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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74화
PAYLUA ORIGINAL · 제174화

계단이 흐르던 날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741자

오프라인 책장
사람이 걷던 계단이 한 칸씩 흐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출근길 에스컬레이터를 제외하면 없었다. 그런데 019-3 근처 옛 배수펌프장의 철제 계단이 그날 오후 물결처럼 움직였다. 철제 구조물이 녹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한 칸이 사라지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칸이 생기는 식이었다. 피난 경로 확인을 위해 펌프장에 들어간 시설 점검자 유동건과 소방대원 한 명이 계단 아래 작업 발판에 고립됐다. 두 사람은 분명히 살아 있는 목소리로 무전을 보냈다. 하지만 위쪽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구조대의 카메라에는 텅 빈 발판만 보였다. 소리와 영상이 일치하지 않았다. "위에 계신 분! 저희는 여기 있습니다." 유동건이 말했다. "소리 들었습니다. 지금 이동하지 마세요." 구조대장이 응답했다. "확인한 발판으로 수직 구조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안전선 바깥의 현장 통신 지원만 맡았다. 복도 이상을 많이 봤다고 내가 소방대장이 되는 건 아니다. 서윤은 시설도면과 직접 측정한 발판 간격을 나란히 놓았다. 1층부터 지하층까지 열두 계단이 있어야 했다. 카메라에는 열한 계단, 실제 손잡이 감촉을 재는 무인 장치에는 열세 계단이 잡혔다. 서로 다른 시점의 계단이 하나의 구조물을 서로 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원을 내리면 어떻습니까?" 현장 당직자가 물었다. "우선 주전원이 어떤 지지대와 연결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배 소장이 말했다. "예전에도 전원을 끄자 발밑이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무인 장비로 실물 강도와 간격을 잰 뒤, 구조대가 안전 확보된 위쪽 난간에 별도 구조 로프를 설치하도록 지원했다. 유동건은 발판 끝에 서 있었다. 한 발만 움직이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기에 로프가 그의 몸에 연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는 0층도 던전도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계단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안내에 따라 움직여 주세요." 그 한 문장이 필요했다. 그때 유동건이 나를 불렀다. "차도윤 씨 맞죠?" 나는 놀라서 무전기를 붙잡았다. "왜 제 이름을 압니까?" "아래쪽 안내판에 써 있어요. '퇴사자 차도윤, 다음 발판 인수'. 저희가 누굴 인수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작업 발판 위 모니터에 그런 문구가 있었다면 옛 시스템이 내 이름을 또다시 안전 책임자로 끼워 넣는 중이란 뜻이다. 나는 그 요청을 차단하라고 하지 않았다. 구조대가 의지하는 현장 안내판까지 꺼질 수 있었다. 대신 김하린과 함께 인사 연동만 분리하고, 실제 로프 구조의 대기 상태는 공공 안전 회선으로 유지했다. 유동건은 한때 도원솔루션 시설 하청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는 계단을 열두 개로 세었는데 지금은 열세 번째가 자꾸 눈앞에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두되 그의 이력이 위험의 원인인 것처럼 기록하지 않았다. 누구든 길이 눈앞에서 바뀌면 발을 헛디딜 수 있다. 로프가 내려가는 동안 위층의 시계는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고립자 무전기에는 계속 같은 17시 57분이 표시됐다. 유동건은 그 시각을 보고 과거 사고 현장에 자신이 들어온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외부에 있는 구조대의 현재 시각과 실제 구조 동선을 알려 줬다. "무전기의 숫자는 장비 오류일 수 있습니다. 지금 계신 곳은 저희가 실시간으로 구조 중인 현장입니다." 그가 내 말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하자 비로소 두 손의 떨림이 조금 줄었다. 숫자가 뒤틀릴수록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확인 가능한 현재였다. 첫 번째 구조는 성공했다. 소방대원이 사다리 끝에서 유동건의 몸을 고정하자 그의 모습이 한순간 카메라에 나타났다. 하지만 로프를 감을 때마다 화면 속 발판 길이가 달라졌다. 두 번째로 고립된 소방대원은 자기 힘으로 안전 연결고리를 잡고 올라왔다. 모두 밖으로 나왔지만 아래쪽 계단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하진은 현장 바깥에서 영상 기록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화면에 나타난 순간, 019-3의 잃어버린 80센티미터가 40센티미터로 줄어 있었다. 사람 한 명을 구조하자 간격 절반이 복원된 것처럼 보였다. "그럼 두 번째 사람을 구조했을 때는 0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민재가 말했다. 그러나 두 번째 구조 뒤 숫자는 다시 80센티미터가 됐다. 단순히 사람 수에 따라 폭이 변한 게 아니었다. 도윤 대신 하진의 얼굴이 찍힌 영상이 그 사이 끼어 있었다. 한 카메라는 하진을, 다른 카메라는 차도윤을 같은 위치의 구조 지원자로 표시했다. 우리는 해당 영상을 업무 기록과 분리하고 어느 쪽도 구조대 출입 승인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또 제 얼굴이 말썽이네요." 내가 말했다. 하진이 대꾸했다. "이제 제 얼굴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얼굴 주인을 다시 확인하세요." 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나는 사과했다. "맞습니다. 하진 씨 얼굴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내 것과 같은 물건'으로 본 내 습관이 부끄러웠다. 오후 늦게 배수펌프장 담당자가 오래된 물품 인계 장부를 찾아왔다. 계단 아래에는 원래 '검수 대기 칸'이라 부르는 작은 공실이 있었다. 누군가 점검 중인 출구가 불안정하면 그 공간에 사람을 잠시 대기시키고, 안전 확인을 마치면 일반 통로로 내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사람이 사는 방도 아니고 자산등록 가능한 면적도 아니었다. 019-3의 80센티미터와 비슷한 크기의 대기 폭이 그 공실 도면에 표시돼 있었다. "예전에는 정말 사람이 저기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있을 수 있었죠. 당시 직원이 실제로 들어갔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당직자는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저 문이 전혀 다른 곳에 붙어 있어요." 그는 바닥에 원래 놓였던 쇠 고리를 가리켰다. 쇠 고리 표면에는 각인이 있었다. `BUFFER-2 / OUTSIDE OBSERVATION ONLY`. 바깥에서 안전을 확인하는 장치였다. 사람이 안에 갇혔다는 표시와 혼동해서는 안 되는 기능이었다. 서윤이 침수 관측소의 다른 도면을 펼쳤다. 두 외측 관측면 사이에는 원래 80센티미터의 폭이 있었고, 안전 확인이 끝나지 않으면 이 폭을 남겨 두어야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 폭을 가상 임대 공간으로 전환하자, 인접 건물들이 그 자리를 자신의 피난 통로로 가져오려 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그 시각 태형공간자산의 서버에서는 실제 구조 성공을 `0층 점유 가능 확인`으로 표시하는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유동건과 소방대원이 살아 나왔다는 사실을 부동산 점유 실적으로 바꿀 셈이었다. 오재현이 즉시 해당 자료를 보류 대상으로 붙였다. 실제 구조가 성공했다고 공간이 임대 가능한 땅이 되는 건 아니다. 밤, 유동건은 의료팀의 확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헤어지며 이상한 말을 했다. "아래에 있던 거 말입니다. 사람 목소리는 우리 둘뿐이었는데, 세 번째 목소리가 계단을 세더군요. 열하나, 열둘, 그리고…" "열셋이라고요?" "아니요. '열둘 다음은 바깥이다'라고요. 계단이 아니라 누가 가야 할 방향을 세는 것 같았어요." 현장 녹음에는 그 목소리가 남지 않았다. 대신 019-3 원격 관측 데이터에 새로운 수치가 떠 있었다. `기준 높이: 복구 불가 / 외측 관측면 2 실물 기준점 이동`. 숫자 아래 붉은 색으로 짧은 문장이 깜박였다. `누군가 움직인 것은 계단이 아니라 관측자의 자리입니다.` 그 문장은 자동 안내일 수도, 누군가 남긴 경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사람 둘이 위험한 계단에 갇혔다가 구조된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그날 보고서에 먼저 썼다. '사람 둘 구조 완료. 계단 통제 계속.'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를 따로 적었다. '관측자의 자리가 누군지, 아직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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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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