실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퇴사자가 다시 관리자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구조를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첫 단계는 볼트를 빼는 일이 아니었다. 두 관측면에 독립적인 임시 지지대를 세워 실물 하중을 분산하는 것이었다. 서윤은 수신 확인음이 두 곳에서 따로 들리는지 점검했다. 하나는 강변 외측, 하나는 도원 현장. 서로 같은 목소리로 대답할 필요도 없었고, 같은 시간에 승인할 필요도 없었다. 둘 다 안전한 경우에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오후 네 시, 임시 지지대가 각자 하중을 받기 시작했다. 019-3의 철판 위에서 네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오른쪽 받침대가 움직일 때 생긴 진동과 시점이 일치했다. 며칠 전 우리가 확인하지 못했던 네 번째 접점 소리가 이제 실물과 연결됐다. 세 번은 구형 장력, 마지막 한 번은 기준점이 움직일 때 닿는 지지판 소리였다. 사람의 흔적을 지워 버리는 결론이 아니라, 장치가 낸 소리를 사람의 대답으로 오해하지 않게 된 결론이었다.
다음은 볼트의 실제 하중을 측정했다. 일부를 풀자 도원 회의실의 벽돌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강변의 잃어버린 폭은 80센티미터에서 63센티미터로 줄었다.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우리는 바로 진행을 멈추고 안전성을 다시 확인했다. '잠시 나아졌다'고 해서 '완전히 고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금융센터에서 긴급 무전이 들어왔다. 넓어진 문틀 아래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현장 통행은 이미 막혀 있었으므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균열은 실물 건물의 하중과 연결돼 있었다. 배 소장은 현지 담당자가 독립 받침대를 추가하도록 조언했다. 우리는 강변의 볼트 작업을 일시 정지했다. 저쪽이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른 복구 방법이었다.
하진은 연락을 받고도 현장으로 오지 않았다. 그는 오늘은 명주 둘과 함께 병원 야외 정원에 있었다. 그가 찾아오지 않겠다는 선택을 존중했다. 대신 하진이 보내 준 영상 한 개를 확인했다. 두 사람이 안전하게 걷는 모습이었다. 공간을 복구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나가고 쉬기 위해서였다.
해 질 무렵 금융센터의 받침대 보강이 확인됐다. 강변의 고정 볼트를 다시 조금씩 분리하자 모니터의 `정본 통로 1` 표시가 꺼졌다. 대신 `외측 통로 A 안전 확인`, `외측 통로 B 안전 확인 대기`라는 두 개의 표시가 나타났다. 하나의 답을 강요하던 장치가 다시 두 질문을 남긴 셈이었다.
그와 동시에 강변 점검로에 있던 벤치의 빈자리에서도 이상한 현상이 멈췄다. 사라진 나무 벤치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주변 바닥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고, 물때 선도 고정됐다. 임시 지지대는 철거하지 않았다. 실물 시설이 안정될 때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오재현이 태형의 회계 자료를 보내 왔다. 추가 고정 볼트 설치비는 코일 이전 비용이 아니라 `분리 관측면 통합 사용 승인 선행 공정`으로 결제돼 있었다. 승인하지 않은 일을 '선행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수행한 것이다. 결제 계정에는 문태수 팀의 예전 시설 이관 권한이 일부 쓰였으나 당시 누가 실제 지시했는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했다. 오승필이 후대에 그 자료를 임대권 신청 근거로 쓴 사실은 확인됐다.
작업이 끝난 뒤 서윤이 말했다. "오늘은 한 가지를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는 사람입니까?"
"사람 아니에요. 누군가가 지워 놓은 '확인 전'이라는 상태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관측 지점 가운데 하나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 시스템은 더 이상 빈 공간을 방으로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사람들을 안전한 길로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원격 점검에서 뜻밖의 숫자가 나타났다. 두 지점의 차이가 안정된 직후, 제3의 값이 생긴 것이다. `현장 관측 지점 3 / 미등록`. 원본 019 자료에는 019-1과 019-2, 그리고 뒤늦게 발견한 019-3만 있었다. 이것이 새로운 위치인지, 오래된 점검 모듈 번호가 잘못 번역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곧이어 별도의 메시지가 표시됐다. `원본 계측 코어 하부 접근 요청 / 최초 설계자 서명 확인 불필요 / 현장 사고 기록 직접 제시 가능`.
나는 마지막 줄에서 손을 멈췄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보다 무엇을 숨겼는지가 이제 더 중요해졌다. 019-3의 문은 열지 않았다. 대신 비가 그친 뒤에도 열리지 않는 오래된 하부 관측실의 도면을 찾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그 도면의 빈 공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00`.
제17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