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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76화
PAYLUA ORIGINAL · 제176화

정본이 없는 밤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731자

오프라인 책장
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가장 위험한 말은 '정본 하나만 남기자'였다. 누군가 작성한 장애 보고서를 하나로 합치자며 수정 이력을 지우던 사람들이 기억났다. 지금은 정말로 벽과 계단을 하나로 합치고 있으니, 과거의 나에게 경고해 주고 싶었다. 파일 합칠 때 원본 보존부터 하라고. 사람이 들어 있는 건물은 특히. 019-3이 두 사람을 한 관측값으로 만든 순간, 도원솔루션의 폐쇄 회의실 벽에는 오래된 사진의 배수문이 떠올랐다. 사진 속 벽돌이 실제로 튀어나왔고 바닥에 물이 고였다. 청소팀은 그곳이 새 보관실인지 물었다. "아닙니다. 오늘은 사무실에 강이 임시 출근한 상태예요." 나는 말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물이 실제로 발등을 적시고 있었다. 배만식은 물의 전도도를 재고 전기 설비 차단 범위를 정했다. 전체 전원을 끄면 다른 피난 표지가 꺼질 수 있으므로 실물 누전 구역만 격리했다. 시설팀은 위험 구역 주변 사람들을 먼저 빼냈다. 내가 사진 속 강물을 증명해 봐야 퇴로가 생기지는 않는다. 반면 실제로 건조한 계단 하나를 확보하면 열 명이 걸어서 나갈 수 있었다. 김하린이 기록 서버의 변경 이력을 열었다. 장치가 저장한 화면은 도원과 강변의 사진을 하나의 사진으로 덮어쓰기 시작했다. `SNAPSHOT-ANCHOR / 원본 시점 고정 / 우선순위 현 인사 출입 기록`. 공간의 기준점이 과거 실제 장소가 아니라 현재 직원의 출입 기록으로 지정돼 있었다. "그럼 제 퇴사 기록이 기준점으로 쓰이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윤 씨 이름이 없었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시설 코드가 기준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그 말은 다행이면서도 씁쓸했다. 내 퇴사가 특별해서 세상이 무너진 게 아니라, 세상을 무너뜨릴 준비가 된 시스템에 내 퇴사가 마지막으로 끼워진 것이다. 장혜원은 원본 보관 시절의 문서를 펼쳤다. 원래 `SNAPSHOT`은 관측값을 비교하는 사진의 복제본일 뿐이었다. 사람이 다니는 실제 공간을 바꾸는 작업은 시험조차 승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후대 시스템의 명령에는 `RENDER_PHYSICAL=TRUE`라는 항목이 있었다. 누구의 승인인지, 실제 물리 효과가 가능한지 알 수 없는 오래된 기능이었다. "이걸 해제하면 모두 돌아올까요?" 강민재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하린이 대답했다. "지금 실제로 지탱하는 벽이 그 기능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갑자기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어요." 우리는 명령을 삭제하지 않고 신규 재생만 금지했다. 이미 나타난 벽과 물은 물리적인 안전 조치로 다뤘다. 그 뒤 처음으로 회의실의 벽돌이 더 자라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장 구조대의 안내에 따라 안전한 지상층으로 나갔다. 오후에는 오승필이 보낸 서면이 도착했다. 그는 외부 업체의 장비가 없다면 0층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다며 임시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가 들고 온 것은 기계의 해독 키와 부동산 사용 계약을 하나로 묶은 상품이었다. 나는 실제 기술 지원 제안만 따로 검토하자고 했다. 계약의 이익과 공공 대피로 소유권은 분리해야 했다. 감사관 오재현이 변경 이력 제공 의무와 자료 훼손 금지 명령을 검토했다. 그런데 바깥에서 돌아온 신소림이 그 서면의 특정 글꼴을 보고 멈췄다. "이거 예전 수선 작업서 글꼴이에요. 원래는 벤치 수리비 정산에 쓰던 서식인데요." 서류에는 `공공 시설 보수 비용 / 019` 항목이 있었고 뒤에는 `시설 운영자 지정 / 민간 자산 편입`이 덧붙어 있었다. 같은 종이에 안전 유지비와 운영권을 붙여 놓은 셈이다. 신소림은 본인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는 그 말을 한 번 더 녹취했다.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증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 관측 서버의 예약 작업이 스스로 실행됐다. 우리가 막은 것은 '새 사진 생성'이었는데, 서버가 이번에는 '과거 정본 검증'으로 이름을 바꿔 같은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두 이름 모두 서명자가 아닌 시스템의 자동 계정이었다. 도윤, 하진, 신소림, 장혜원 이름을 순서대로 대입하며 승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모두 실물 현장과 별개의 기록이었다. "명함 돌리듯 사람 이름을 돌리네요." 내가 말했다. 서윤이 답했다. "이제 명함으로는 못 들어오게 합시다. 실물 현장 확인을 승인과 분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사 출입 인증을 아예 꺼 버릴 수는 없었다. 실제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나갈 때 신분 확인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대신 공간 복원 요청에 인사 출입 정보를 사용할 수 없도록 권한을 분리했다. 기계식 별도 스위치에 봉인 표시를 걸고 현장 시설 담당자 두 명이 서명했다. 실물 안전 확인은 남겼고, 옛 사진을 실제 벽으로 만들라는 작업은 멈췄다. 잠깐 평온이 찾아왔다. 도원 회의실에서 물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고, 금융센터의 넓어진 문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019-3의 계측 기록에는 `80cm 불일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을 갱신하지 않는 것과 실제 잃어버린 공간을 돌려놓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누수 구역의 안내판을 임시로 설치할 때 강민재가 나에게 물었다. "선배, 저런 원형 고리가 원래 도면에 없으면 철거 대상 아닙니까?" 나는 예전 같으면 바로 철거 요청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리가 벽을 붙잡고 있을 가능성을 알았다. 그래서 현장 측정값 옆에 '역할 확인 전 철거 보류'라고 적었다. 민재는 그 문구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이 정도면 회사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네요. 안 해도 되는 일을 안 하는 거요." 밤 11시, 강변 019-3의 카메라에 낯선 사람이 찍혔다. 허가된 점검로 밖이었다. 흐릿한 회색 우비를 입은 인물은 철판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라진 80센티미터의 선 앞에서 신발을 벗어 바닥에 가지런히 놓았다. 우리는 즉시 공공 안전 담당자에게 알렸고 직접 추격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 그쪽에서 한 발 미끄러지면 강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영상이 끊긴 뒤에도 신발은 남아 있었다. 현장 확인팀이 안전한 외측에서 조사하자 신발은 실제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발자국은 신발 뒤까지만 이어졌고 강변 방향에는 없었다. 구형 카메라가 사람의 움직임을 놓쳤을 수도 있었다. 동시에 내 휴대전화에는 모르는 번호로 음성 한 통이 왔다. "그 신발은 증거가 아닙니다." 나는 재생을 멈췄다. 이어지는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지 잠깐 망설였다. 정체를 확신한 채 추측을 사실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위험 신고일 수 있으니 보존하고 하린에게 전달했다. 다음 문장은 차분했다. "거기에 사람이 있었던 건 맞아요. 다만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우리가 못 돌려준 건 사람보다 그 사람이 설 자리에요." 음성의 발신자를 곧장 019-3의 우비 인물로 단정하지 않았다. 발신 시각도 영상 시각과 몇 초 달랐다. 대신 장혜원이 말했던 '남는 폭'을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그가 설 자리를 보존하려던 장치. 누군가 그 자리를 건물로 팔아 버렸다면, 공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편 도원 회의실의 물이 빠진 자리에 둥근 금속 고리가 나타났다. 배만식은 고리가 설치된 원본 건물 도면을 찾지 못했다. 다만 고리 안쪽에는 낯익은 표시가 있었다. `019-3 / 바깥 관측자리 고정점 / 철거 금지`. 옮기지 않았던 관측자리의 고정점이, 분명히 도원솔루션 안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날 마지막 보고서에 한 줄을 적었다. '사진 재생 멈춤. 실물 공간 재배치 계속. 아직 원본 지점 복구 불가.' 그리고 고리를 손으로 잡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발밑이 어디에 연결됐는지도 모르면서 잡아당길 수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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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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